신경숙님의 소설 "리진"에 나오는 '강연'에 부치는 글
신경숙님의 소설 "리진"에 나오는 '강연'에 부치는 글
강연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우물 옆에 피리을 남기고 우물에 빠져 죽었다.
연못에서 데려왔다고 이름이 강연이 되었다.
고아가 된 그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고맙게도 프랑스 블랑 선교사를 만나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의 주머니 안에는 항상 피리가 있었고
혼자 있을 때에는 항상 피리를 불었다.
블랑 선교사와 강연은 리진이 사는 반촌의 서씨집에 묵게 되고,
강연의 처지를 알게된 서씨는 강연을 받아들인다.
어린 강연은 어린 리진이 <여기 살아>라는 글씨에 순순히 그 집에서 살게 된다.
리진은 궁으로 들어가 무희가 되고,
어려서부터 리진을 사랑했던 강연은 궁중으로 들어가 악사가 된다.
사랑이 아니어도 어쩌다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궁궐 안에서 함께 있다는 마음에
궁에 들어간 강연.
임오군란 시에는 왕비와 홍계훈 훈련대 연대장과 리진이 남쪽으로 피신 시
뒤에서 그들을 도와주고...
리진이 프랑스 공사 콜랭의 구애를 받아들여 프랑스로 갔을 때에는
궁중에 남아 그녀에게 매일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리진은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오고,
강연과 한집에 살게 된다.
그러나 오누이로서 함께하는 생활마저도
홍문관 교리직 홍종우의 질투와 모함으로
오래 가지 못한다.
강연은 손가락이 잘리는 극형에 처해지고,
궁궐을 떠나 리진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강연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리진은
그를 찾기를 포기하고
왕비의 부름을 받고 궁에 들어갔다가
그날밤
일본 낭인들에 의해 왕비가 처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왕비가 죽고...
궁궐에서 죽은 왕비를 찾던 제 정신이 아닌 리진은
미리 평생 끼고 다니던 불한사전에 극약을 바르고
사전을 찢어 먹음으로써 죽음에 이르고...
그녀를 사랑했던 홍종우는 그녀를 양지 바른 무덤가에 묻어준다.
그녀를 사랑했던 강연 역시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무덤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평생 오로지 그녀를 사랑했던 강연
그의 주검 위로는 천연덕스럽게 햇빛이 내리 쬐이고...
강연의 애절한 사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홍종우는
그의 주검을 리진의 무덤 옆에 묻어준다.
어느 누구의 삶도, 죽음도 보잘 것 없는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조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왕비만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리진,
평생을 리진을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던 벙어리 강연.
그들의 사랑도, 삶도, 죽음도 이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잊혀졌지만,
우리의 소설가들에 의해 하나의 이야기로 새로 태어나고...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사랑이 머나먼 하늘나라에서나마 이루어졌으면...
그래서 천상에서의 사랑이 천년의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면...
강연의 불우했던 삶이 스스로 그리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강연이 자신의 삶을, 사랑을
초라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강연의 사랑을 리진에 전하지 못한 것은
그가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기 때문이 아니다.
리진이 왕의 여자였기 때문도 아니다.
프랑스공사 콜랭의 여자였기 때문도 아니다.
사랑을 함에도 사랑을 온전하게 이어 갈 자신이 없음에
사랑을 전할 수 없었던 그의 숙명
사랑을 하면서도 바라만봐야 했던 그의 슬픈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