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내 여행기
충남 금산군의 서대산 산행과 대전시내 여행을 위한 2박3일 여행의 셋쨋날이자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 올라갔던 서대산 산행기를 쓴다.
산행기를 다 쓰고나서 씼고 옷을 챙겨입고 모텔을 빠져나온다.
어제 재즈공연이 펼쳐졌던 카페 옆의 한식뷔페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뷔페음식을 그릇에 담으면서 지난번 강원도 고성의 콘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조식뷔페가 떠올려진다.
가족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먹었던 아침뷔페.
혼자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그 날의 아침시간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식당을 나와 중앙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정부청사역으로 간다.
대전에서 지하철을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서울에 비해 의자와 의자 사이의 통로가 좁다.
내가 서울에 살다보니, 지방에 오면 서울과 많이 비교하게 된다.
그런 비교가 무조건 옳다거나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에 살다보니, 그런 비교 아닌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부청사역에서 내려 위로 올라온다.
내가 가고자하는 한밭수목원이 유명한 곳이라서 안내판이라도 설치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도로 어디에도 수목원에 대한 안내판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한밭수목원을 찾아간다.
여행이란...
낯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낯선 길을 걷고,
낯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낯선 여관에서 잠을 자는 것이라는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라진다.
수목원을 찾아 걷던 중 길 옆에 둔산 선사유적지가 보인다.
대전시내에는 특별히 찾아가보고 싶은 그런 곳들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적은편이다.
어떤 특별한 문화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볼만한 것들도 적다.
엑스포과학공원 정도가 있을려나...
그래서 예전에 대전에 와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자주 찾았던 곳이
서대전 공원과 이곳 선사유적지였다.
선사유적지라고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공원 안의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고,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어서 가끔 찾아가곤 했다.
무엇보다도 교통이 좋아 자주 왔던 것 같다.
풀밭 위에 배롱나무꽃이 붉은 꽃을 여전히 피우고 있다.
공원을 한바퀴 돌면서 한쪽 귀퉁이 소나무 밑에 몇송이의 꽃무릇이 피어있다.
아, 지금이 꽃무릇이 필 때이지...
그런 생각과 함께 한밭수목원에 가면 많은 꽃무릇을 보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선사유적지 앞 빵집을 겸한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를 시킨다.
카페 입구의 파라솔 아래에 앉아 냉커피를 마신다.
좁은 이차선 도로와 인도
내 앞으로 가끔씩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한두사람씩 거리를 오고간다.
교회를 가시는 분들, 엄마의 손을 잡고 빵집을 찾아가는 아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들...
일요일 아침시간, 편안하고 한산한 거리풍경에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큰길로 나오자 큰 도로와 함께 큰 건물과 상가와 식당들이 보인다.
대전의 강남은 둔산동이 아닐까 싶다.
큰 도로에 높은 건물들, 깔끔한 식당들과 정부청사주변의 공원들...
반듯반듯하고 깨끗한, 구획정비가 잘 된 동네.
게다가 나무들도 많고 주위에 시립미술관, 수목원, 갑천이 있어
대전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인 것 같다.
다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한밭수목원을 찾아간다.
꽃무릇에 대한 기대를 가슴에 품고...
한밭수목원에 도착.
수목원 안으로 들어간다.
한밭수목원은 산 속에 있는 수목원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있는 수목원이다.
그럼에도 수목원에는 나무들과 꽃들이 많고 잘 가꾸어져 있다.
산책로를 따라 수목원을 돌아다니고...
군데군데 꽃무릇을 비롯해서 가을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무엇보다도 소나무 아래 군락을 이룬 꽃무릇들이 참 예뻐 보인다.
꽃무릇, 상사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슬픈 꽃이라지만,
꽃이 화려하고 색깔도 화려해 그리 슬퍼보이지 않는 꽃이다.
재작년 가을에 백암산 백양사에 갔을 때 절 입구에서 많은 무릇꽃을 본 기억이 난다.
꽃무릇이 활짝 핀 수목원을 한바퀴 돌고, 수목원 출구를 빠져 나온다.
수목원 출구 앞 커다란 화분에는 천사의 나팔꽃이 덤으로 기다리고 있다.
항상 보아도 기분 좋아지는 꽃이다.
아래를 향해 커다란 노란꽃을 피운 천사의 나팔꽃은 보기에 참 좋다.
꽃에다 귀를 갖다대면 나팔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한밭수목원을 나와 큰 광장을 지나고
대전의 명물 중의 하나인 엑스포다리(견우직녀교)를 건넌다.
일요일 오전시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마차로, 산책 삼아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다.
다리 위에서는 갑천과 그 뒤로 얕으만한 산들이 이어져 보이고...
다리 앞으로는 엑스포공원과 엑스포탑이 보인다.
엑스포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705번 대전역행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시간은 얼추 정오를 넘어가고...
서울로 가는 기차시간(3시10분)을 생각하면서 약간은 마음이 급해진다.
시청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대동역에 내린다.
대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대동 벽화마을이다.
예전에 초희님과 한결님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벽화마을
벽화들도 괜찮았지만, 언덕 위의 풍차와 그곳에서의 시내전경이 잊혀지지 않아 찾게 되었다.
지하철이 대동역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역 위로 올라가고
안경점 옆의 골목길로 들어서 기나긴 언덕길을 부지런히 오른다.
아무리 올라가도 벽화는 보이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더 올라가야 한다고 말씀을 해 주신다.
긴 오르막을 거의 다 올라가서야 벽화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지 오래돼어서 그런지 그림들이 깨끗하지 못하다.
어느새 탈색되고, 지저분해지고, 색이 바래져가고 있다.
벽화라는 것이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그림들을 오랫동안 관리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바래져가는 그림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언덕 위의 풍차를 찾아 다시금 오르막길을 오른다.
언덕 위의 풍차가 보이고...
대동하늘공원이라는 팻말 아래의 계단길을 따라 풍차 앞에 선다.
도심 속 골목길을 지나고, 언덕을 올라 만난 풍차 한대.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풍차 앞에서 대전시내를 내려다본다.
오늘도 어제처럼 날이 흐려 대전 시내가 뿌옇게 보인다.
전망에 대한 아쉬움을 풍차 앞에 내던지고 다시 길을 내려온다.
이번에는 집과 집 사이의 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간다.
골목길 사이, 집 앞에는 화분 위에 화초들이 가을햇볕에 시들어 가고 있다.
그런 화분과 야위어가는 화초들을 바라보면서,
희망이란, 아무 사람이나 지나다니는 좁은 골목길 위에
화분을 내놓고, 화초를 심고 가꾸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그런 일들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단순히 그 동네 사람들의 삶의 여유, 바지런함이 아니라,
그런 작지 않은 일들이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첫 출발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도로로 다 내려오고, 가까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나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대전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좀 있다가 버스가 들어오고, 버스에 올라타 대전역으로 간다.
대전역에 도착하니 기차 출발시간이 20여분 정도 남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담배 두대를 피우고...
역으로 들어가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에 올라탄다.
나를 태운 기차는 정시(03:10)에 출발을 하고...
창 사이로 들어오는 엷은 가을햇살을 받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