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산적두목

선비와 산적두목(아홉)

자작나무1 2013. 10. 27. 20:50

선비와 산적두목(아홉)

 

 아침 일찍

선비가 귀양중인 초막을 나와

진주를 향해 길을 떠나는 산적두목

 

 말을 타고 강진에서 보성, 벌교를 지나

순천으로 들어가면서

산적두목은 자신의 인생을

어린시절부터 되돌아 보았습니다.

 

 양반집 자제로 태어나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글선생님을 따로 모시고 공부하던 어린시절

 

 고을수령이던 아버님과

작년에 꾸어준 곡식을 되돌려 받기위하여

여러 하인들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가난한 빈농의 집을 찾아가던

어느해 가을의 풍경들

 

 도착한 빈농의 집에서는

아이들은 굶어죽어 썩은내가 진동하고

그 어미는 반실성한채

우물가 마당에 널부러져 있던 참혹한 모습

 

 그 모습에 자신도 미쳐

산으로, 산으로 허겁지겁

도망치던 자신의 뒷모습

 

 그 후,

전국의 산천을, 거리를 해메이던 시절

 

 몇일간 빈속에 물만 가득 채운채

죽기살기로 들어간 어느 산골의 허름한 절

 

 그 절에서 불목하니로 일하던 자신

작은 절, 큰 스님을 만나

공부를 하던 모습

 

 어느날 불교도 자신의 삶을 구제해 줄 수 없다는 깨달음에

신새벽 스님 몰래 절을 빠져나오는 자신의 뒷모습

 

 여산땅 산속에 들어가 산채를 짓고

무리를 만들어 도적생활을 하던 모습

 

 농민들의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가는 모습에

산적만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과

농민들과 함께 새세상을 열어보겠다는 자신의 의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에 떠올려졌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산적두목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궁금증보다는

무서움이 앞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 세상과 맞설 수 없다."

문득 언젠가 지나가는 스님이

자신에게 했던 말씀이

뜬금없이 떠올라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