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통영, 창원 여행기... 둘쨋날
여행 둘쨋날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통영여행 첫쨋날 여행기를 쓴다.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오늘은 산에 오르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는데...
글은 생각처럼 쉽게 써지지가 않는다.
모텔에서 좀 더 첫날 여행기를 다듬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도 일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온다.
강구안의 아침풍경이 마음마저 상쾌하게 맞아준다.
아침바다의 풍경
강구안의 아침바다는
나에게 오늘의 아침은
어제의 아침도
내일도 그냥 찾아오는 보통명사의 아침이 아니라
새로운, 무슨 일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의 아침이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강구안을 돌아다니면서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을 찾는다.
동광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가 물메기탕을 먹는다.
물메기탕은 처음 먹어 보았는데,
맑은 국물에 속이 시원해진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에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중앙시장 앞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용화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아침임에도 통영으로 여행을 오신 많은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을 지키고 계신다.
서로 버스노선을 물어보고...
부지런한 여행자들...
조금 있다 용화사가 종점인 202번 용화사행 시내버스를 탄다.
나를 태운 버스는 통영의 여러곳을 돌아 버스종점인 용화사 버스종점에 나를 내려준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해저터널이 보인다.
아름다운 도시 통영을 버스 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종점 입구의 커피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뽑아마시고,
용화사를 가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길 한편으로 쭉쭉 자라가고 있는 편백나무가 보인다.
나를 반긴다.
남도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편백나무숲
이런 멋진 나무들을 보기 위해 남도로 여행을 떠나나 보다.
용화사 아래의 언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용화사에 다다른다.
용화사를 둘러보고
절 앞의 등산로를 따라
내 마음 속의 절 미래사를 찾아간다.
처음 비스듬한 오르막을 지나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왼편으로 시야갸 트이면서 섬으로, 산으로 둘러쌓인 바다도 보인다.
길이 부드러워서 그런가
강진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가는 길이 떠올려진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편백나무숲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편백나무숲 뒤로 미래사가 보인다.
미래사
미륵산 아래 편백나무숲에 둘러쌓인,
편백나무숲에 파묻힌 미래사에 이른다.
사방의 나무숲 때문인지 마음마저 안온해진다.
따뜻하고 아늑한 절, 내 마음 속의 절, 미래사
따뜻한 겨울햇빛이 비추는 툇마루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다.
미래사를 나와 미륵산 정상을 향해 산길을 오른다.
한동안 겨울 들어 산에 오르지 않았다고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고 땀이 돋기 시작한다.
산은, 등산은 이렇게 나의 몸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바로미터이다.
땀과 숨을 헐떡이면서 나무계단 앞에 다다르고
이곳에서부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좁은 계단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당포해전 전망대, 박경리묘소 전망쉼터들이 나타난다.
사진들은 그리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 날씨가 맑아 산 위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가, 통영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주변에 있던 한아주머니는 오늘은 맛있는 날이라고
시인처럼 말씀을 하신다.
맛있는 날, 표현이 재미있다.
봉수대 쉼터를 지나 많은 사람들로 시장바닥을 이루고 있는
미륵산 정상 461m에 다다른다.
많은 사람들을 뚫고 한려수도와 통영시내를 내다본다.
서둘러 계단길을 내려온다.
내려오면서 또한 많은 전망대를 지나친다.
6.25 당시 해병대 상륙작전이 이루어졌던 통영상륙작전 전망대와
신선대 전망대, 한산대첩 전망대를 지난다.
아무리 전망이 좋은, 멋진 산이라지만,
전망대 표시를 너무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케이블 승강장에 도착하여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탄다.
오래간만에 케이블카를 탄다.
내가 탄 케이블카에는 아이들과 함께 오신 두가족이 타셨다.
좁은 케이블카 내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에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중학생이 되고 성적표에 순위가, 그것도 전국석차가 나오면서
그 기대치가 낮아진다는 이야기와
중학생도 특성화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아이들을 달달 볶는다는 말씀을 나눈다.
그 부모님들도 공부가 아이들 인생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슴에도 어쩔 수 없다는 하소연
우리나라 자녀교육의 딜레마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래의 막연한 행복을 위해 아이들의 공부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 가정들의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다.
케이블카에 내려 유람선 선착장 방향으로 길을 걷는다.
통영이 남쪽의 도시라 그런지 겨울에도 따뜻하다.
바람마저 잔잔한 때에는 이른 봄날 같은 느낌이 든다.
중간에 식당에 들어가 굴국밥을 먹는다.
통영...
아름다운 도시에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 너무 좋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통영에 푹 빠져든다.
식당 한쪽 벽에는 과거의 통영에 대한 이야기가 써 있다.
베트남 전쟁 시 정부에서는 파병된 우리 군인들에게 우리 먹거리를 먹이게 하려고
통영에 식품공장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의 많은 여공들이 통영에 몰려들고...
그 당시에는 통영에 돈이 넘쳐나
지나다니는 개들의 입에조차 천원짜리 지폐가 물려있었다고 한다.
통영에서 만든 음식들은 통영항을 통해 베트남으로 운반되고...
박정희 대통령도 일의 진척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통영을 자주 찾으셨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전용 숙식방이 충무관광호텔에 따로 있을 정도로...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자 통영의 유지들이 아버님의 뜻을 기려
통영에 방문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그래서 작년에 통영 한산도대첩 축제 시 방문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원한 굴국밥을 먹고
통영 유람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한산도로 떠나는 배는 2시에 떠난다고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터미널 안의 의자에 앉아
어제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되돌아본다.
충무공의 얼이 깃든 한산도
예전에 아는 형이랑 한산도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한산도에 대한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어
다시금 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잔잔한 바다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직원들이 시간이 되었다고 소리를 치자
여기저기 흩어졌던 관람객들이 출입구로 몰리고
조그만 화신호에 올라탄다.
오늘은 케이블카도 타고, 바다 유람선도 타고...
여러모로 호강을 하는 날이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맑은 날씨에 바람도 잔잔한 날
배에서 바다사진을 찍으면서 한산도로 간다.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
섬 하나하나 섬 안의 산 하나하나가 다 그림이다.
옆의 산 위에 한산도대첩비와 거북섬 등대를 지나 한산도에 닿는다.
남쪽이라 따뜻한 섬
따뜻한 섬에는 잘 가꾸어진 아열대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사스레피나무, 팔손이, 야왜나무, 금목서, 은목서 등등...
입장권을 끊고,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사진기에 담으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의 얼이 깃든 제승당을 향한다.
들어가는 입구가 직선의 길이 아니라
산과 바다가 어울려 만든 활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길이라
정겹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제승당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작전회의를 하셨던 곳이다.
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의 뜻을 기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순신 장군님의 시에 나오는 수루와
바다 건너 과녁을 맞추던 정자 한산정과
사당을 둘러보고 나온다.
다시 구부러진 길을 지나 배 타는 곳으로 걸어간다.
걸어 나가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과 선조의 관계를 그려본다.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님을 통제영으로 앉힌 선조
누명으로 옥에 갇히고 죽을 수도 있던 상황에서 죽음을 피하게 해준 선조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에는 그런 우호관계는 유지될 수 없었다.
왜적을 피해 북쪽으로 피신을 갔던 선조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이순신 장군님
그들의 우호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민심은 선조를 버리고 이순신 장군님에게 기울고...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정치적 입지는 점점 좁아진 것은 아닌지...
김훈님이 말씀하셨던 정치적 여백은 이런 식으로 작아지고, 좁아지고...
나중에는, 왜란 이후 자신이 설 자리가 없었던 이순신 장군님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서 김훈님의 글 한쪽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이순신의 칼은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치 않는 칼이었고,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은 칼이었다.
그의 칼은 다만 조국의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칼이었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 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 삼엄한 단순성에는 굴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멸적 정서가 깔려있다.
그는 당대 현실 속에서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김훈님의 "자전거 여행" 중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중에서...
배를 타고 유람선 선착장으로 돌아오고...
선착장 입구의 버스정류장에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루 더 통영에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원래 오늘 마산으로 가서 자고
내일은 창원의 주남 저수지에 갈 계획이었는데,
내가 여행을 떠나는 날에 맞추어 조류독감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주남 저수지로 갈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차라리 하루 더 아름다운 미항 통영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러면서 오늘 오후 남는 시간에
어제 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창 밖으로 보았던
북신만 해상산책로가 떠올라져서 그리로 가기로 한다.
생각을 바뀐 후에 시내버스가 그제서야 도착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101번 터미널행 시내버스에 오른다.
버스를 타고 다시금 통영 시내를 지나가면서
해저터널 부근에는 일제 때의 가옥들이 아직도 많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둥그런 바다가 펼쳐진 북신만 해상산책로 앞에서 버스에서 내린다.
다른 곳들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이곳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담배 두대 피우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바다 위의 이쁜 카페에 맘이 달려간다.
몇 척의 배와 주위의 앝은 산봉우리, 육지 앞의 둥그런 섬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앞의 산 뒤로 해가 넘어가면서 붉은 하늘을 자아낸다.
등대 같은 카페, Pharos에 들어가
카푸치노와 치즈케잌을 시킨다.
저번 운문사 입구의 카페에서 저녁으로 먹었던 카푸치노와 치즈케잌이 떠올려진다.
아, 그 때도 창 밖으로 어두워지는 바깥 풍경이 보였지...
카메라를 꺼내 어제와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돌려보고...
창 밖으로 바다 위로 내려앉는 어둠을 바라본다.
서서히 어둠 속에 가라앉는 바다
그런 풍경에 나도 모르게 어떤 슬픔에 젖어든다.
얕은 슬픔.
그러면서도 그 슬픔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따뜻한 슬픔.
남도의 어느 구석진 바닷가
나 홀로 유폐되어가고 있는 내가 떠올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