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양양 여행기
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 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 밑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 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 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셔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양양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날
몸은 무겁고 머리도 아프지만,
여행을 떠나는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할려고 한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자, 행복하여라.
신도림역에서 아는 형을 만나 전철을 타고 동서울 종합버스터미널로 간다.
동서울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양양으로 가는 표를 끊고,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화장실도 가고,
한동안 피우지 못할 담배도 미리 피워둔다.
버스시간이 다가오자 양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어제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지나 홍천을 지나가고,
화양강 휴게소에서 쉬었다 간다.
화장실에 갔다가 화양강 휴게소 뒷편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쉼터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예전에 1박2일 속초여행을 갔을 때
이 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일이 떠올려진다.
얕으막한 산들과 강, 집과 밭 풍경
웬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넉넉해지는 시골풍경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홍천을 지나 인제로 접어든다.
올 겨울은 강원도 영서지방에도 그리 눈이 많이 내리지 않은 것 같다.
홍천이나 인제에도 그리 눈이 많이 쌓여있지 않다.
양양여행을 준비하면서 내심 눈풍경을 기대했는데...
그 나마 설악이 가까워지면서 눈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는 인제와 원통을 지나 한계령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눈은 엄청 쌓여있고...
설악의 비경들이 창 밖으로 펼쳐진다.
산봉우리 모두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멋진 설경을 보여준다.
한계령을 오를수록 눈이 점점 더 많아지고...
예전에 우리가족들은 강원도로 겨울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 때 눈이 펑펑 쏟아졌는데,
한계령에는 멋진 눈꽃 세상을 펼쳐 주었다.
모두가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원없이 겨울 설경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 어머니는 그 날의 눈꽃을 말씀하신다.
920m인 한계령 정상을 지나고...
흘림골과 오색을 지나 양양 버스터미널에 내린다.
양양 시내는 1970년대 풍경 그대로이다.
이곳만은 발전의 열풍이 비켜 나간 것 같다.
터미널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낙산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낙산사로 가는 9번 속초 장사동행 시내버스가 다가오고
버스를 타고 낙산사로 간다.
양양에는 눈이 엄청 많이 쌓여있다.
길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눈들,
빈 들판에도 하얀 눈이 가득 펼쳐져 있다.
눈의 나라에 온 듯한 기분
나의 기분과는 상관 없이
눈 치우시느라고 이곳 사람들은 엄청 고생을 하셨을 것 같다.
낙산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려 낙산사를 향해 길을 걷는다.
도중에 기사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하고...
반찬으로 삶은 오징어가 나와 맛있게 먹는다.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
넓은 백사장 위에 눈이 두텁게 쌓여있다.
겨울에 백사장에 눈이 쌓여있는 일이 그리 신기할 일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눈쌓인 낙산 해수욕장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해수욕장을 나와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소파로 된 의자들을 모두 바다 방향으로 배치한 것이 특이했고,
한쪽 벽면에 많은 책들이 꽂혀져 있다.
그런 책들을 보면서 홍대카페 "꼼마"를 떠올렸다.
어제 술 때문에 속이 많이 거북했는데,
배불리 점심을 먹고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거북함은 많이 줄어든다.
카페를 나와 낙산사를 가기 위해 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길 한켠에는 치운 눈이 굉장히 많이 쌓여있다.
양양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양양 사람들은 눈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데,
철딱서니 없게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들을 했었었다.
낙산사 입구의 의상대 앞에 선다.
낙산해수욕장에는 그리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낙산사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사진 찍기에도 힘들 정도로...
의상대에서 보는 홍련암과 넓은 동해바다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다소 질퍽거리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홍련암에 닿는다.
물고기 모양이 매달린 풍경이 눈길을 끌고
홍련암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도 좋다.
홍련암을 나와 해수관음상을 보기 위해 언덕길을 오른다.
예전에는 낙산사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많아
그게 참 좋았는데,
지난번 화재로 인해 소나무들이 많이 없어졌다.
참 그게 제일 아쉬웠다.
이른 아침 솔향을 느끼면서 낙산사 경내를 돌아다니는 일이 좋았는데...
낙산사 정상인 해수관음상 앞에 선다.
어느 아주머니 한분이 해수관음상 앞에서 열심히 절을 올리시고 있다.
무슨 간곡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아주머니를 보면서 종교자의 참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해수관음상을 지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따라
원통보전과 7층 석탑 앞에 선다.
낙산사에는 여러개의 담장들이 있다.
그 담장들이 예뻐 보여 담장 사진을 찍으면서 길을 걷는다.
저번 청도 운문사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졌는데,
담장은 낮을수록 이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진흙 벽에 둥근 나무들이 박혀있고 기와를 올린 담장들
자꾸 담장에 눈길이 간다.
나에게 낙산사는... 예쁜 담장이 많은 절이다.
사람 많은 낙산사를 나와 낙산사 밑의 낙산항으로 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넓은 동해바다
방조제 끝에는 등대 하나가 있고...
낙산항을 뒤로하고 하조대를 가기 위해 낙산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정류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하조대로 가는 버스는 오지 않고...
버스정류장 앞의 가게에 들어가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한시간 후에나 버스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형과 의논 끝에 다시 양양버스터미널로 가기로 하고...
9번 양양 버스터미널행 시내버스를 타고 양양 버스터미널로 간다.
전국을 싸돌아다니면서 시 지역은 그나마 괜찮은데,
군 지역으로 가면 버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양양 버스터미널에서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하조대로 가는 강릉행 직행버스를 타게 된다.
하조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와 고모는 하조대에서 여름장사를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그 해 여름 나와 내 동생은 하조대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 하조대는 다른 곳하고는 달리 남다른 곳으로 여겨진다.
그 해 여름
하조대의 냇가에서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던 모습과
수돗물이 짜서 하조대 등대 앞의 약수터로 물 뜨러 다닌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내 어린시절의 여름풍경이 고이 담겨있는 곳, 하조대
하조대 버스정류장 입구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등대와 정자를 보기 위해 양편으로 무지막지하게 쌓인 눈을 보며 길을 걷는다.
양양에는 눈이 엄청 많이 내려 쌓였는데,
그 많은 눈들을 깔끔히 치워놓아서 걷기에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낯 모르는 여행객을 위해 눈을 치워주신 양양군민님들 고맙습니다.
눈밭 위에 푸른 소나무들이 보기에 참 좋다.
싱그러운 겨울풍경
왼편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정자 입구에 선다.
정자를 오르는 계단에도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하조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자 앞에서 보는 바다가 참 좋다.
정자 아래에는 기암절벽이 있고 그 너머로 넓은 동해 바다가 펼쳐진 풍경
의상대 앞바다보다는 이 곳 풍경이 더 나은 것 같다.
정자를 내려와 이번에는 등대에 오른다.
하얀 등대
등대 앞에서도 멋진 바다풍경이 펼쳐지고...
이 곳에 참 잘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등대를 내려와 등대 아래의 "등대"라는 카페에 들어간다.
10여년 전에 이 곳에는 "펌프킨"이라는 재즈카페가 있었다.
카페 앞에서 두 절벽 사이로 펼쳐진 바다풍경이 너무나 보기 좋았었다.
줄리 런던의 노래가 흘러나왔던 카페
몇해 전에는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전국에서 제일 멋진 카페라고 흰소리를 치면서
이 곳에 모시고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전 시간이라 카페는 문이 닫혀 있었다.
카페 앞의 바다풍경은 예전과 같았지만,
카페 안은 전통 술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내부도 어둡고 웬지 어수선한 분위기
내가 바라던 줄리 런던의 노래는 들을 수도 없었다.
카페를 나오고...
다시 왔던 길을 뒤집어 하조대 해수욕장 앞으로 온다.
해수욕장 앞 백사장에는 눈이 푹 쌓여 있다.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이번에는 새로 생긴 듯한 스카이 워크에 오른다.
스카이 워크는 정선과 부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도 만들어져 있다.
비행접시 모양의 스카이 워크
위에는 작은 등대가 세워져 있다.
예의 동해바다가 푸른 빛으로 펼쳐져 있고...
스카이 워크를 내려와 강릉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 버스정류장 앞에 선다.
이번에도 내가 타려는 강릉행 버스는 쉬이 오지 않고...
한참을 의자에 앉아 기다린 후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를 태운 강릉행 직행버스는
크고 작은 포구와 해수욕장을 지나 강릉으로 내달리고...
양양에서 강릉으로 가는 7번국도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길인 것 같다.
버스는 주문진을 지나고...
창 밖으로는 어느새 어둠이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