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6박7일 중국 상해 가족여행기... 다섯쨋날

자작나무1 2015. 5. 16. 18:14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난다.

오늘은 사촌동생이 오후에 출근하는 날이어서,

작은집 식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서,

모든 가족들이 다 일찍 일어난다.

한편에서는 씻고,

엄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느라고

상해에서 처음으로 분주한 아침을 맞는다.

된장찌개, 스팸, 김

상해에서 식사는 보통 이런 반찬으로 식사를 하곤 했다.

이른 아침 식사 후 모닝 커피를 마시고 작은집 식구들의 짐을 챙겨 집을 나온다.

성중로역 근처의 큰 도로변에서 한참을 택시를 기다린 후에

어렵사리 택시를 붙잡아 작은집 식구들의 큰 가방들을 택시 트렁크에 싣고

내 동생과 작은집 식구들은 홍차오 공항으로 떠난다.

작은집 식구들이 이번 중국 상해여행은 오는 날과 가는 날을 제하면

짧은 사흘 동안의 여행이다.

그래서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면서도 무척 아쉬운 표정들이었다.

나도 처음에 내 동생으로부터 비행기 예약표를 받았을 때

여행 기간이 일주일이어서 왜 이렇게 길게 일정을 잡았느라고 툴툴거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맙고 또 고맙다.

고마운 내 동생

나에게는 아직도 2박3일의 여정이 남아있다.

다른 가족들을 공항으로 보내고 엄마와 나는 여행 둘쨋날 아침처럼

한인타운 방향으로 아침산책을 나선다.

아침 시간이라 조용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이팝나무가 예쁘게 자라고 있는 가로수길을 지난다.

좁은 수로 위의 다리

내일 아침에는 수로 옆의 능수버들이 자라고 있는 좁은 길로

산책을 하자고 엄마한테 얘기한다.

수로를 지나 한글간판이 많이 걸려있는 한인타운에 들어선다.

반가운 한글간판들을 보면서 뚱딴지같이 오래 전에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던 미국 LA 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랜 군사독재정권과 답답한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교포들이 LA에 모여 산 이유가

미국 본토에서 한국이 가장 가까운 곳이,

LA 이어서 이곳에 코리아 타운이 생겼다는 이야기

바다에 서서 바다 건너편의 고국이 보일까

까치발을 하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밤이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초창기 재미교포들의 애잔한 마음들도 함께 그려진다.

엄마와 함께 길을 걷다보니 고급 아파트촌 입구 옆의 터에

허름한 장이 벌여지고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딜가나 비슷한지

상해의 장도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바나나, 토마토, 고추, 마늘, 파, 계란

검은 봉지 안에는 살아있는 잉어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엄마와 함께 장을 구경하면서 검은 봉지에 내 동생이 부탁한

바나나와 토마토, 파와 계란을 봉지에 각각 담아

어떤 아주머니 앞의 저울 위에 하나씩 올리고

100위안 지폐를 아주머니한테 드리니,

아주머니가 알아서 계산을 하고 잔돈을 거슬러 준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아무말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중국에서, 아니 외국에서 그 곳 언어를 몰라도

돈만 있다면 아무 가게에서 아무 물건이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비닐 봉지에 담은 채소들을 들고 동생집으로 들어간다.

공항으로 작은집 식구들을 배웅갔던 내 동생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젯밤 늦게 신천지로 친구를 만나러 갔던 사촌동생이 사 온 빵에

커피를 마시면서 오래간만에 편안한 아침시간을 보낸다.

공항에 갔던 내 동생이 들어오고...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는데, 올 때는 지하철과 버스로 오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탁자에서 오늘 아침의 일들을 공책에 적다가 좀 졸려워 잠깐 누웠는데,

마음이 들떠 있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여행기를 계속 쓰고...

오늘 아침의 일들을 다 써서 그 다음에는 요즘 읽고 있는

모옌의 소설 "붉은 수수밭"을 읽는다.

책을 읽는데 뭔가 허전하다.

뭔가 텅 빈 느낌에 왜 그러지하고 생각해보니,

작은집 식구들 세 명이 빠져나가서 그런 것 같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작은 집에서 여섯 식구가 볶아치다가 세 식구만 남으니까,

집 안이 텅빈 것처럼 썰렁하고 쓸쓸하다.

절간같은 분위기

너무 허전하여 핸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소설을 읽는다.

공항을 돌아와 잠을 잤던 동생이 일어나고...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볶음밥을 먹고 둘쨋날 앞에까지 갔다가

장마같은 장댓비가 내려서 서둘러 돌아섰던 예원을

다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파트 입구 큰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한인촌,

10호선 롱바이신춘역으로 간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물들에 한글 간판들

진취적인 한국인들의 모습들을 만난 듯 내 마음마저 뿌듯해진다.

10호선 롱바이신춘역

이번 여행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많이 탔는데,

대부분 서울하고 비슷한데,

특별난 점은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 옆에

공항 검색대와 같은 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는 승객들은

큰 짐은 검색대에 올려놓아 검사를 받고

작은 가방은 가방을 옆에 지키는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공항도 아니면서...

이런 일들을 처음 겪는 나로서는 매우 거추장스럽고 성가시다.

사회적으로 불안한 사회에서 치러야만 하는 추가비용

또 하나

상해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작은 편이고

많은 승객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서울보다 배차시간이 짧다.

10호선 롱바이신춘역에서 예원역으로 간다.

평일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한산하고 앉을 자리도 많아 편하게 앉아간다.

몇일 동안의 상해여행 중에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상해여행은 휴일을 피해 평일에 여행을 해야지

토,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여행을 하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물결로 제대로 돌아다니기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예원역으로 올라오고...

엊그제 왔다갔다고 길이 눈에 익었다.

큰 길을 따라 예원으로 간다.

많은 상가 지역을 지나치고...

어제까지만해도 여섯 식구가 우르르 몰려 다녔는데,

세 식구가 다니니까 단출해서 좋긴 한데, 그래도 어딘가 텅빈 것처럼 허하다.

그래서 엄마한테 다음에 또 중국에 온다면 그 때에도 작은집 식구들과 함께 오자고 이야기를 한다.

예원이 가까울수록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오리들이 놀고있는 구곡교 앞의 예원 앞에 선다.

엊그제 예원 앞에서 높다란 명청시대의 웅장하고 휘황찬란한 건물들을 보면서

중국적이고 대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는 듯한, 짓누르는 듯한 건물들을 다시금 쳐다보면서,

중세 봉건사회, 철저한 위계의 신분질서

왕은 신하 앞에서, 관리들은 백성 앞에서, 지주는 소작농과 노비 앞에서

위엄과 권위를 앞세우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수직으로 신분질서가 이루어졌던 중세 계급사회의 모습들이

높고 화려한 모습의 건축물에 그려져 있는 것 같다.

건축물도 그 시대의 반영이니까...

내가 예원 앞의 호수와 주변의 건축물들을 사진기에 담는 동안

엄마는 난간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고

내 동생은 긴 줄 뒤에 서서 아주 유명하다는 남상만두를 사기 위해 서 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내 동생이 사 온 남상만두를 먹는데, 맛이 없다.

느끼하고 이상한 향내도 나고...

먹으면서 춘천의 왕짱구의 만두가 더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만두를 먹고나서 호수 위의 다리, 구곡교를 지난다.

중국의 귀신들, 강시들은 콩콩 뛰면서 앞으로만 뛸 수 있어서

강시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홉개의 굴곡이 있는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표소 앞에서 매표를 하고 오래된 나무들과 오래된 건물들로 가득찬 예원 안으로 들어간다.

중국 상해여행을 준비하면서 상하이 여행기 두권을 사서 읽었는데,

상해에서 제일 유명한 여행지가 이 곳 예원과 동방명주의 전망대이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터지고...

오래된 건물에 오래된 나무들...

건물 옆의 좁은 길과 회랑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고...

오래된 건물 앞에 예쁜 연못과 정자

이를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

중국식 정원도 아기자기하고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연신 사진기를 누르면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이곳에서 유래되었다는 글

그 말의 뜻을 직접 눈으로 실감한다.

예쁜 담장, 그 담장 위에는 사실적인 모습의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

담장 위의 용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용은 임금, 황제를 뜻한다.

그런데 일개의 개인이 자신의 집에 용을 새겨넣는 것은

황제에 대한 불충이자 역모이다.

그래서 황제에게 끌려온 이 집 주인은 자신의 집 담장 위에 올려진 용은 용이 아니라,

이무기이며, 그래서 발가락이 세 개 밖에 없다는 말로, 기지로 역모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중국인의 유머

 

 

 

 

 나는 예원에 가면서 창덕궁의 후원을 생각했는데,

예원은 건물들 사이의 공간이 좁은데다가,

연못과 나무가 많이 우겨져 꽉찬 느낌의 정원이라면,

우리의 창덕궁 후원은 건물과 건물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넓어

여유롭고 보는 이의 시선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무엇보다도 울창한 나무들이 맘에 들었고,

명품이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정성들여 만든 것이 듯이,

예원도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부분까지

조각으로 장식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명품건축이고 정원이다.

명품 고가, 예원

 

 

 

 

 

 

 만약, 만약 다음에 또 상해에 올 수 있다면,

예원을 다시금 찾아와서 하루 일정으로 충분히, 세세하게 둘러보고 싶다.

함께하신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나가는 길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출구를 찾아 빠져나온다.

사람들로 가득찬 구곡교를 건너고...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구곡교 중간의 정자 2층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원 앞은 두번이나 지나다녀서 길이 눈에 익어서 내가 앞장서서 길을 걷는다.

상해여행 넷쨋날

어제까지는 낯선 타국이라 의기소침해지고 웬지 무서워서 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나흘째가 되니, 길눈이 조금씩 조금씩 틔인다.

10호선 예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롱시루역으로 간다.

롱시루역을 나와 한참을 걷고 걸어 좁은 골목 안으로

유럽식 술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길가에 야외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유럽의 어느 도시의 골목길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서울도 다양한 모습들로 이루어진 대도시이지만,

상하이는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인 것 같다.

 

 

 상해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상해는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모습들이

동양과 서양의 모습들이 순서없이 뒤죽박죽 뒤엉켜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짬뽕국가, 중국. 짬뽕도시, 상해

그러면서 요리집에서는 짬뽕을 팔지않는 웃기는 잠뽕

중국의 역사 자체가 짬뽕이다.

농경민족, 정착민족 한족과 유목민족인 이민족의 역사가

함께 짬뽕을 이룬 나라, 중국

유목민족의 역사마저 버젓이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청나라의 여진족을, 요나라의 거란족을 한족으로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중국

중국 역사의 무한한 포용력

그런 것들이 중국 역사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길 안의 많은 술집 중에 Shanghai Brewery에 들어가 생맥주와 피자를 시킨다.

내 동생이 학교 선생님들과 몇번 찾아온 집이라면서

생맥주는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데,

맥주가 부드럽고 맛있다고 말한다.

얇은 피자도 서울에서 먹었던 피자보다 맛있다.

피자 위의 새우가 고소하다.

생맥주를 마시는 동안, 골목 안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어두워지면서 외국인들이 찾아오시고,

TV에서는 미식축구가,

술집 안 당구대에서는 한무리의 외국인들이 당구를 치는...

술을 마시는 가운데 잠시동안 유럽의 어느 골목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착각

내 동생은 내일 갈 신천지가 더 유럽과 가깝다고 해서

내일 여정이 더욱 기대가 된다.

술집을 나와 육교 아래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택시는 오지 않고 어두운 밤하늘에서는

비가 뚱딴지같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택시잡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육교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택시를 기다린 후에 빈 택시를 잡는다.

별을 딴다.

동생집에 들어오고...

좀전에 마셨던 생맥주가 부드러워도 독했는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씼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