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고창 여행기... 셋쨋날
어제 선운산을 내려와 선운사를 구경하고
선운산 버스터미널에서 고창으로 가는 공용버스를 타고
고창 버스터미널로 와서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모텔에 들어가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5일 월요일, 부처님 오신 날
새벽에 일어나 TV를 켜고 한동안 뮤직비디오를 본다.
최근 노래들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여러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를 침대에 누워서 본다.
빅뱅의 "Loser"가 듣기 좋다.
라디오로 들었을 때에는 별로였는데,
뮤직비디오로 보니 가사도 마음에 들고
부드러운 리듬도 듣기 좋다.
조금은 슬프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
2시간 가까이 뮤직비디오를 멍하니 보다가
씻고 모텔을 빠져 나온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켜 먹는다.
전라도 백반
엊그제 저녁부터 식사는 무조건 백반을 시켜 먹었는데,
오늘 아침의 백반에 제일 나았다.
풍성한 식탁은 아니었슴에도
깔끔하고 정갈한 밑반찬
맛난 반찬들로 배불리 아침을 해결한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학원농장으로 간다.
보리밭을 보러...
터미널에서 가까운 거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다.
택시 요금도 무려 2만원 이상 나오고...
좀 더 가는 방법을 미리 알아보고 왔어야 하는데,
버스가 없다고 해서 무작정 택시를 탔는데...
택시 요금이 장난이 아니다.
물릴 수도 없고...
고창까지 와서 보리밭을 빼먹을 수도 없고...
한참을 달려 고창 학원농장 앞에 택시가 선다.
보리밭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나한테도 보리밭은 그리 인연이 없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적은 많아도
직접 보리밭을 본 적은
지난번 부천 상동호수공원에서 보았던 청보리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고창여행을 준비하면서 보리밭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가 컸었다.
학원농장 앞 매점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사 마시고
보리밭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곳을 오면서 내심 청보리밭을 기대했는데,
보리밭은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다.
넓게 펼쳐진 보리밭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옆의 보리밭들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 짓뭉개져 있다.
풍차에도 올라가보고
길 따라 하염없이 보리밭 사이를 걸어다닌다.
웬지 푸근한 고향 느낌의 보리밭 사잇길
처음 드넓은 보리밭을 접한다는 마음에 조금은 마음이 들뜨고...
파란하늘 아래 누런 보리밭이 싱그럽다.
보리밭을 거닐면서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부분들을 떠올려 보았다.
수평적인 삶과 수직적인 삶
도시의 삶이 수직적인 삶이라면
농촌에서의 삶은 수평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너무 도식적인 이야기이기는 하겠지만,
문득 그런 이야기가 떠올라졌다.
그래서 도시의 사람들이 주말이면 산으로 가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농촌에서의 여생을 바라는 것은 아닐는지...
보리밭을 내려와 생태호수에 다다른다.
호수 주변에 노란 창포꽃이 피어있는 오월의 호수
호수를 사진찍고 나무들이 일렬로 자라고 있는 길 위로 올라간다.
옆에는 넓은 밭이,
비닐 멀칭을 씌운, 구멍 사이로 콩이 자라고 있는 드넓은 밭을 본다.
이것도 보리밭처럼 넓어서 장관이다.
자연의 순환과 농부님들의 수고로 이루어진 밭
가지런히 심어진 콩들이 보기 좋다.
가로수길을 지나 학원농장 휴게실 방향으로 걷는데,
택시가 지나가서 택시를 타고 무장읍으로 간다.
택시에서 택시기사님은 학원농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학원농장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고
보리밭 안에 들어가 보리밭을 뭉개 버려서
그 옆의 보리밭은 일부러 개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래서 개방하지 않은 보리밭이 사진찍기에도 더 좋다는 말씀
개방하지 않은 보리밭 옆을 지나가는데,
창 밖으로 펼쳐진 누런 보리밭이 장관이다.
또 하나 보리밭은 아래에서 위로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고 말씀을 해 주신다.
요금 9천원을 내고 무장읍성 앞에서 내린다.
무장읍성
무장읍성은 예전의 이이화님의 동학농민운동에서 자주 접했던 이름이다.
동학군들이 일차 전쟁을 치르고 무장읍성을 점령했다는 이야기
무장읍은, 무장읍성은 그래서 단순한 지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역사 속의 공간에 들어선 느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느낌
무장읍성은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 조용하기만 하다.
둘레의 석성과 그 안의 몇개의 관아건물
그 사이로 나무들이 울창히 자라고 있다.
그 옛날 농민들의 함성들은 잊혀지고
대신 그 자리에 나무들의 푸르름이 대신한 것 같다.
나무들이 참 보기 좋다.
한편에 많은 비석들 위로 우거진 나무들
아주 오래된 마을에 와 있는 느낌이다.
고창은 전남 보성 다음으로 나무들이 좋은 것 같다.
나무를 좋아하는 나
고창에서 나무 때문에 행복해한다.
무장읍성 안의 나무들을 사진찍고
읍성을 나와 무장 버스정류장에서 고창으로 가는 공용버스를 탄다.
고창
정읍과 함께 동학운동의 중심지였다.
길가의 이름들은 대부분 동학운동 이야기에서 읽었던 지명이고...
버스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지도 지나친다.
나에게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인, 전봉준
몇해 전에 서울 광화문에서 농민들이 쌀수입개방반대 집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 때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티셔츠에 전봉준의 효수당한 두상을 새긴 옷을 입고 있었다.
옷 앞의 전봉준 장군님의 두상은 왜 이리 무서웠는지...
무서움 만큼 슬퍼보였는지...
오늘날 농민들의 아픔과 분노가 그 두상에 다 새겨져 있는 느낌
어떤 의미에서는 녹두장군 전봉준은 예전에 무참히 죽었지만,
죽음 이상의 의미로 우리사회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창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로 이른 점심을 먹고
고창읍성을 보기 위해 읍성 방향으로 걷는다.
도중에 예쁜 카페가 보여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시원한 냉커피 한잔 마시고...
고창읍성 앞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면 고창에는 읍성이 두개나 있다.
무장읍성과 고창읍성
좀전에 택시기사님이 고창관아가 무장읍성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무장읍 사람들이 너무 드세서
고창읍성 안으로 관아를 옮겼다는 말씀이 떠올라진다.
갑오농민운동의 주역들은 일본놈들에게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호남 사람들의 기개가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둥그렇게 원형으로 이루어진 석성
성 안으로 들어가 성을 따라 한바퀴 돈다.
아래로는 고창읍이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커다란 산이 올려다보인다.
내 생각에는 문수산과 방장산이 아닐까 싶다.
두 산 모두 오르고 싶은 산들이다.
성을 따라 오르고
두번째 성문이 나타난다.
옹성 위에서 성벽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일품이다.
부드러운 곡선과 성벽의 돌의 질감이 느껴지는 장면
성 안쪽으로는 소나무숲이 빽빽하다.
선운사 입구에서도 그렇고, 무장읍성에서도 그렇고...
고창은 나무가 좋은 고장이다.
나의 2박3일 고창여행은 나무여행이다.
소나무 사이가 가까워 어두워진 숲
성벽을 따라 오르니,
건너편으로 아늑한 호수가 보이고...
호수를 배경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계신다.
그들을 지나 성벽을 따라 걸으니,
성벽 앞으로 터미널 주변의 고창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고창읍성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인 줄은 미처 몰랐다.
항상 고창에 오면 선운사와 도솔암만 보았지,
고창읍성은 와보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고창에 오면 고창읍성은 꼭 들러봐야겠다.
교통도 좋고...
성 안으로 들어가니 소나무 사이로로 단정한 성황사가 보인다.
지난 겨울 부산 기장의 성황당이 떠올려지기도 하고...
성황사에서 관아를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서니...
세상에나...
안쪽으로 울울창창한 대나무숲이 나타난다.
키 큰 대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다.
고창읍성이 이렇게 멋진 곳인 줄 미처 몰랐다.
이런 장대한 대나무숲이 숨겨져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대나무 윗쪽으로 들어오는 햇살
햇살을 통해 보여지는 엷디엷은 푸른색
내 마음마저 가벼워지는 느낌
안으로 못들어가게 줄이 쳐져 있고
줄 따라 걸어가니 맹종죽림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 대나무들은 중국 대나무라는 설명
내가 지난번에 중국 상해의 공원에서 보았던 키 큰 대나무들도
맹종죽림이었을까...
생각지도 않게 고창읍성에서 대나무를 실컷 본다.
커다란 죽순이 올라오는 모습도 보고...
대나무숲을 지나 동헌으로 내려간다.
동헌으로 가는 길에도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자주 보여
사진을 찍으면서 아래로 내려선다.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서 이곳에 잘 왔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2박3일 고창여행의 마지막 선물, 보너스를 받은 느낌
동헌 보다는 주위의 나무들에 시선이 자주 가고...
동헌을 지나 내려오니,
길가 가운데 정자가 있고,
그 옆 풀밭에는 고인돌이 놓여있다.
호랑가시나무도 있고...
풀밭 위로 많은 새들이 날아다닌다.
언덕 위로 커다란 나무들...
다음에도 고창읍성에 또 와야지 맘 먹는다.
자주 와서 내 마음 속의 읍성으로 정해야지...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늘 아래에서 쉬고 계시고...
그 분들의 한가한 시간들을 뒤로한 채 읍성을 빠져나온다.
볼 것 많고, 사진 찍을 것들이 많았던
멋진 나무들로 더더욱 행복했던 고창읍성
읍성을 나오니, 앞에 신재효 선생님 고택이 있다.
신재효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정리하신 분이라고 한다.
돌담 안의 초가집 한 채
오래간만에 보는 우리 초가집이다.
주변에는 예의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그늘 속에 초가집 한 채이다.
초가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고창 참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고장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나 문수사, 동호해변은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럼에도 2박3일 동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멋진, 오래된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더더욱 행복했던 여행
신재효 고택을 나와 돌담을 사진기에 담고...
고창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걷는다.
다음에는 동학과 관련된 고창의 유적지를 찾아
다시금 고창에 와야지 맘 먹어본다.
선운사 입구의 편백나무
도솔암 아래의 장사송
무장읍성 불망비 주변의 커다란 노거수들
고창읍성 안의 맹종죽림과 오래된 나무들
나에게 이번 2박3일 고창여행은
오래된 마을의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떠난
나무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