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남도여행... 첫쨋날... 목포 유달산(2.24)
아침에 천천히 일어난다.
지난번에 영등포역에서 기찻표를 끊으면서
일부러 기차시간을 늦게 잡았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실 것 같아서...
천천히 일어나 씻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
만둣국을 먹는다.
우리집의 겨울철 별미
만둣국을 먹고 배낭을 챙겨 집을 나온다.
신도림역
출근시간 신도림역은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다.
전철에서 내려오신 사람들로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 정도이다.
출근전쟁
우리 어머니는 전에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이
신기하시다고 말씀을 하셨었다.
나는 나대로 중국의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떠올라졌다.
신도림역에서 용산역으로 오고...
기차 출발시간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있어
역 아래로 내려와 담배 두대를 피우고,
역사 안에서 자판기 커피도 뽑아 마신다.
승강장으로 내려가 기차에 오른다.
목포로 가는 KTX(09:30)
창으로 햇빛이 강하게 들어와
가림막을 내리고
앞에 있는 KTX 매거진을 읽는다.
다 읽고나서
집에서 가져온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 - 남도답사 일번지"를 읽는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 책 읽기를 그만두고
가림막을 조금 올리고 창 밖을 내다본다.
내 나름대로의 세상 공부
햇살이 좋아 창 밖 풍경이 봄날 같다.
그래도 겨울이라 나무들은 앙상하고...
그래서 그런지 산이나 들 보다는
집들의 지붕에 눈이 더 많이 간다.
빨갛고 파란 지붕들
그 지붕에 닿는 햇살들...
멍하니 그런 풍경들에 취한다.
송정역을 지나 목포역에 도착
목포역을 빠져나와 오거리 식당을 찾아간다.
이 식당은 좀전의 KTX 매거진에서 소개된 맛집이다.
오거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오거리식당을 찾아간다.
조금은 낡고 엉성한 느낌의 백반집
다행히 1인분도 가능하다.
나는 목포역에서 맛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내가 가고싶은 백반집이 없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운 적도 있었다.
생선 백반을 시킨다.
푸짐한 반찬들
청국장에 명태가 들어있고, 생선구이도 맛난다.
목포에서 간만에 맛난 식사를 한다.
구수하게 말씀을 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더욱 정감이 가는 집이었다.
앞으로 목포에 오면 이 집은 꼭 들를 것 같다.
목포 백반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와
시내쪽의 오거리 문화센터를 찾아간다.
일제 시대의 건물
일제 시대에는 사찰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교회이었다고 씌여있다.
지붕의 긴처마를 보면서
군산의 동국사가 떠올라졌다.
건물 앞의 붉가시나무
남도의 나무
제주도에서도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오거리 문화센터를 나와 유달산 이정표를 따라
유달산으로 간다.
목포하면 유달산이다.
이정표를 따라 가고...
어느 미술관 앞길로 해서 유달산 입구에 다다른다.
유달산 입구, 노적봉
임란시 이순신 장군님이 적들에게
바위 위에 볏짚을 올려놓아
식량이 많고, 그 만큼 아군이 많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곳
이순신 장군님의 슬기로움
노적봉을 내려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유달산을 오른다.
길이 잘 닦여있어 산이라기보다는 목포의 공원에 와 있는 것 같다.
곳곳에 이정표와 안내문들...
오르는 길마다 누각이 나오고, 휴게소가 나오고...
이름을 매단 바위들이 나타난다.
그것들로 인해 작은 산이
풍성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것 같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오포대
예전에는 이 대포로 정오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목포에 돈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대포가 있었나 싶다.
목포인들의 풍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지금도 정오 때면 울리던 대포소리를
그리워하고 계신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 이난영님의 노래비
노래비 아래의 스피커에서는 이난영님의 노래가
쉬지않고 흘러나온다.
내가 10여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목포의 눈물이 무한반복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차 옛상처가 새로워지나
못오는 님이여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바위 위의 조그만 터마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이런저런 누각들이 세워져 있다.
이것도 목포인들의, 호남사람들의 풍류이다.
여유가 없다면 세울 수 없는 누각들...
평야 지대의 쌀, 바다에서 잡아온 고기들
그것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경제적 풍요
그 풍요를 바탕으로 풍류의 고장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일등바위, 유달산 정상 228m에 선다.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맑아 멀리까지 잘 보인다.
목포 시내
도로 옆으로 옹기종기 세워진 집과 건물들
새로 생긴 목포대교 주변으로는
남해 안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유달산 정상에서 떠오른 낱말, 옹기종기
건물과 집들이, 바다 위의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들...
참 따뜻하고 정겨운 모습들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언으로 가르쳐주는 장면 같다.
멋진 장면들을 감상하면서 산을 내려오고...
목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길가에 예쁜 카페가 보여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Cafe "Mary Grace"
여행 중에 만나는 여유
카페를 나와 목포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2번 시내버스를 탄다.
목포시내를 지나 터미널로 간다.
목포는 작년 1월달에도 왔었다.
그 때 해남과 목포에는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서울에는 그리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서
눈폭탄 때문에 목포에서의 일정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시내에서도 걷기 힘들 정도였는데,
유달산은 밑에서 오르기를 포기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1년만에 다시 목포에 찾아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목포, 해남, 나주로 일정을 거꾸로 잡았다.
터미널 버스정류장에 도착
목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남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는다.
버스표를 끊고 해남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니
조금 있다가 바로 출발을 한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목포시내
목포역보다는 터미널 주변이 신도시처럼 보이고
건물들도 새롭고 사람들도 활기차 보인다.
가로수
겨울에도 푸른 잎을 매단,
그리고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
제주도에서 많이 보았던 먼나무
목포에서 먼나무를 보니, 반갑다.
따뜻한 남쪽도시, 목포
전남도청을 지나고 영산강 하구둑을 넘는다.
영암의 삼호와 독천 버스터미널을 지나면서
주변이 어두워진다.
하늘에는 별 하나
어두워진 밤하늘
산은 더더욱 어둡게 보인다.
어둠을 뚫고 해남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
가까운 식당, 금강산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고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가
골목길 안쪽의 여관을 찾아 들어간다.
남도여행의 첫쨋날 밤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와 TV를 보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러다가 갑자기 기형도님의 시가 생각나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으로 기형도님의 시를 찾아 읽고 또 읽는다.
질투는 나의 힘
기 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세어보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내가 스무살 때에는
기형도님의 시들이 너무 어려워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마 마흔이 넘어가면서
기형도님의 시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남도의 밤
해남의 어느 모텔에서
핸드폰을 통해 기형도님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