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자작나무1 2012. 10. 26. 11:13

 저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IQ84"라는 소설을 읽고, 전에 읽었던 소설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어요...

저는 새로운 책들을 만나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또한, 전에 읽었던 좋았던 책들을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는 것도 참 좋아해요...

이번에 읽은 "상실의 시대"도 지금 읽지 않으면, 한동안 읽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책을 들었어요...

"IQ84"를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감동적이었다는 생각만 남고, 그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읽게 된 것이에요...

 

 주인공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 기즈키가 갑자기 자살을 하고...

대학에 들어와 한동안 키즈키의 소꿉친구이자 애인이었던 나오코와 친해졌어요...

나오코는 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커다란 상실의 아픔을 겪고...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교토의 숲 속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와타나베는 죽은 친구의 애인인 나오코와 만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라는 건강하고 활달한 여자친구랑 사귀게 되고...

그런 중에 요양원에 있던 나오코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나오코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와타나베는 긴 방황을 하고...

여행을 돌아와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자신이 위치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젊은 날의 사랑이야기가 잔잔하게, 때로는 사소한 부분까지도 지나치게 세심하게 그려져 나가고 있어요...

그런 와타나베의,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저도 천천히 빨려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저를 만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들어간 대학과 대학 생활...

갑작스럽게 주어진 많은 자유 시간에 어쩔 줄 몰라하고...

새롭게 눈뜬 우리 사회의 왜곡된 현실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적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그러면서 기나긴 방황이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술자리와 세상이야기...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그런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고, 괴로웠던...

그래서 참으로 어리석고 불안했던 제 젊은 날들이 소설과 함께 겹쳐졌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상실의 시대"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에게보다는

젊은 날들을 한참을 지난 사람들이 읽어야만

그 의미가 더더욱 깊어지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어요.

지난 일요일날 오전에 라디오에서 DJ가 들려준 짧은 이야기가 떠올려지네요...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연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젊은 자신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으면서 그 짧은 멘트가 다시금 생각났어요.

 

 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IQ84"도 그렇고, "상실의 시대"도 그랬지만, 번역을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굳이 일본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게 번역이 이루어져서 읽으면서도 참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빠질 수 있었어요...

물론 원본인 하루키의 소설 자체가 도시적 감수성을 안은 채 군더더기 없이 잘 쓰여졌겠지만,

그런 문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작은 감정 표현들도 세세하게 잘 번역하여서 읽기에 편했어요...

 

 마지막으로 소설의 한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 <노르웨이의 숲>을 부탁해"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레이코씨가 부엌에서, 고양이 모양의 저금통을 들고 오자, 나오코가 지갑에서 백엔짜리 동전을 꺼내어 거기에 넣었다.

"뭐죠, 그건?"하고 내가 물었다.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땐 여기에 1백엔씩 넣게 되어 있어.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그렇게 정했어. 정성을 담아 신청하는 거야."

"그러면 그 돈이 내 담뱃값이 되는 거지"하고 레이코씨는 덧붙이고 나서 손가락을 주물러 풀고는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했다.

 그녀가 치는 곡엔 정성이 깃들여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감정에 흐르는 적은 없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백엔짜리 동전을 꺼내어 그 저금통에 넣었다.

"고마워"하고 레이코씨는 방긋이 웃었다. 

"이 곡을 들으면 난 가끔 무척 슬퍼질 때가 있어.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같은 감정이 들곤 해"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외롭고 춥고, 그리고 어둡고, 아무도 구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내가 신청하지 않으면 레이코 언니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