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박2일 경주, 부산여행 첫쨋날... 천년고도 경주이야기

자작나무1 2013. 2. 28. 08:42

 북미 인디언들은 짧은 2월을 홀로 길을 떠나는 달이라고 한다.

나는 오늘 북미 인디언들의 말을 쫓아 경주와 부산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난다.

나의 영혼이 나를 쫓아오지 못할까봐 잠깐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우는 범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 저녁에 마신 술로 몸과 마음이 무겁다.

겨우 일어나 배낭을 걸쳐매고 집을 나선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간다.

서울역에 도착.

출근길 전철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전철은 생각보다 늦게 서울역에 도착한다.

담배 한 대 겨우 피워 물고, 서울역 안으로 들어가 부산으로 가는 KTX 안에 올라탄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한숨을 쉰다.

보통 이런 여행에서는 한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게으름을 피우는데,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허겁지겁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기차는 정시(08:00)에 출발하고...

오늘 새벽에 내린 눈으로 미끄러운 길을 부드럽게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피곤한 몸에 조금 눈을 부칠려고 하였으나,

오래간만에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멀뚱멀뚱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경주를 향해 달린다.

나를 태운 기차는 광명역과 오송역, 많은 눈이 내리고 있는 대전역을 거쳐 대구를 향해 달리고...

KTX는 빨라서 좋기는 한데, 터널구간이 많아 제대로 바깥풍경을 보는데는 별로이다.

기차는 동대구역에 잠시 멈추었다가 목적지인 경주역에 도착한다.

오래간만에 경주에 온 것이다.

예전에 친구가 경주에 있어서 가끔 놀러왔는데...

그 전에도 가끔 경주에 왔었다.

와서 남산도 가보고, 감포도 가보고, 불국사도 가보고...

새로 생긴 신경주역을 빠져나오면서 지난 추억을 되새김해본다.

역 앞에는 방내리 고분군 1호 돌방무덤이 있다.

경주의 역사를, 그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보는 것 같다.

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불국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한동안 열차 안에서 피우지 못했던 담배를 연신 빨아대고...

여행 첫날부터 몸이 무겁다.

한참을 지난 후에 불국사로 가는 급행700번 버스가 다가온다.

버스는 경주시내를 지나치고, 보문단지를 돌아나와 불국사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정류장에 내려 아래의 식당가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설렁탕을 시켰는데, 큰 쟁반 위에 도토리 무침이 푸짐하게 먼저 나온다.

아주머니께 도토리 무침은 시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냥 먹으라고 한다.

좀 그랬지만, 그래도 몇점 먹는다.

내가 시킨 설렁탕이 나오고, 설렁탕에 밥을 말아 천천히 천천히 먹는다.

밥을 다 먹으니, 몸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뱃속이 든든해지고,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

식당을 나와 그 옆의 한옥카페가 보여 그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냉커피를 마시면서 카페 안을 사진 찍는데, 철쭉 화분에 꽃이 붉게 피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사장님이 가까이 다가오셔서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씀해주신다.

카페 앞 파라솔 밑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냉커피를 마신다.

다시 사장님이 밖으로 나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오늘은 날씨가 추운 날이라면서 봄에 오면 좋다고 봄에 또 오라고 말씀을 하시고...

벚꽃 피는 봄에 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불국사를 향해 길을 나선다.

큰 길 건너편으로 히말리야시다가 보인다.

박정희대통령이 이 나무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네 공무원들이 충성 차원에서 공공건물 앞에는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축축 가지를 늘어뜨린 히말리야시다는 보기에 참 좋다.

폐허 상태였던 불국사도 박정희 대통령 때 대대적인 복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길을 건너고 불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선다.

한쪽에는 연못이 있고, 한편에는 대나무가 일렬로 쭉 심어져 있다.

겨울날의 대나무... 참 보기 좋다.

그래서 사군자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매표소를 지나고 절 안으로 들어선다.

절 안에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경주에 참 자주 왔다.

그런데 올 때마다 일정은 정해져 있다.

매번 경주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불국사이다.

경주하면 불국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듯이.

또 경주의 찬란했던 신라의 불교유적들이 경주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청운교 앞의 마당에 도착한다.

불국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이곳,

청운교와 백운교 앞의 마당이다.

곳곳에 나무들이 적당하게 배치되어 있고, 따뜻한 햇빛이 비추는 곳.

오늘은 날씨가 그리 안좋아 그런 느낌을 받기가 힘들었지만,

한여름에 이곳에 오면 햇빛이 나뭇잎에 닿는 느낌이 너무 좋아 불국토에 왔다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이다.

 

 

 건물 우측의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구부러진 언덕을 따라 올라간다.

긴회랑이 앞을 가리고 그 안으로 다보탑과 보수공사중인 석가탑이 보인다.

다보탑... 불국사의 대표적인 걸작 중의 하나이다.

항상 볼 때마다 놀라움이 앞선다.

어떻게 이렇게 석탑을 정교하게 꾸밀 수 있었을까 그런 놀람과 함께...

목조탑을 본떠 석탑으로 옮기는 과정.

그 당시 사람들은 나무와 석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 같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작업일텐데 그런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고

정교한 솜씨에 놀랍기만하다.

불심이 깊어지면 아름다운 석탑의 세계가 스스로 열리는 것인지...

대웅전을 돌아 뒷쪽으로 돌아다닌다.

절 주위의 나무들도 반갑고...

어느 곳을 돌아나가는데, 기와 위에, 나무 위에 조그만 돌탑들이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소망을 정성을 모아 올린 돌탑밭.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 나의 소망을 그 돌탑 위에 얹어본다.

불국사를 한바퀴 돌고 나와 다시 청운교 앞에 선다.

근처의 자판기에서 커피도 빼마시고, 앉아서 오늘 찍은 사진들도 돌아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멍하니 쳐다본다.

한참을 쉰 후에 불국사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 방향으로 나간다.

버스는 분황사 버스정류장에서 멈추고, 나도 버스에서 내린다.

 

 

 분황사

커다란 모전석탑이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절이다.

그런데 이 석탑이 크기가 엄청 커서 그런지 보기에 참 좋다.

내 스스로 묵직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포의 감은사지 석탑하고는 느낌이 다른 아름다움.

벽돌탑이라는 특이성도 있지만, 웬만한 탑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서 그것만으로도 볼만하다.

절보다는 이 탑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다.

절 앞에는 황룡사터가 넓게 펼쳐져 있고...

분황사를 나와 안압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

길 옆에는 황량한 벌판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끝에 도시의 건물들이, 그 뒤로 얕으막한 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런 풍경들에 마음이 한없이 누그러진다.

벌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안압지에 다다르고...

안압지 주변에는 연꽃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연꽃이 꽃을 피우는 여름에 오면 참 좋을 것 같다.

 

 

 안압지에 도착.

안압지는 본궁 아래 따로 세워진 이궁이다.

주로 통일신라시대 왕세자들이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하고,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연회가 베풀어졌다고 한다.

그런 목적으로 건물 주위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파여있다.

봄이나 여름에 오면 참 좋은 곳인데, 겨울에는 그리 좋은 줄 모르겠다.

안압지를 나와 그 건너편의 월성으로 간다.

월성 입구에는 해자가 놓여있다.

적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파놓은 인공 물길

월성 안에는 그냥 빈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곳이 왕궁이었을테지만,

지금은 왕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빈 풀밭으로 남겨져 있다.

따뜻한 겨울햇빛이 풀밭을 비추고, 풀밭 옆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그들만의 조그만 숲을 이루고 있다.

월성 한쪽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굴뚝을 갖춘 석빙고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성을 내려와 그 옆의 계림으로 들어간다.

 

 

 내 마음의 숲...계림으로 들어선다.

전에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었는데, 매표소가 없어지고 그냥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성한 곳, 신성한 숲

숲이 정말 좋다.

예전에 여름날 새벽 일찍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맑고 상쾌한 숲의 새벽.

지금도 그 때의 느낌이 어젯일처럼 생각난다.

학교에서 일을 할 때, 서울에서 돌아다닐 때에도 가끔 그 날 새벽의 숲이 생각날 정도이다.

그래서 내가 경주에서 좋아하는 곳 중의 한 곳이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오고, 청솔모가 부지런히 오고가는 계림숲.

내가 좋아하는 숲에,

내 마음의 숲에 또 다시 와서 기쁘다.

숲 안쪽에는 신라의 기초를 닦은 내물왕릉이 있다.

계림을 나와 계림 뒷편의 경주향교로 들어선다.

 

 

 

 경주향교는 일반향교처럼 좌우대칭을 이룬 그런 향교가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풍기의 소수서원처럼 건물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조금은 낡고 퇴색한 느낌의 향교이었지만,

그런 건물들의 자연스러운 배치가 부드럽게 다가온다.

향교 입구에는 백구 한마리가 의젓하게 앉아있다.

나하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웬지 고양이처럼 도도한 모습이 그리 싫지 않다.

향교를 나와 향교마을, 교촌으로 들어간다.

좁은 길 양편으로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옛건물들도 많지만, 새로 지은듯한 말끔한 한옥들도 많다.

새로 가꾸어지는 동네가 아닌가 싶다.

교촌마을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은 계림을 들렀다가 앞에 보이는 첨성대로 가는데...

마을 한쪽에 예쁜 한옥이 보이고, 앞문이 반쯤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새로 지은 건물인듯한데 참 깔끔하고 단정하다.

한옥은 오래될수록 연륜이 느껴져서 보기 좋은데,

반대로 새로 지은 건물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옥...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건물이다.

사진을 찍고 나오자 두 젊은 여자들이 안으로 잽싸게 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주인 아주머니인 듯한 분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 크게 들린다.

이 곳은 아무나 들어오는 집이 아니라고...

별로 웃을 일이 아니었을텐데, 한바탕 낄낄거리면서 한참을 웃는다.

그 집 뒤에는 유명한 경주 최씨고택이 있다.

광고로 인해 유명해진 집

주변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던 집

그런 훌룡한 집에 와서 참 기쁘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존심마저 접으면서 돈을 벌어야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비정규직과 상시정리해고를 경쟁력 향상이라는 명목 아래 늘려나가고,

특히나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바꾸자는 노동계의 요구에 비용만 늘어난다고 거부하는 사용자의 입장을 대할 때면,

주위의 굶주린 사람들을 걱정해주는 이 집의 정신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모르겠다.

비록 그 집은 옛명성과는 달리 좁아지고 낡고 허름해졌어도

그 정신만은 오늘날에도 전해져 우리사회에 작은 등불이 되고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을 환히 밝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하고 훌룡한 정신이 살아있는 경주 최씨고택을 나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중에 만난 교리김밥 본점.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고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이 집 사장님이 우리나라에서 김밥을 제일 맛있게 만든다고 선전을 하고 있다.

한줄에 1800원, 김밥에 계란이 많이 들어가 있다.

맛은 잘 모르겠고, 사장님과 일하시는 아줌마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장사하시는 모습들이 참 정겨워 보인다.

처음 방문한 나 같은 손님에게도 스스럼 없이 말을 건네주는 친철한 마음.

점심 이후 너무 많이 걸어다니느라고 몸도 무겁고 배도 많이 고팠는데,

적당한 시기에 요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주위의 손님들은 식당에서 사먹고, 저녁 때 또 먹겠다면서 많이 사가신다.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계림숲을 돌아 첨성대로 향한다.

첨성대는 가까이서 볼 때 보다 계림숲 입구에서, 먼거리에서 볼 때가 더 보기 좋다.

첨성대의 역할 그런 것은 잘 모르겠고 옆의 부드러운 곡선이 참 보기 좋다.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부드러운 선.

첨성대의 부드러운 선도 보기 좋지만, 첨성대 주위의 풍경도 참 보기좋다.

넓은 풀발이 펼쳐지고, 경주의 왕릉이 봉긋이 솟아 올라있고, 그 뒤로 멀리 어두워지는 산들이 보이고...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가는 풍경.

나의 마음마저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기나긴 오늘의 일정도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처럼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

첨성대 건너편의 대릉원으로 향한다.

통일신라시대 월성이 왕궁이었다면 이곳은 왕들의 능이 모여있는 곳이다.

업타운은 왕궁, 다운타운은 왕들의 공동묘지,

현대와는 다른 그 시대의 도시구조가 마음 속에 그려진다.

어쩌면 죽은 자의 무덤이 도심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거리가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대릉원에는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왕릉이 산처럼 여기저기 꾸며져 있다.

왕릉 사이로 통행로와 풀밭과 나무들이, 연못이 있고...

천천히 천천히 통행로를 따라 연이어진 왕릉을 구경하면서 지나간다.

이 대릉원의 까치들은 나무 위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왕릉 위에서 놀고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왕릉 위로 많은 까치들이 돌아다니는 모습들이 색다르게 보인다.

대릉원 산책을 마치고, 경주역을 향해 걸어간다.

천년고도 경주답게 역으로 가는 도중에도 이런저런 유적지들이 지나가는 나를 맞는다.

황오리 고분군, 역 앞의 황오동 삼층석탑

그런 것을 보면서 머리 속은 갑자기 복잡해진다.

시간도 늦고, 몸도 피곤하고 그래서 가까운 경주 시내에서 잘지,

아니면 내일을 위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잘지...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경주역에 왔으니까 일단 기차시간을 물어보고, 차시간이 맞으면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경주역 매표소에서 물어보니 지금 당장 떠나는 부전행 무궁화호(18:09)가 있다.

이런저런 망설임 없이 표를 끊고, 기차를 향해 달려간다.

나를 태운 기차는 어두워진 밤거리를 달린다.

나도 등받이에 기대어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한숨 자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기대와는 달리 머릿 속은 말똥말똥해진다.

기차는 태화강역을 지나고 기장역을 지나 해운대역으로 향하고.

밖은 어둠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의 마지막 종착지인 부전역에 도착

밖으로 나오니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건물의 간판들이 바람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다.

부산이 남쪽이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바람이 심해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것 같다.

바람이 몰아치는 밤거리가 싫어 서면 지하상가를 통해 영광도서 앞 골목으로 올라오고...

밤이 너무 깊어 저녁을 먹기도 그렇고 몸도 피곤하고 그래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고,

모텔을 찾아 들어간다.

모텔에서 대충 씻고, 9시 뉴스를 보면서 빵과 우유로 허기를 채운다.

뉴스 이후에는 불을 끄고 잘려고 누운다.

이번에도 잠이라는 놈은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낯선 모텔방에서 불을 끄고 컴컴한 방안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다.

젊었던 한 때.

돈없이 부산으로 흘려와

밤에는 서면 안쪽의 보석 찜질방에서 자고, 낮에는 부산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부산 시내를 낭인처럼 떠돌았던 때가 자꾸 생각이 난다.

생각을 하지 않을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

그런 잡념의 끝에서

문득 설 연휴기간 서울 삼청동 어느 가게 칠판 위에 써 있었던 기형도의 싯구가 생각난다.

"어리석었던 젊은 날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잠이 오지 않는 이 밤.

나는 이 싯구를 소리를 내어 읊으면서 어서 잠이 오기를 바란다.

 

 뱀의 꼬리 : 젊어서 일찍 죽은 기형도를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좀 더 오래 살아서 내 마음을 때리는 시들을 많이많이 발표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