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경주, 부산여행기... 둘쨋날 부산여행
어젯밤에는 잠을 설쳤다.
앞에 컵소독기의 불빛이 너무 강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전원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뮤직방송을 들으면서 컴퓨터를 조금하고,
어제 남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씼고 모텔을 나와 감천마을로 향한다,
서면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대학병원으로 갈려고 했는데,
앞에 지하철역이 나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서면에서 지하철로 토성역까지 이동한다.
부산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에 비해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공간이 좁다.
토성역에서 올라와 언덕 위의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예전에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서 천마산, 진정산, 장군산, 암남공원까지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감천문화마을 입구의 감천초등학교 앞에 내린다.
이곳의 명성 때문인지 사진기를 옆에 들고 내리는 젊은이들이 많아 보인다.
부산은 산과 바다 사이의 좁다란 공간에 도시가 형성되다보니, 집들이 산 위로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산의 산 밑에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부산역에 내려 대합실을 빠져 나오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부산은 다른 도시에서는 듣기 힘든 산복도로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예전에 부산에 있을 때 서면에서 버스를 타고 수정산복도로를, 구비구비 골목길을 돌고돌아 가는 버스를 탔던 일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이곳 감천마을도 아미산, 천마산 밑에 이루어진 마을이다.
예전에는 태극도 신자님들이 많이 살아 태극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전에 이 골목길에서 문 앞에 태극 문양이 그려진 대문을 본 기억이 얼핏 스친다.
감천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 앞에는 커다란 입간판과 이 곳에 대한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입구의 정자에서 담배 한대 피우고 천천히 골목길 안으로 접어든다.
커다란 벽면에 골목길과 건물들이 그려진 대형벽화가 먼저 보인다.
큰 길을 따라 걸어가자 양옆으로 조그만 골목길들이 나타나고,
벽 여기저기에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요즘은 벽화가 대세라고 할 정도로 많이 그려지고,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사회의 소외된 골목길 마다 이런 예쁜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좋기도 하고,
그 동네 사람들하고는 무관한 일회성 행사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들기도 한다.
좀 더 넓게 생각해서 우리 사회의 외진 골목길에 밝고 예쁜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고,
그 곳에 사시는 마을 사람들도 그림처럼 생활이 나아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 올라갈수록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이 곳은 특히 젊은 여자들이 참 많이 보인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한분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시면서 심혈을 기울어 사진을 찍는 모습들도 보인다.
전에 평생을 부산에서 부산의 풍경을 찍으시는 분이 계셨다는데,
지금도 그런 분들이 계시는 것 같다.
블로그도 운영하시는 님도 계시고...
조금 더 올라가자 언덕 위에 감내카페가 보인다.
입구부터가 참 예쁘다
안으로 들어가니 예쁜 소품들이 가득하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집으로 가득찬 모형은 이곳과도 분위기가 맞아 더 예뻐 보인다.
카페에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는데, 이젠 좀 괜찮아진 것 같다.
냉커피를 마시고 본격적인 골목 탐방에 들어간다.
비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오르는 중간중간에 예쁜 벽화들이 보이고,
골목 끝에는 하늘마루 전망대가 있다.
그 곳에서 전망을 살핀다.
뒤로는 용두산공원과 남포동 일대가 보이고,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감천문화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다시 한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진다.
마을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고...
이번 여행에서 이 곳이 제일 좋았다.
건너편 산자락 밑에는 외로이 집 한채가 서 있고,
그 앞으로 빨래들이 겨울햇볕을 쬐고 있다.
따뜻한 겨울햇볕에 빨래들이 말라가는 풍경들이 따뜻하게 보인다.
전망대를 내려오고 골목길을 따라 또 다시 내려선다.
다시 큰 길을 따라 올라가고...
밝은 색으로 칠한 담들이, 집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이 마을들이 아름답고 예쁘게만 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통영의 동피랑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큰 길 따라 걷다보니 조그만 의자가 갖추어진 공원이 나오고
의자 위에 고양이 한마리가 쉬고 있다.
사람들이 다가가 만져도 가만히 있고, 먹을것을 줘도 얌전히 받아먹는다.
웬지 도도하게 보이지만, 가냘프게 느껴지는 고양이 한마리
나도 고양이 옆에 앉아 한참을 쉰다.
공원을 내려와 다시 큰 길을 걷는다.
어제도 그렇지만, 오늘도 걷는게 일이겠다.
큰 골목 옆으로 등대가 보이고, 그 뒤로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있다.
그 둘은 감천마을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기에 멋지게 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용을 쓰다가 포기하고 다시 걷는다.
마을의 끄트머리에는 마을 아래로 내려가는 긴내리막이 펼쳐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고 있다.
도중에는 싱싱한 대나무들이 보이고, 태극교 본당도 보인다.
건물이 무지막지하게 크다보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리막 끝에는 벽면에 마지막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차들이 다니는 차도 옆으로 17번 국제백양아파트행 시내버스 종점이 있다.
막 떠나려는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가 고신대학병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자 앞으로 송도해수욕장이 보인다.
해수욕장과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송도해수욕장 입구로 걸어간다.
2층의 시골한방돼지국밥집에 들어가 대패삼겹살을 시킨다.
나는 삼겹살을 무척 좋아한다.
퇴근 후에 또는 산을 내려와 소주 한병에 삼겹살이면 천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항상 이 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지지난 가을 1박2일 부산여행을 왔을 때에는 아침부터 이 집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삼겹살에 밥 두공기를 간단히 해치우고 일어선다.
건너편에 Cafe "Terrace"에 들어가 이번에도 냉커피를 주문해서 마신다.
이 카페도 예뻤는데, 사진 찍는 것은 넘어가고 편하게 앉아 냉커피를 마신다.
다음에 이 곳에 오면 그 때는 꼭 사진을 찍어야지...
냉커피를 마시고 송도해수욕장 앞에 선다.
부산에는 참 좋은 곳들이 많다.
기장, 송정, 달맞이 고개, 해운대, 동백섬, 광안리, 이기대, 초읍 어린이회관, 을숙도, 다대포, 금정산, 범어사, 대신공원 등등...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송도해수욕장, 용두산 공원, 달맞이 고개이다.
송도해수욕장은 바다이면서도 양편에 산이 둘러쌓여 있고, 건너로 영도가 가로막고 있어
바다라기보다는 커다란 호수로 느껴진다.
그런 느낌들이 편안하게 다가와 부산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다.
아예 잠은 이곳에서 잔다.
따뜻한 겨울햇빛에 바다도 잔잔하고, 바람도 잔잔하고...
모든 것들이 평온해보인다.
모래사장 중간에는 정원대보름 행사를 위한 커다란 달집이 세워져 있고,
바다 옆 모래사장 위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등대를 지나고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바다를 벗어난 도로 옆을 걷는다.
그 도로 한편, 송림공원 입구의 화장실 옆에는 동백꽃이 몇개 피어 있었다.
그런데 그늘이 져서 그런지, 아니면 추워서 그런지 꽃이 그리 예쁘지 않다.
부산으로 오면서 동백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항상 송도해수욕장에 올 때면 큰 길 옆으로 심어진 나무가 무엇일까 궁금해 했었다.
처음 보는 나무이고, 도대체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나무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많이 본 먼나무.
겨울에 빨간열매를 매달고 있는 먼나무.
그저 나무 이름 하나 알았을 뿐인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나무나 풀이름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그런 이름들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큰 줄거움인지 모른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자갈치 시장 입구에서 내린다.
지하상가를 통해 남포동에 다다른다.
남포동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가득하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젊음의 거리로 느껴진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용두산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여 그것을 이용해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간다.
용두산에서 부산의 전망을 내려다본다.
아침보다는 날이 많이 맑아졌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선명하지가 않다.
10여년 전 용두산에 왔을 때 날이 엄청 맑았었다.
바다 건너 뚜렷하게 높은 산이 보였다.
제주도는 아니고, 일본도 아니고...
옆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저 산이 대마도에 있는 산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대마도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한국땅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용두산 공원을 한바퀴 돌고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선다.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아침부터 너무 많이 걸어 피곤하고, 어제부터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 이제는 집으로 가야지 하는 맘이 생긴다.
그래서 큰 길에서 버스를 탈려고 했는데, 이 골목길에 동광동 인쇄골목의 벽화와 40계단이 생각나
큰 길을 건너 골목길로 들어선다.
그곳은 동광동 인쇄골목
담벼락에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조금 어두운 느낌의 그림도 있었지만,
대부분 원색의 화려한 그림들과 꽃, 새그림들이 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해주고 있다.
다시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으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도 이미 명소가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다.
인쇄골목을 지나 조금 더 가니 40 계단이 나온다.
6.25 당시 부산으로 피신을 내려와 힘들게 생활하시던 모습들이 동상으로 그려져 있다.
4 0계단 중간에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중년의 아저씨가 앉아 계시고,
그 밑에는 뻥튀기 아저씨와 물동이를 인 소녀상이 있다.
전쟁 당시 힘들었을 부산 피란 시절의 삶의 어려움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시는 것 같다.
40 계단을 나와 부산역으로 향한다.
1박2일 경주, 부산여행.
짧은 여행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아서 그런지 결코 짧은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면서 꽉찬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새로운 여행지라기보다는 간 곳을 또 가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하긴 살아가면서 꽉찬 무언가를 느낀 적이 참으로 오래된 것 같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족하다면 탓하기 전에 그 부족함에도 감사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겠다.
짧지만, 결코 짧다고 느껴지지 않는 1박2일 경주, 부산여행.
앞으로의 나의 삶에, 일상에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지난 여행의 추억들을 되살리면서
여유를 찾고, 힘이 되어주는 그런 버팀목.
오랫동안 그런 버팀목으로 나의 삶을 받쳐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