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둘)
먼 길을 걸어오신 할머니가
잠시 짐을 내려놓으시고
앞으로의 가야할 길이 아닌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을
되돌아보시는...
엊그제 학교일을 마치고
용산역에서 목포행 KTX(19:40)를 타고 정읍역으로 왔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여관에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았다.
KBS 9시 뉴스와 tvN 알쓸신잡2, 영월편
요즘 내가 좋아하는 알쓸신잡2
지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남자들의 수다
누군가가 원시의 불이 현대에 세가지 불로 나누어졌는데,
그게 가스렌지, 보일러, TV라고 말씀을 하신다.
원시 시대 수렵인들이 사냥으로 쌓였을 피로와 무서움을
동굴 속의 불을 보면서 달랬다면,
현대인들은 집에서 돌아와 회사에서 쌓였을 스트레스를
TV를 보면서 풀고 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누군가가 그렇다면 리모콘은
불쏘시개라고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는 저녁 때 집에 오면
CD를 들으면서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었는데,
요즘은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TV를 켜고 TV를 본다.
텅빈 집,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나에게 TV는 지식의 보고이고, 친구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다.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는 지식의 보고이자
나에게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고마운 친구
어제 밤늦게 TV를 보아서 늦게 일어난다.
부지런히 씻고, 옷을 챙겨입고, 배낭을 챙겨 모텔을 나온다.
모텔 옆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전라도 백반, 소박한 밥상
아침을 먹고 건너편의 정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소사로 가는 직행버스를 탄다.
나를 태운 버스는 정읍을 지나 고창, 부안 방면으로 달리고...
정읍을 지나면서 길 옆으로 키 큰 소나무가 자주 보인다.
줄포 버스터미널을 지나면서는
수확을 마친 빈 들판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빈 들판
겨울을 기다리는 들판
또한 집 주변에는 작은 감나무에
감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가을의 서정을 일깨우게 하는 모습
곰소가 가까와지면서 젓갈 판매점들이 많이 보인다.
곰소 정류장을 지나서는
물이 빠진 곰소항, 바다가 보인다.
젓갈과 소금, 물고기를 제공하는 풍요의 바다
그래서 그 바다가 고맙게 느껴진다.
버스는 바다를 지나 산 속으로 들어간다.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진 내변산
버스 종점인 내소사 버스정류장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가게에서 캔커피를 사 마시고,
길가에서 군밤을 사가지고 군밤을 먹으면서 내소사로 간다.
매표소를 지나고 유명한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키 큰 전나무길
멋진 길
그럼에도 그 길은 그리 길지 않아 아쉽다.
쭉쭉 뻗은 전나무들
마음마저 시원스러워진다.
전나무길이 끝나면 단풍나무길
단풍이 곱게 물들여 있다.
붉은 빛 단풍, 가을 손님
단풍길을 지나 내소사로 들어간다.
"능가산이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범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내소사의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
'다시 태어나 찾아온다는 뜻이다'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스님이 창건한 이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성종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까지도 소래사였다.
그러던 것이 조선 인조 11년(1633)에 청민선사가
중건할 때쯤에 내소사로 바뀐 것 같은데,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가2 - 산을 강을 넘지 못하고" 중에서 p.334
마당 가운데의 1,000년의 연륜을 가진 느티나무
그 느티나무도 단풍이 한창이다.
이 느티나무를 보기 위해 내소사에 왔다.
오래된 나무
우리나라에 1,0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나무가
46그루 있다고 한다.
그 나무 중의 하나
느티나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느티나무를 내 사진기에 열심히 담는다.
또 내소사 앞의 단풍과 이 느티나무 사진을
카톡으로 상해에 있는 내 동생에게 보낸다.
내 동생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사계절 푸른 잎을 매단 상해에서는
오색 단풍을 보기 힘들다면서
단풍이 예쁘다고 좋아라한다.
부안여고 학생들이 내소사로 역사탐방을 왔다.
마당 한가득 몰려 기념사진을 찍고...
학생들을 지나 내소사 대웅전
단청을 입히지 않아 더더욱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바라본다.
역사적 기품과 단정함을 갖춘 대웅전
그 뒤로 보이는 내변산도 멋있다.
내소사는 아주 오래 전에 한번 왔었다.
그 때 내소사가 너무 좋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했던 절이었다.
내소사는 예전 이름은 소래사였다.
신라시대 당나라 소정방이 왔다갔다고 소래사였다는 속전이 전해진다.
그런데 소정방과 상관없이
그 당시 사람들이 내소사에 와서
내소사가 너무 좋아 그 뿌듯함에
소래사라는 이름을
내가 이곳을, 아름다운 절에 왔다는 마음에
다음 생에도 또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바람으로
소래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그 만큼 내소사는 아름다운 절이다.
다시 이 절을 찾아오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풍빛 고운 내소사를 내려와
오른쪽의 탐방길로 들어선다.
내소사와 입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 곳은 조용하다.
사람들도 드물고...
입구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산으로 들어간다.
산 입구는 내 기대와는, 아니 내 욕심과는 달리
단풍이 지고 겨울산으로 들어가고 있다.
급한 오름길, 경사길
산비탈을 부지런히 올라간다.
돌 계단, 나무 계단, 급경사길
조심조심 오르기 시작하고...
1차 능선에 닿는다.
바위 전망대에서 곰소항이 보이는데,
날이 흐려 바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단풍도 없고, 바다도 보이지 않고...
건너편 산 아래로는 내소사도 흐릿하게 보인다.
아쉬움
이럴수가...
조금은 편안해진 산길을 걷는다.
바위 위에서는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이른 점심을 드시고...
한참을 걷다가 힘들어 바위 위에 걸터앉아
겉옷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물을 마시면서 쉰다.
내변산에서 건너편의 선운산을 보고 싶어했는데...
쉬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계속 든다.
분한 마음을, 힘들어지는 두다리를 달래면서 산길을 걷는다.
산죽길
관음봉 삼거리를 지나고...
산비탈길을 걷는다.
산비탈에 철제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 철제길에서 산 아래 직소보
산중 호수가 보인다.
당연 흐릿하게...
그 산중 호수를 보면서 선운산에서 저처럼 호수가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한다.
철계단길, 오름길을 거쳐 관음봉 424m에 도착
관음봉 정상석 뒤 의자에서는
함께 올라오신 등산객들이 모여 식사를 드시고 계신다.
옹기종기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사람들이 꾸준히 올라오신다.
그래서 산 정상은 산에서의 만남의 광장이다.
전망이 꽝이라 그냥 의자에 앉아 배낭에 있던 사과 하나 먹는다.
사과 하나 먹고 관음봉을 내려와 세봉 방향으로 걷는다.
급한 내림길
내림길 이후에는 또다시 급한 오름길이 나타난다.
관음봉에서 사람들이 이제는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웬지 신뢰가 되지 않았는데,
내 기분처럼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꾸준히 반복된다.
전망이 트이면서 산 이곳저곳이 보인다.
간혹 마주치는 단풍
오른편으로 내소사가 계속 보인다.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세봉 402.5m에 도착
세봉에는 사람들이 없이 쓸쓸하다.
보통 사람들이 관음봉에 올랐다가
다시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셨다.
나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세봉까지 오면서 그 등산길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냥 산을 되돌아 내려가시는 것 같다.
몇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오는 반복길
그래서 지루했던 길
니도 다음에 내변산에 온다면 관음봉에 올랐다가
다시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직소폭포로 갈 것이다.
세봉 이후의 길도 꾸준한 반복길이다.
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오고...
길 오른편으로 계속 내소사가 보이고...
내소사를 정점으로 말발굽 모양으로 봉우리를 타는 길이다.
그렇게 산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아주 오래전에 다녀왔던 대구 팔공산길이 떠올라졌다.
그 산길도 동화사를 중심으로 봉우리가 이루어져있고,
내변산보다 더 심하게 굴곡이 심했던 기억
가끔 산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박혀있는 모습은
고창 선운산과 비슷한 모습이다.
가끔 커다란 바위 위를 내려서고...
지루한 산길을 한없이 걸어간다.
마을이 가까워졌는지, 마을 아래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행사가 있는지 각설이 타령이 흥겹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걸죽한 노랫말
꾸준한 계단길을 내려와 산을 내려온다.
내소사 뒷편의 마을길
산을 내려오자마자
상해에 있는 동생에게 산을 내려왔다고 카톡을 보내고...
그 동안 산에서 피우지 못한 담배를 연거푸 두 대 피운다.
산 아래 나무에는 단풍이 한창이다.
산을 경계로 단풍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입구의 내소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식당 아래의 전나무길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를 마신다.
입구의 나무와 파라솔이 예쁜 카페
그래서 내소사로 가면서 산을 내려와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생각했었다.
카페 안은 염색을 한 수제품들, 가방과 옷과 지갑 등 이런저런 물건들을 전시하고 팔고 있다.
카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하룻동안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고
배낭에 있던 책,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는다.
문화인류학 개론시간에 처음 알았던 책
인류학의 고전
그래서 한번 읽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비판들을 많이 하여서
굳이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졌던 책
이번에 일본여행을 준비하면서 사서 읽게 된 책
서양과 일본의 비교틀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비판
그래서 조금은 순진한 학자의 이야기라는 폄훼
그럼에도 나에게는 읽을 만한 책이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책
무엇보다도 에도시대 농민들의 세금문제와
사무라이의 이야기는 나름 재미있다.
소중한 자료로서의 의미
그 당시 농민들은 수확 후에 60%의 세금을 냈다는 이야기
그 당시 아시아 국가에서의 세금 중에서 지나치게 가혹했다는 이야기
그 세금으로 사무라이에게 봉급이 나왔는데,
그 봉급이 적어 사무라이들도 어쩔 수 없이 궁핍한 생활을 해야했다는 이야기
물론 사무라이에게는 그것이 궁핍함이 아니라
절제이자 검소함이고, 사무라이의 명예이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가난조차도 사무라이에게는 명예가 되는 세계
평화기에 들어서는 싸움꾼 사무라이가
다도 전문가, 정원조성 전문가, 외국어통역 전문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한참을 책 속에 빠져든다.
카페를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부안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시간이 많이 남아 주머니 안의 군밤을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한참 기다린 후에 부안터미널로 가는 301번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군내버스는 염전이 넓게 펼쳐진 곰소와 줄포를 거쳐
부안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 선다.
부안
부안이 웬만한 시지역보다 높은 건물들도 많고
주변에 돌아다니시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읍이라 조그만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읍내치고는 엄청 크다.
거기에 활기찬 분위기
부안에 대한 첫인상으로
새만금의 최대 수혜자는 부안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군에서 시로 승격을 할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당산을 찾아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파악을 하고 와야햐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항상 부족함이 많은 나
준비가 덜 된 나
사람들의 도움으로 도서관 옆의 남문안 당산을 찾았다.
주변의 당산,돌솟대와 돌장승도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도 늦고 서울로 가는 기차 시간도 고려해서
하나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부안 시외버스 터미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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