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황금연휴의 첫날이었던 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길을 떠나시는 바람에 국도와 고속도로가 심한 정체를 이루었다.
어제 아침 8시에 원주로 가는 버스를 탄 나는 장장 4시간을 걸쳐 원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터미널에서 태백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버스표를 환불하고
그 옆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6시에 강릉 터미널에 도착하고, 강릉에서 다시 태백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저녁 8시에 태백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태백까지 장장 12시간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처음부터 태백까지 가는 기차를 예매하였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여튼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야 태백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여관에서 아침 일찍 일어난다.
빈 속에 모닝커피 한잔 마시고 씼고 여관을 빠져나온다.
새벽 태백시내의 시원하고 차가운 공기가 내 폐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터미널 건너편 기사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터미널로 들어가 당골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웬지 오늘 태백산 산행은 어제 버스에서 고생한 보답으로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당골광장과 석탄박물관으로 가는 7번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나를 태운 시내버스는 상장동 벽화마을을 지나 당골광장 버스주차장에 선다.
주차장 가운데 성황당이 눈길에 들어온다.
연하고 푸른 나무잎새 사이에 숨은 폼새의 성황당이 참 아늑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안내문에 따르면 태백산 근처에는 단군과 단종을 모시는 이런 당집들이 많다고 적혀있다.
매표소를 지나고 당골광장 870m를 거쳐 산길로 들어선다.
뒤로 뻐꾸기소리가 들린다. 뻐꾹, 뻐꾹, 뻐꾹...
오래간만에 뻐꾸기 소리를 뒤로하고 산으로 들어선다.
단군성전과 석장승을 지나
한쪽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경쾌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넓직한 길을 걷는다.
길이 평탄해서 걷기에 참 편하다.
쉬지 않는 대신, 천천히 천천히 걷기로 맘을 먹고 길을 오른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끝나고 산비탈을 따라 급경사를 이룬 계단길이 보인다.
계단길 앞의 의자에 앉아 겉옷을 벗고,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얼마간의 쉼을 마치고 다시 계단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서서히 몸 속에 숨어있던 땀들이 솟아나오기 시작하고, 숨이 거칠어진다.
긴 계단길이 끝나고 널찍한 쉼터가 마련된 반재 1200m에 도착한다.
반재는 내가 오른 당골 매표소길과 백단사 매표소길이 겹치는 곳이어서
쉼터의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계신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푹 쉰다.
얼마간의 쉼을 마치고, 망경사에서 걸어놓은 연등을 따라 경삿길을 오른다.
길 옆에는 진달래꽃은 지고 철쭉은 아직 꽃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웬지 진달래도 철쭉도 없는 이 봄길이 적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절에서 가까운 길 한편에 진달래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고마운 진달래...
망경사에 도착.
이렇게 높은 곳에 절을 세우는 사람들의 마음.
또 산을 거슬러 올라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
절에 도착해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제일 먼저 궁금해진다.
절은 그저 그렇고 절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내가 나중에 이곳에 또 온다면, 아마도 절 때문이 아니라 절 앞의 풍경이 맘에 들어서 일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능선들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위로 하늘이 펼쳐지고...
마음마저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한 조망이라기보다는
능선들의 얽힘으로 인해 묵직하게 다가오는 조망.
하여튼 이 조망에 반해 망경사 앞 평상에 앉아 오래오래 쳐다본다.
이런 조망들이 나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오래오래 바라본다.
절에서 뽑아온 커피 한잔 마시면서...
망경사에서 단종비각이 보인다.
단종비각에 오른다.
나이 어린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나중에는 죽임을 당하고...
그런 억울한 일들을 당한 어린 임금은 이곳 백성들에게 태백산의 산신령으로 모셔진다.
단종비각을 거쳐 천제단 1561m에 도착
드디어 능선에 도착한 것이다.
이번 겨울 산에 다니지 않아서 태백산을 오르면서 괜시리 걱정을 많이 했었다.
너무 오랫동안 산에 다니지 않아 무사히 산에 오를 수 있을는지...
그런데 산이 부드러워 그리 큰 고생 없이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우선 맘이 편해진다.
천제단에서 장군봉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여기저기 주목이 있어 태백산의 또 다른 멋을 보여주고 있다.
태백산 주목.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장군봉에서 유일사로 내려가는 길 중간중간에 이렇게 많은 주목이 있는지는 몰랐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오랜 시간의 흐름이 나무에 새겨져 있고, 이리구불 저리구불 뻗은 줄기의 모습은 기괴스럽기도 하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 1567m을 지난다
천제단에서 장군봉으로 가는 길에는 수 많은 들꽃들이 피어 야생화 천국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른 봄에는 아직도 겨울의 얼음들이 남아 있어 산에 잘 다니지 않은 관계로
이른 봄에 피어나는 얼레지나 현호색, 복수초를 산에서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오늘 태백산에서 얼레지와 현호색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태백산... 전망도 좋고, 주목도 볼 수 있고, 많은 야생화들을 볼 수 있어서
어느 사이에 내 마음 속의 산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장군봉을 지나 유일사 방향으로 내려온다.
원래 계획은 장군봉에서 다시 천제단을 거쳐 부쇠봉, 문수봉, 소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오늘 서울로 갈 생각으로 일정을 바꿔버린다.
다음에 태백산에 또 온다면 이런 식으로 태백산을 돌 것이다.
장군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내가 내려가는 사이에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계신다.
재미있는 점은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한무더기씩 산을 오르면서
나에게 일일이 인사를 보낸다.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일일이 답례를 하기에도 힘이 들 정도로...
길 내리막길을 내려오자 유일사 쉼터가 나타난다.
그 이후에는 긴 내리막길이 임도형태로 나타난다.
길 옆으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참 보기 좋다.
숲길을 걷는 기분.
그러나 그 길은 지루할 정도로 길어서 나중에는 지루한 길로 바뀐다.
유일사로 내려가는 태백산 임도길... 처음부터 모든 것들이 다 좋았는데 막판에 옥의 티로 남는다.
길고 지루한 임도길을 내려오고, 유일사 매표소 옆에서 태백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태백 터미널로 온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리니, 하늘 위로 제비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제비.
제비들은 하늘을 날면서도 시끄럽게 재잘거리고 있다.
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고, 터미널 안의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이제 남은 일은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는 일만 남았다.
어제처럼 무지막지하게 도로가 막히기 않기를 바랄 뿐이다.
터미널로 들어가 서울로 올라가는 표를 끊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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