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산적두목(열넷)
산적두목이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초막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 이후,
귀양중인 선비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갔다주는
주위의 마을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날부터
오후에 마을사람들을 도와
농삿일을 거듭니다.
오전에는 동네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오후에는 들로 나가
농부들과 함께 들일을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그래도 명색이 선비이시고, 양반이신데,
양반의 체면이라는 것이 있으신데,
어떻게 이런 농삿일을
자신들과 함께 하시느라고 극구 말렸지만,
선비는 선비대로
나라에 죄짓고 귀양온 사람이
선비며, 양반의 체면을 따져 무엇하느냐고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툰 농삿일이
여러날을 거치면서
차츰 몸에 베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저녁에 들에서 들밥을 얻어먹고
초막으로 들어와
책도 펴지못한채
자리에 눕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쑤셔
끙끙 앓는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글을 읽는 것과
옆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과의 차이점에 대해
선비 스스로 놀라게 됩니다.
그런 놀람과 함께,
조선이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유는
농사 한번 제대로 짓지 못한 양반들이
책을 통해 세상을 다 알았다고 자부하면서
이 조선을 갇힌 생각으로 다스렸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아프게 들었습니다.
귀양생활이며,
농삿일이
힘들고 괴로운 생활이기는 했지만,
선비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만큼
배움이 큰
세상교육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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