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현기영님의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읽고...

자작나무1 2017. 3. 26. 15:44

 

 현기영님의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읽고...

 

  "관덕정 광장에서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

  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이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

  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찾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

  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의 십자가와 함께 순교의 마지막  잔영만을 남긴 채

  신화는 끝이 났다. 민중 속에서 장두가 태어나고 장두를 앞세워 관권

  의 불의에 저항하던 섬 공동체의 오랜 전통. 그 신화의 세계는 그날로

  영영 막을 내리고 말았다"(p.69)

 

 지난 1월달에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소설도 읽었어야 했는데,

유홍준 교수님의 답사기를 읽느라고

이 소설은 미처 읽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제주도라지만,

제주의 아름다움만 이야기하고

제주의 아픔

4.3사건을 모른다는 것은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을 통해 4.3의 모든 것들을 다 알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예의차원에서 이 소설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4.3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이 씌여질 당시만해도

4.3은

법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은연 중에 우리사회의 금기사항이라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간접적으로 겪었던 4.3 이야기는

쉽게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머뭇거림

조심스럽게 4.3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뭔가 멈칫거림을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 만큼 작가의 고민,

지식인의 고뇌로 읽혀졌습니다.

 

 해방 다음 해의 관덕정에서의 3.1 집회

해방 이후에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던

제주도민들은

관덕정에 모여 집단집회를 열었는데,

미군정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군정의 총기난사로 몇명의 주민들이 희생당하였습니다.

 

 뭍사람들에 대한 반감

거기에 이념대립까지 겹쳐

중산간 마을이 소개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과 마소까지 죽음의 참혹을 겪었습니다.

 

 4.3을 떠난 작가의 어린시절 이야기

가난, 배고픔, 친구들, 놀이

제주도의 자연과 친구들이 있어

그 나마 그 어려웠던 시절들이

돼지고기가 약이었던 힘들었던 시절들이

그리 어둡지 않았겠다는 생각

 

 닭똥꼬망, 돌패기, 똥깅이, 웬깅이

재미있는 아이들의 별명 속에서

그 시절의 아픔과 즐거움들이

다 녹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부재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로

아버지의 이야기들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데,

저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전쟁 전에는 집을 나가 몇일씩 집에 안 돌아오시는 아버지

전쟁 중에는 전쟁터에 나가 집에 안 계시는 아버지

전쟁 후 작은 어머니를 얻으시고

인천에서 사업을 벌으시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하자 빈털털이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무표정의 아버지,

 

 실은 이 소설도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영혼이 아들의 마음으로 이사왔다면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에서

평일이면 매일 술 먹고 밤 늦게 돌아오고

휴일이면 아침에 나가 저녁에 늦게 돌아오는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앞으로 지방으로의 여행을 금한

금족령이 내려진...

집에 가만히 있지 못 하는

저의 모습이 겹쳐져서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에 울컥해지기도 했습니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이렇게 귀향

  연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향 연습을

  하는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 동안의 서울 생활이란 부질없이 허비해

  버린 세월처럼 여겨진다. 저 바다 앞에 서면, 궁극적으로는 내가 실패

  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

  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

  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p.374)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

불화의 관계였던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죽음과

그에 따라 당연스레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아들

저도 그렇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란

아버지의 죽음으로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움 이후에도

더 큰 무게로 아들들에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으면서

이 소설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게

바치는 소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재미가 있어서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너무나 늦게 읽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제주도

제주도를 통해 이 소설을 읽게 되어서

제주도에 고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또한 제주도가 아름다운 섬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슬픈 섬이라는 생각

남도의 섬, 제주도가

6.25 이전부터 전쟁을 겪었고

6.25 이후에도 또 다른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거기에 세월호 아이들이

가고자했지만, 갈 수 없었던...

슬픈 섬, 제주도

슬픔 만큼 아름다운 섬이라는

되지도 않는 말은 붙이지 않을려고 합니다.

 

 저는 내일부터

현기영님의 소설집, "순이 삼춘"을 읽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