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당일치기 춘천여행기... 내 고향 춘천이야기

자작나무1 2014. 3. 9. 18:05

 어제 형한테 홍릉수목원으로 복수초를 보러 가자고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형이 겨울에 수목원은 볼 것 없다고,

요즘 복수초 사진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역제의를 해온다.

그래서 그 동안 가고자 했으면서도 가보지 못한 내 고향 춘천으로 가자고 다시 카톡을 보냈다.

형은 한참 후에 O.K라는 카톡이 왔다.

 

 아침 7시에 신도림역에서 형을 만난다.

용산역으로, 상봉역으로, 남춘천역으로 지하철을 몇번씩 갈아타고 춘천으로 간다.

그 나마 이른 시간이라 전철에는 그리 사람들이 많지 않다.

블로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춘천으로 간다.

남춘천역에 도착

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11번 소양강댐행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강댐으로 간다.

우리를 태운 시내버스는 공지천과 중앙로와 인성병원 앞을 지나간다.

내 고향 춘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낯설지가 않다.

저 가게는 춘천 국민학교 친구의 집이었고.

저 식당은 내가 자주 가서 밥을 먹었던 식당이고,

저 중국집은 고등학교 반창회를 열었던 곳이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라지고...

그러면서 고향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춘천 고등학교 옆을 지나

이제는 미군들이 떠난 미군부대 가운데를 지나간다.

미군들이 떠난 미군부대는 이번에 처음 보는 것 같다.

몇 개의 건물들과 빈 터

저 멀리에도 몇개의 가건물이 세워져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군이 떠난 미군부대 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춘천에 사는 친구들한테 이야기 하면

그리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비용과 수익이라는 차원에서 내 생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하긴 춘천 시민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미군부대를 지나 춘천역 앞에 서고

소양강 처녀상이 세워진 곳을 지나 소양교를 건넌다.

넓게 펼쳐진 소양강과 그 뒤로 길게 연이어진 산들

내 고향 춘천의 풍경들이 가감없이 내 마음 속으로 편안하게 파고든다.

몇년 전 겨울 형과 함께 이곳에 와서 소양강 처녀상과

강 뒤로 눈쌓인 겨울산들을 사진기에 담았던 일들도 떠올라진다.

버스는 학교 다닐 때 소풍지였던 현충탑을 지나 여우고개 앞에 이르고...

내가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이라는 TV 프로가 있었다.

거기서 춘천의 여우고개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보고,

나중에 친구들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들...

여러 생각에 젖어 있는데, 핸드폰으로 내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온다.

집에 올 때 닭갈비를 사가지고 오라는 카톡

내 동생은 춘천에 오면 닭갈비를 사가지고 왔는데,

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항상 사가지고 오라고 그러면 귀찮다고 안 했는데...

이번에도 안 사가지고 가면 동생한테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우고개를 지나고 한샘고등학교, 샘밭을 지나고

소양강댐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댐 위에서 아래쪽을 쳐다본다.

넓은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산들

이런 모습들에 내 마음은 다시금 편안해진다.

소양강댐이 만들었던 당시

혁명의 막바지, 유신이 실시되기 시작하던 시기

하라면 무조건 해야하고,

까라면 무조건 까야하던

무서운 시절에 이루어졌던 소양강댐 건설공사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춘천의 아파트 공사현장을 떠돌아 다닐 때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는

소양강댐 건설공사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그 분들의 말씀에 화약을 잘못 사용하여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화약의 위력도 대단했지만,

사고 이후에는 산 위쪽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고 하신다.

산 위의 나무 위에 사람들의 살갗이 잔뜩 묻혀 있어서 끔찍했다고...

그런 사고 위에서 이루어진 소양강댐 공사

박정희 대통령, 현대건설 정주영 명예회장, 이명박 건설소장...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대공사가 아니었을까...

그 시대의 힘과 정신이 모이고 모여 이룬 대공사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토목건축이 소양강댐 건설이라면,

전두환 정권 시절의 대표적 토목건축은 양구의 평화의 댐이다.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선착장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조형물들과 소양호를 사진기에 담는다.

도중에 아랫쪽에 미니 카페가 보여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 넓은 창으로는 넓게 펼쳐진 소양호가 바라보이고...

넓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모습들이 곱게 다가온다.

미니 카페를 나와 부지런히 선착장 방향으로 걷는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뱃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강가라 추울 줄 알았는데, 바람도 잔잔하고 춥지 않았다.

춘천에서 살 때 한겨울 새벽에 이곳 뱃터로 빙어 낚시를 온 적이 있었다.

친구하고 둘이서 첫버스로 소양강댐으로 와서

선착장 앞에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빙어낚시를 하였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였을까...

빙어를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마셨던 독한 소주와

한참을 흐른 후에 산 위로 갑자기 떠오른 붉은 해

그 때의 놀람은 감동으로 변하고...

그 날의 일들이 어젯일처럼 떠올려진다.

정시와 30분에 출항하는 뱃시간

11시 정시에 청평사를 향해 출항을 하고...

15분 남짓 배를 타고 청평사로 간다.

창가 의자에 앉아 호수와 산들을 본다.

편안한 풍경들에 마음마저 놓인다.

청평사 선착장에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청평사를 향해 길을 걷는다.

청평사 입구의 식당가에서 점심으로 옛날 닭갈비를 먹고

그 옆의 카페에 들어가 다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입구에 원색의 파라솔이 놓인 카페 "숲"

이름도 참 이쁘다.

카페 "숲"을 나와 본격적으로 청평사를 향해 길을 오른다.

긴 다리를 건너고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산길을 오른다.

옆의 계곡물 소리가 듣기 좋다.

봄이 오는 소리

겨우내 꽝꽝 얼었던 계곡물이

날이 풀리면서 서서히 녹기 시작하고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물소리

계곡물 소리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길을 걷다보니 커다란 거북바위가 나를 반긴다.

어렸을 때 이 바위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어렸을 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청평사에 많이 왔었다.

이 바위를 지날 쯤에는

할머니께서 이 거북바위가 물에 잠기면

세상이 망한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거북바위를 보면

항상 할머니의 무서웠던 이야기가 떠올려지곤 한다.

구성폭포와 영지를 지나고 청평사에 다다른다.

 

 

 

 청평사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청평사에는 전각들이 그리 많지 않았었다.

축대가 올려진 곳은 텅 비어 있었다.

폐사지

그 옆에 몇개의 건물만이 절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절보다는 몇백년은 된 주목을 보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었다.

주변에 떨어진 나뭇결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세월이 흘렸슴에도 늠름한 나무들이 참 보기 좋았던 기억

그래서 이번에 청평사에 왔을 때 이 주목나무 앞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다.

청평사에서 바라다보는 겨울산도 보기 좋다.

물론 겨울이 아닌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더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새로 지은 전각들보다는 주변의 나무로 만든 잠자리나 문구들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

만추의 가을날

바람에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겨울날의 양식을 모으기 위해 부지런히 다람쥐들이 돌아다니고,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널려 있는

만추의 가을날의 서정이

나무판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청평사에서 사진 찍기를 마치고

부지런히 걸어 선착장에 도착한다.

오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배를 타고 소양강댐 선착장에 이르고...

선착장에 붙어있는 양구 가는 뱃시간을 보면서

올 여름에는 형과 함께 이곳에서 배를 타고

양구까지 여행을 해볼까 이런 생각에 형에게 물어보니,

형도 좋다고 말씀을 하신다.

소양호로 떠나는 여름여행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소양강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역으로 가고...

춘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공지천으로 간다.

공지천의 이디오피아라는 카페를 가기 위하여...

내가 카페 사진을 찍으면서

내 여행은 어느새 카페 여행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지난번 통영여행이나 양양여행에서도 그런 면이 많았는데

여행인지, 카페 여행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물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여행이기는 하지만...

 

 또한 블로그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행 후에 집에 와서 푹 쉴 수 있었는데,

블로그를 하면서는 그런 휴식시간이 많이 없어졌다.

심지어는 여행 후가 더 바쁠 때도 많다.

밖으로 나돌아다니고...

집에 들어와서는 사진을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리고...

게다가 여행 후기를 쓰느라고 머리를 싸매고...

무엇인가 앞뒤가 뒤바뀐 느낌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쉽게 개선하지 못하는 나.

블로그와 나에 대한 고민은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공지천에 내리고

이디오피아 카페를 찾아 들어선다.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인연을 바탕으로 세워진 카페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 당시만해도 이디오피아는

오랜 역사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였던 나라

80년대가 시작되면서

오랜 가뭄과 전쟁, 정치적 무능이 오늘날의 이디오피아를 만든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내가 춘천에 살 때는 이 카페에는 그리 오지 않았었다.

교통도 그렇고 웬지 고급적인 분위기라 혼자 찾아가기에는 많이 망설였던 카페였다.

대신 우리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바라라는 카페를 좋아했었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던, 전통차를 마실 수 있었던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카페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자주 가면서 그런 분위기에 푹 빠졌었다.

늦은 밤에도 친구를 불러 찾아갔던 카페

어느 날에는 등화관제 때문에 모든 불을 끄고 촛불만 켠 채

커피를 마셨던 적도 있었다.

공지천 이디오피아 카페에서 지금은 사라진 카페 바라를 그리워한다.

어느날 밤에 춘천에 살던 친구로부터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춘천의 바라가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 때의 아쉬움,

또 그런 사실을 일부러 전화로 알려준 친구가 한없이 고맙기도 했었다.

 

 

 사람이 많은 주말의 이디오피아 카페를 뒤로하고

공지천을 거닌다.

공지천

내가 춘천에 살 때 휴일이면 갈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았었다.

등산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었다.

춘천에서 가까운 곳에 갈만한 곳은

강촌의 문배마을, 삼포 유원지, 소양강댐과 청평사, 그리고 공지천이었다.

공지천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주말이나 휴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지천을 갔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우리들 사이에 생일 파티를 공지천에서 열었던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었다.

저녁에 술을 먹고

술취한 생일인 친구를 분숫물에 빠뜨렸던 일

물에 빠졌던 친구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연신 담배를 빨아대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워라, 20대의 젊은 나와 그 때의 친구들이여...

 

 공지천은 퇴계 이황 선생님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퇴계 선생님의 어머니는 춘천 박씨이셨고,

그 어머니께서 사셨던 곳이 지금의 퇴계동이다.

어린 퇴계 선생님이 버들잎을 따서 물에 띄우니,

그 버들잎이 고기가 되어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는 이야기로부터

공지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번 여행에서 안 사실이 하나 있는데,

소양강은 소양강댐에서 의암댐까지의 구간을 소양강이라고 하고,

의암댐 밑은 북한강이라고 부른다는 사실과

공지천의 물은 김유정역 앞의 금병산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이다.

 

 

 로맨틱 춘천

나에게는 그리운 고향 춘천이다.

 

 

 

 

 공지천을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춘천역으로 갈려고 그랬는데,

건너편에 작은 온실이 보였다.

공지천 뜨락

겉으로 보기에 작은 온실이라 그냥 춘천역으로 갈까 그런 맘도 없지 않았지만,

이왕 이곳까지 왔는데 온실에도 들어가보자고 형과 마음을 맞춘다.

온실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잘 꾸며져 있다.

정리정돈이 잘 된 느낌의 온실, 공지천 뜨락

그냥 지나쳤다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그래서 여행 중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눈여겨 보아야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치면 안 되는가 보다.

식물들 밑에 이름표를 확인해가면서

다시금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집어 넣었던 사진기를 꺼내 다시 사진들을 찍고...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 당일치기 춘천여행이 알차고 충만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온실을 나와 택시를 타고 춘천역으로 온다.

춘천역에서 바라본 미군부대 터와 봉의산

예전에는 춘천역 앞에 미군부대의 높다란 울타리가 있어서 답답하였는데,

그런 울타리가 없어져서 조금은 시원해졌다는 느낌도 든다.

가까운 닭갈비집에 들어가 내 동생이 부탁한 닭갈비를 사고...

우리 가족들은 춘천사람들이라 닭갈비와 막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가족들이 춘천에 갔다오면 어느 집 닭갈비가 맛있느냐고 물어볼 정도이다.

닭갈비하니, 닭갈비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고등학생 때일일 것이다.

엄마와 내 동생, 나 이렇게 셋이서 명동에서 닭갈비를 먹었었다.

엄마와 내 동생은 배부르다고 먹다가 그만두고,

많이 남은 닭갈비를 어떻게 해야하나 엄마와 내 동생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고등학생이던 내가 그 많은 닭갈비를 다 먹어 치우니 다들 깜짝 놀랐다.

그 날 내 동생이 했던 말,

엄마, 오빠는 사람이 아니야, 소야...

지금도 우리 엄마는 두고두고 그 날의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닭갈비 2인분은 혼자서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당에서 닭갈비 3인분을 포장해서 안고

상봉동으로 가는 전철에 오른다.

전철 안은 아침과는 다르게 사람들로 혼잡하고...

자전거를 끌고 온 사람들,

산에 다녀오셨는지 커다란 배낭을 맨 사람들,

나이 드신 어르신들...

복잡한 전철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휴일을 보내신 사람들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의 마지막 원리가 다양성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