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하는 2박3일 남도여행... 첫쨋날... 나주와 해남(1.23)

자작나무1 2016. 1. 28. 08:28

 아침에 일어나 씻고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는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

남도로 2박3일 여행을 떠난다.

집을 나와 용산역에서 목포로 가는 KTX에 올라탄다.

나를 태운 KTX가 한강철교를 건넌다.

한강은 요 몇일 추위로 얼어 있다.

얼음 덩어리들이 뒤엉켜 있다.

기차가 아산역을 지나가면서 바닥에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들에도, 산에도, 지붕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눈 쌓인 산의 모습

산의 깊이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눈쌓인 산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익산을 지나면서 산 대신 넓은 평야지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 쌓인 벌판

그 위로 길다란 전봇대와 전기선들이 어지러이 이어져 있다.

한동안 그런 모습들을 한없이 바라본다.

정읍과 장성을 지나면서 다시 평야 대신 산들이 겹쳐보이기 시작하고...

광주를 지나 나주역에 내린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하얀집으로 간다.

나의 남도여행은 항상 나주 곰탕집 하얀집에서 곰탕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뚝배기에 담겨진 맑은 곰탕 국물

그 국물 속에는 남도의 깊은 맛이 베어 있다.

곰탕에 밥을 말어 먹는다.

 

 

 

 

 

 

 

 

 하얀집을 나와 그 옆의 금성관에 들어간다.

전라도의 시작점, 전주와 나주

그에 맞춰 나주에는 역사적인 문화유산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나주읍성이다.

나주읍성의 관아건물, 객사

바닥에는 눈이 쌓여있고 주변에 키 큰 나무들이 있다.

분위기가 웬지 고창의 무장읍성 같다.

 

 

 

 

 금성관을 한바퀴 돌고, 금성관을 나와

금성관 옆에 있는 나주목사관아 금학헌으로 간다.

단정하고 반듯한 한옥건물

안에 사람들이 없어 더욱 조용하다.

고즈넉한 분위기

어디선가 가야금 소리도 들려온다.

장독대 뒤로 옹골찬 모습의 산이 보이고...

대문 아래의 등도 예쁘다.

금학헌을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나주 버스터미널로 간다.

예전에는 이렇게 물어보지 않고서도

버스터미널을 찾아갈 수 있었는데,

한동안 나주에 오지 않아서 나주거리가 낯설다.

다음에 나주에 오면 읍성을 천천히 돌아다녀야지,

금성산에도 올라가봐야지 맘을 먹는다.

나주 버스터미널에서 해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터미널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다.

주로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추위에 웅크려 앉아계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예전에 광주에 있을 때 시내버스를 잘못 타서

나주 터미널까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도 어제일처럼 떠올려진다.

옆에 하천이 흐르는 나주 버스터미널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터미널 바깥으로 나가 하천을 바라보면서 담배 한대 피운다.

해남을 거쳐 완도로 가는 좌석버스가 들어오고

버스에 올라탄다.

나를 태운 버스는 홍어로 유명한 영산포를 지나

나주를 지나 영암으로 간다.

나주시내에는 가로수로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나주와 영암에는 배나무 과수원들이 많아 보인다.

나주 배, 영암 배

버스는 영암 버스터미널로 들어선다.

앞으로 눈에 쌓여있는, 영암의 진산 월출산이 보인다.

겨울의 월출산

버스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울퉁불퉁한 기암으로 이루어진 월출산

그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자연의 예술작품이다.

신령스러운 산, 영험한 산, 월출산

 

 아주 오래 전 한여름에 월출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천황사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월출산 정상을 지나

구정봉과 마왕재를 지나

도갑사로 내려왔던 일

산을 내려와 월출산 입구의 가게 평상에 누워

힘들어서 꼼짝없이 누워 있었던 기억

눈에 덮인 월출산을 바라보면서 그 날이 떠올려진다.

 

 버스는 영암읍을 지나 성전을 지난다.

전에 함께 일했던 등사실의 안선생님과 성전이 해남군인지, 강진군인지 논했던 일이 떠올려진다.

나는 성전을 거쳐 해남읍으로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성전이 해남읍에 속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강진군 성전면이었다.

성전에서도 월출산이 보인다.

영암읍에서 보는 모습보다 더 거칠어보인다.

험악한 모습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월출산의 모습

그게 월출산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월출산 건너편에는 월출산의 아들뻘로 보이는 월각산도 보인다.

나를 태운 버스는 해남 종합버스터미널로 들어서고...

해남 종합버스터미널에서 군내버스를 갈아타고 땅끝으로 간다.

항상 해남에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땅끝이다.

나에게 있어 땅끝은 해남여행의 일번지이다.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땅끝으로 가는 길도 보기 좋다.

넓다란 논들과 낮고 조금은 퇴색한 집들, 마을들...

웬지 과거 어느 시기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좋아 자주 땅끝을 찾아가는 것 같다.

송지면을 지나서는 바다를 끼고 달린다.

땅끝 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우선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냉커피를 마신다.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못해 시원한 냉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냉커피를 마시면서 베낭에 들어있던 책을 꺼내 읽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고등학생 때부터 읽고 싶어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읽으면서 좀 아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읽고 싶어했던 책을 읽게 되어서 기쁘고 흐뭇하다.

자유인, 조르바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여자, 과일, 이상...... 이 세상에 기쁨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것 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가게 하는 것은 없으리라.

 꿈과 현실의 구획은 사라지고 아무리 낡은 배의 마스트에서도

 가지가 뻗고 과물이 익는다.

 그런 현상이 그리스에서는 필요가 기적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하다."(p.26)

 

 

 

 

 카페를 나와 바닷가로 나간다.

커다란 돌비석 위에 땅끝이라고 새겨져 있다.

남도의 바다

바다 위로 여러 섬들이 바라보이고,

김인지, 굴인지, 전복인지, 다시마인지...

바다 가운데 양식장도 드문드문 보인다.

겨울 나무들이 무성한 길을 따라 모노레일 타는 곳으로 간다.

표를 끊고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간다.

다시 입장권을 끊고 전망대에 올라갔는데, 별로였다.

전망대를 내려와 계단을 따라 땅끝탑을 보러간다.

끝없이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

주변의 나무들이 빈가지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조금 더 있으니, 굵은 눈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단길이 갑자기 미끄러워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계단길은 아래로 끝도없이 이어져 있다.

 

 

 땅끝탑에 도착

바다를 향해 삼각뿔 형태의 탑이 사선으로 세워져 있다.

땅끝

땅끝이라는 막막함보다는 그저 그런 담담함이...

어찌 생각하면 모든 바닷가는 땅끝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땅끝은 땅의 끝이더라도

세상의 끝은 아니어서

바다를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땅끝은 또 다른 세상의 시작점이었어...

다시 계단길을 오르고 산길을 지나

모노레일을 탔던 곳으로 온다.

눈은 점점 더 굵어져서 내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땅에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땅끝 터미널을 찾아가던 중 만난 돌담집

푸른 지붕 아래 돌담 그 아래의 겨울 마늘이 자라는 풍경

따뜻한 남도, 해남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사진기에 담고, 한참을 쳐다본다.

땅끝 터미널에서 해남읍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해남 종합버스터미널로 가는 좌석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는다.

창 밖으로 눈이 쏟아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해남읍으로 간다.

어느 사이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지고...

해남 종합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터미널에서 가까운

용진 정육점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식당 건너편의 카페에 들어가

이번에도 냉커피를 마시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

창 밖으로는 어두워진 하늘 아래 흰눈이 펑펑 쏟아지고...

오래간만에 함박눈을 보는 것 같다.

웬지 기분도 좋아지고... 아늑해지고...

그런 분위기가 좋아 한참을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책을 읽는다.

카페를 나와 카페 처마 아래에서 함박눈을 보면서 담배를 피운다.

 

 "내 눈은 희미한 햇살 속에서 말렸다가 풀리곤하는 담배연기를 쫓았다.

 내 마음은 연기와 함께 감겼다가는 천천히 푸른 꽃다발 속에서 사라졌다.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논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세계의 기원이며 생성이며 사멸을 확연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붓다의 세계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에 망언과 오만한 광대의 속임수가 틈입하지 않았다.

 연기는 붓다의 가르침의 진수,

 사라지는 연기의 나선은, 푸른 열반의 정토를 찾아가는 생명이었으리......"(p.68~69)

 

 거리는 온통 눈세상이다.

푹푹 신발이 눈에 빠지면서 여관을 찾아 걷는다.

나 혼자 밤에 걸어가는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카페 옆의 식당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눈이 많이 내려 미끄럽다고 조심히 가라고 말씀을 해주신다.

남도의 넉넉한 인심

문득 눈 내리는 겨울밤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여관에 들어가 씻고 TV를 켜니,

불후의 명곡에서 김 광석님편을 한다.

재작년 3박4일 통영, 창원 여행 시에도 김 광석님편을 하였는데...

김 광석님의 기일이 1월 6일이라 그에 맞춰 김 광석님편을 하는 것 같다.

최대한 편곡을 자제하고 김광석님이 당시 부르시던 노래 분위기에 맞춰 부르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침대에 누워 최대한 편한 자세로 김 광석님의 예전 노래를 듣는다.

이렇게 2박3일 남도여행 첫쨋날 밤이 지나간다.

 

 밖에서는 밤이 깊을수록 더욱 굵고 많은 눈이 내리고...

쌓이고, 또 쌓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