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성북동 탐방

자작나무1 2016. 9. 18. 17:15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울려고 밖에 나가니,

주룩주룩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비 치고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성북동 길상사에 가기로 했는데...

집으로 올라와 형한테 전화를 건다.

아침비가 그치면 오후에라도

길상사로 꽃무릇을 보러 가자고...

인터넷을 하다가

다시 담배를 피울려고 밖으로 나가니,

그 새 비는 그쳐있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쪼르르 집으로 올라와 형한테 다시 전화를 건다.

비가 그쳤으니, 길상사에 가자고...

엄마가 차려주신,

차례 때 올렸던 불고기에 김치와 함께 아침을 먹고 집을 나온다.

비 그친 다음이라 밖의 날씨가 쌀쌀하고...

신도림역 안에서 형을 기다린다.

조금 있다가 형이 오고...

형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길상사로 간다.

1호선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한성대역 버스정류장에서 성북02번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로 간다.

길상사는 내가 좋아하는 절이다.

도심 속 숲속사찰

법정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

나는 절을 좋아해서 전국의 절들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길상사는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로 자주 간 것 같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네 번 정도 찾아왔다.

그런데 길상사에서 그 유명하다는 꽃무릇을 본 적이 없어

이번에는 길상사의 꽃무릇을 보러 온 것이다.

전에 미리 길상사를 다녀오신 향기 별님이

추석연휴 다음 주말에 가면 꽃무릇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댓글을 읽고

꽃무릇을 보러 찾아온 것이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길상사를 쳐다보니,

입구에 붉은 꽃무릇이 보인다.

반가움

 

  길상사에는 나의 바람대로 꽃무릇이 활짝 피어있다.

붉은 꽃무릇으로 길상사가 가득찬 느낌

꽃무릇 밭으로 다가가 기쁜 마음으로 내 사진기에 담는다.

형도 신나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길상사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입구에만 꽃무릇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꽃무릇이 피어있다.

조그만 마당 곳곳에 피어난 꽃무릇

잎과 꽃이 따로따로 피어나 슬픈 꽃이라고 하던데,

내 눈에는 꽃도, 꽃색깔도 화려하여

그리 슬퍼보이지 않는다.

 

 길상사 한켠에는 나무로 만든 투박한 의자가 놓여있다.

길상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의자

법정스님의 뜻을 이 나무의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법정스님이 이 의자에 앉으셔서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고, 하늘 위의 구름을, 해와 달을 보셨을 나무의자

또한 무소유를 이 나무의자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나무의자

나무의자를 사진기에 담고 한참을 쳐다본다.

 

 담쟁이가 우거진 담장 앞에 몇개의 꽃무릇이 피어있다.

이 꽃을 보면서

오래전의 모더니스트 백석 시인과 자야님의

슬프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떠올라진다.

항상 길 위에서 시를 쓰셨던 백석 시인과

그런 백석 시인을 곁에 잡아둘 수 없었던 자야님의

슬프고 애닲은 사랑이야기

또한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올라진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시

시 속에 하나의 그림이 떠올라지고,

흰당나귀가 좋아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시

아주 오래전의 시임에도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않는 시

 

 꽃무릇으로 행복했던 길상사를 나와

만해 한용운님이 거쳐하셨다는 심우장을 찾아간다.

성북동에는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성의 북쪽에 위치하였다는

어쩌면 풍수지리 덕분으로

서울의 광폭한 근대화, 현대화의 바람에서

한발 비껴 설 수 있었던 곳

그 비낌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곳, 성북동

 

 좁은 골목길을 올라 심우장으로 간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꼴보기 싫어

집의 방향을 과감히 북향으로 내놓은 집

집의 방향만으로도

만해 한용운 스님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지를 느낄 수 있다.

방 안에 가구들이 적어

옛집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절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방 안에는 한용운 스님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한용운 스님의 초상화를 한참 쳐다본다.

한용운 스님은 초상화처럼

꼿꼿하시고 당당하시고, 거침이 없으셨을 것 같다.

 

 심우장을 나와

성북동에서 유명하다는 쌍다리집에서 돼지불백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내려오다가 작지만 조용한 카페가 보여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달롤카페

 

 카페를 나와

최순우 옛집을 찾아간다.

전에 여러번 가보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음과는 달리 쉽게 찾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다닌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성북동 주민센터 앞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최순우 옛집을 찾아간다.

한옥집

집은 그 주인의 정신세계를 나타낸다고 하는데,

이 집 마당에 우리 조상님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석물들이 놓여있어

그것만 보고도

이 집의 주인은 우리의 옛문화에 대해 나름의 식견이 있으시고,

그 만큼 우리 문화에 대해 사랑이 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집 안에서는 김우영님의 "우리 것을 담다"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의 문화재들을 문화재라고 단순히 보존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사진전의 공간으로, 한옥찻집으로, 조그만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좋아보인다.

이제는 단순한 보존에서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옛것이 옛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우리의 문화재

최순우 옛집에서 나는 앞의 조그만 마당이 제일 맘에 든다.

좁은 마당에 나무와 화초들이, 옆에는 뚜껑을 닫은 우물도 놓여있어

좁은 마당이 그리 작아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마당을 쳐다본다.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최순우 옛집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한성대입구역으로 간다.

역으로 가면서 나는 나대로 백석님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