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기 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나,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어제 먹고남은 삼겹살로 아침을 해결하고
컴퓨터를 켜고 내 메일과 블로그를 확인한다.
10시에 집을 나서고,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간다.
11시 19분발 춘천행 ITX를 탄다,
몇일 전에 춘천의 성주하고 가평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나는 가평 얼음축제장에서 송어구이로 점심을 먹을려고
성주와 약속을 한 것이다.
ITX에서 KTX 잡지를 읽는다.
KTX 잡지에서는 광명에 새로 생긴 기형도의 기념관에 대한
기사가 나와 꼼꼼히 읽는다.
기형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
20살 때 기형도의 시집을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난해한 시집으로 기억되는...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는 시인
전에 다보등님이 댓글로 기형도 기념관이 생긴다고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었다.
다음에는 광명으로 기형도 기념관에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시14분 가평역 도착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까
성주차가 와서 성주차를 타고
가평 얼음축제장으로 간다.
서울보다 추운 날씨의 가평
그럼에도 얼음 위에는 송어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추위에 움추리지 않고 겨울을 즐기는 사람들
천막 안에도 사람들이 많고,
옆에서 품바공연이 열리고 있어 시끄러운 장터이다.
내가 먹고 싶어했던 송어구이와 잔치국수를 시킨다.
송어회나 송어 매운탕은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송어구이는 좀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일부러 송어축제장에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식당 안에 사람들도 많고
노래 공연으로 시끄러워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송어구이를 먹었다.
송어가 크기는 했지만, 삼만원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
복잡한 얼음 축제장을 나와
성주차를 타고 가평의 스위스 마을, 에델바이스를 찾아간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어했던 곳
가평의 프랑스 마을, 쁘띠 프랑스는 전에 아는 형이랑 다녀왔다.
성주는 이곳에서 거리가 멀다면서 투덜거리면서 차를 몬다.
이렇게 성주를 만나면 성주차를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돌아다닌다.
새로 생긴 듯한 가평대교를 건너고 설악면을 지나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에델바이스로 간다.
성주는 이곳이 땅값이 싸 이런 외진 곳에 관광지가 생겼다고 말한다.
정말 대중교통으로 찾아오기에는 힘들 것 같다.
게다가 산 위라 아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주 말대로 깊은 산중이라 공기는 맑고
그 만큼 춥다.
알싸한 느낌
앞의 기다란 산줄기들이 이 곳을 더욱 외진 곳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입장료 만원
우리 앞의 한 가족들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면서
힘들게 언덕을 오르고나서 다시 되돌아 내려가신다.
입구의 카페, That's Coffee에서 카푸치노를 마신다.
이국풍의 카페, 창 밖으로 겨울산들이 보인다.
2층의 조금은 허접한 커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내려와
카페를 나와 마을 탐방에 들어간다.
산 아래 이루어진 마을이라 긴 언덕길을 또 올라야만 한다.
길 양옆으로 이국적인 집들이 늘어서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들도 몇 채 있지만,
대부분 이런저런 주제로 개방한 집들이 많다.
와인 박물관, 치즈 박물관, 초코렛 박물관, 산타 빌리지
건물들은 이쁜데, 안의 내용물들은 좀 빈약하다는 느낌
그래도 이국적인 모습에 반해 연신 사진들을 찍는다.
이곳에는 남녀 쌍쌍으로 오신 연인들이 대부분이다.
가족들은 일부
나처럼 남자끼리 온 사람들은 우리 뿐이다.
옆의 성주는 성주대로 이런 곳에 남자끼리 오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을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
집과 창과 집 앞의 문장들을 내 사진기에 열심히 담으면서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오고...
지금 미국에 가 있는 내 동생에게 찍은 사진들을 카톡으로 보낸다.
나는 미국이 아닌 스위스 마을에 와 있다... 이런 마음으로...
마을을 내려와 다시 긴 언덕길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간다.
이 곳은 산골이라 좀전의 가평보다 더 춥다.
서울보다 더 추운 가평
가평보다 더 추운 에델바이스
문득 에델바이스는 추운 겨울에 피어나는 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고산식물, 솜다리
다시 차를 타고 춘천으로 간다.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춘천으로 간다.
차 안에서 성주는 20대 때 다녀왔던 마카오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성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가평에 온 이유는 송어구이도, 에델바이스 마을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성주와의 이야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구나 느낀다.
성주와의 재미있는 이바구 시간
성주는 ROTC를 나와 장교로 군생활을 하였고,
제대 후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녔고,
대기업을 나와 1년 동안 제주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잘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 내가 모르는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해준다.
고마운 친구
주식도 오랫동안 하여서 그 분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좋은 주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까
제무재표를 이야기 하고.
내가 제무재표를 모른다고 하니까
그럼 아예 주식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나에게는 이런 식으로 면박을 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이야기
작년 가을에 결혼한 친구가 있는데,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고 그 친구가 단단히 삐졌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만나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그런게 친구일 것이다.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그랬다.
오래간만에 만났어도 할 이야기는 여전히 많고 넘친다.
그래서 친구인가 보다.
춘천에 도착
만천리에 있는 만둣집을 찾아간다.
나는 아직도 이 만둣집이 있다는 것에 우선 놀랐다.
이 만둣집은 내가 춘천에 살 때 아버지하고 가끔 갔던 집이다.
어림잡아 2,30년은 되었을 것 같다.
만둣집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함석집, 사방을 틔어 넓은 집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집에 오셨다면
우리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대로 얼마나 감회가 깊으셨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옛날 그대로의 모습에 눈물이 날 정도이다.
성주 얘기로는 아직도 인기가 많아
점심이나 저녁 때에는 한참을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만둣국
추억의 만둣국
내 기억으로는 김치 만둣국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고기 만둣국이다.
아무튼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는다.
만둣국을 먹고 만둣집 근처의 카페
원 인더스트리에서
카페라떼를 먹는다.
성주 말로는 직접 커피콩을 수입해서
직접 갈아주는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카페 안에는 커피 냄새가 진하게 났다.
난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성주는 이 냄새도 좋다고 말한다.
커피 맛은 잘 모르겠고,
커피와 함께 나온 계란 같은 조그만 빵이 맛있었다.
카페를 나와 춘천역으로 간다.
어느새 겨울해는 붉은 빛을 띠면서 산 넘어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옆의 소양강은 더욱 차갑게 보인다.
내 고향 춘천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랫동안 춘천을 비어서 그런지
고향다운 푸근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고향마저도 낯설게 느껴진다.
춘천이 너무 많이 변해서 그런 것 같다.
그 나마 봉의산과 소양강, 멀리 보이는 삼악산은 그대로인데,
그럼에도 그 산과 강들도 어릴적 이미지는 아니다.
점점 고향과 멀어지는 나
고향이 점점 낯설어진다.
오늘 하루
처음 계획은 가평에서 성주를 만나
송어구이를 먹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찍 서울로 올 생각이었는데,
성주와의 재미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보냈다.
즐겁고 행복했던 겨울
하루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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