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속초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속초는... 부산 다음으로 내가 많이 간 곳이다.
푸른 동해바다와 뒤로 설악산... 그 두가지만으로도 나에게 있어 최고의 여행지이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갔는데, 이번에는 블로그를 만들면서 사진과 여행기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또 다시 속초에 가게 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서 내린다.
역을 빠져나와 담배 두대를 피우고 건너편 동서울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속초로 가는 버스표를 끊는다.
터미널에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나는 일부러 설악의 단풍 시즌에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이 몰릴 것 같아 단풍시기가 끝난 후에 떠나는 것인데, 그래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요즘 IMF 이후 최악의 불경기라는 말도 종종 듣는데, 그래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하긴 나처럼 팔자좋게 길을 떠나는 사람도 있겠고, 긴급한 일 때문에 길을 나서는 사람들도 또한 많을 것이다.
내가 아프다고 모든 사람이 모두 아픈 것이 아니고, 내가 행복하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표를 끊고도 버스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그냥 터미널 내를 그냥 서성인다. 가끔 TV도 보면서...
10분만, 아니 5분만 일찍 터미널에 도착하였어도 이런 기다림 없이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전철역에서 나와 담배만 피우지 않았어도 이런 기다림이 없었을텐데... 담배가 웬수다...
짧지 않은 기다림 끝에 속초로 떠나는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는 이내 출발한다.
나는 지금 동해바다로 가고 있어요...
나를 태운 버스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지나고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홍천으로 빠져 나온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그렇게 차로 붐비지 않았다.
버스는 홍천의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깐 멈춘다.
볼일을 보고, 담배를 피우면서 휴게소 뒤쪽을 쳐다보니, 멋진 풍경이 나를 맞아준다.
그리 높지 않은 산허리에는 엷은 구름이 둘러쳐져 있고, 그 밑에는 냇가와 논과 밭, 집과 길들이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골의 올망졸망한 모습들이 참 정겹다. 한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버스는 다시 홍천을 지나고 소양호 상류의 인제군 신남을 지나 인제읍과 원통을 지나간다.
항상 이 길을 지나갈 때에는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는 말이 생각난다.
외지에서 인제나 원통으로 들어갈 때에는 산뿐인 그곳이 귀양가는 기분이라 그런 말을 하고,
다시 인제나 원통에서 외지로 나갈 때는 인제나 원통이 너무 좋아 그 좋은 곳을 두고 떠난다는 것에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 하나 원통은 나에게 하나의 추억을 일깨워 준다.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년이 지난 후에 나하고 친한 친구가 이곳 원통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나는 당연히 친구 면회를 왔고, 그 날 그 친구는 외박을 받아 나왔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외박을 나와도 인제와 원통만 돌아다닐 수 있고 속초나 바닷가쪽으로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바다를,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보지 못 한다는 것이 너무 "원통"해서 그 친구와 이야기 끝에 무작정 터미널에서 속초로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기어이 속초로 왔고, 속초 바닷가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주위에 헌병이 있지 않나 잘 살펴보면서 돌아다녔다.
그 날 따라 왜 이리 헌병들이 많이 보이던지...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기분으로 헌병들의 눈을 피하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면서 잘 놀았다.
그렇게 헌병들을 피하면서 이틀 동안 잘 놀았는데, 마지막 속초에서 다시 원통으로 넘어가는 버스 안에서, 미시령 올라가는 검문소에서 헌병에게 딱 걸렸다.
그 나마 내 친구가 기지를 발휘해서 외박을 나왔는데, 갑자기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속초에 왔다며 사정사정을 해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 그리운 나의 젊은 날이여...
버스는 새로 생긴 미시령 터널을 지나 속초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리면서 KBS드라마 "겨울동화"의 OST가 떠올랐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바닷가 쪽으로 걷는다.
동명항으로 가는길... 도중에 속초 경찰서 앞바다에 해양경찰함정이 공개되고 있다.
함정에 올라가 이곳저곳 둘러보고... 그러나 배 안보다는 배 위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더 좋았다.
함정을 나와 동명항으로 가는 길 중간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우럭 매운탕을 시켜 먹는다.
지난 여름 여수 향일암 입구의 식당에서 먹었던 매운탕이 생각나고...
배부르게 먹고나서 동명항 쪽으로 걸어간다.
오늘은 도보여행... 걷는 것이 일이다.
동명항 위의 속초항 북방파제 길에 올라선다.
앞으로 탁트인 동해바다와 뒤로 방파제로 둘러쌓여 있는 동명항, 그 뒤로 속초 시내와 설악산의 능선들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내가 동해바다에, 속초에, 이런 멋진 곳에 와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방파제길 끝에는 빨간등대가 있다.
등대 사진을 찍고...
등대를 보고 뒤돌아서 방파제길을 빠져 나온다.
방파제 옆에는 영금정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계단에 따라 영금정에 올라서고...
오늘은 바람이 좀 많이 불어서 그렇지, 날씨도 따뜻하고 하늘도 맑아 멀리까지 잘 보인다.
여행하기에는, 돌아다니기에는 딱 좋은 날이다.
다만, 설악산 방향은 연무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은 점이 아쉽다면 아쉽다.
영금정을 내려오고, 그 뒤로 다리 건너 해돋이 정자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늘따라 바닷물이 참 맑고 깨끗하다.
지지난해 겨울, 제주도의 김녕 해수욕장의 바닷물빛이 생각났다.
속초에, 동해바다에 자주 왔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바닷물이 수정처럼 맑아 보이는 것 같다.
해돋이 정자에서 바다를 보고... 오늘은 바다를, 그것도 동해바다를 아주 실컷 본다.
다시 다리를 건너 도로쪽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해돋이 정자 건너편, 그러니까 등대전망대 밑에 카페"등대 아래서"라는 멋진 카페가 있어 이곳에 오면 꼭 들렸는데, 작년부터인가, 카페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이제는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서 등대전망대에 오른다.
계단길을 올라갈수록 바다는 점점 넓게 보이고, 몸은 조금 힘들어도 마음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다.
등대에 올라가 다시 한번 넓게 펼쳐진 바다와 북쪽의 풍경을 바라보고...
등대를 내려와 좁을 골목길을 따라 큰 도로 쪽으로 내려온다.
다시 경찰청을 지나고 수복탑을 지나고 바닷길을 따라 걷는다.
여기저기 간이매점에서는 요즘이 제철인 양미리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넓게 펴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바다를 낀 어촌 마을의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드넓은 바다 모습도 보기 좋지만, 이렇게 어민들이 그물이나 생선을 다듬는 모습들, 배를 정비하는 삶의 모습도 보기 좋다.
아무리 빼어난 풍광도 이런 삶의 자잘한 일상들이 빠진다면 그리 아름다울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속초의 또 다른 명물인 갯배에 도착한다.
속초시내와 아바이 마을인 청호동을 연결하는 갯배이다.
나는 속초에 오면 꼭 갯배를 탄다.
예전에 KBS 드라마 "겨울동화"의 감동이 워낙 생생해서도 그렇고, 갯배 주위의 속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어느해부터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도 한류 열풍에 따라 이곳에 많이 와 갯배를 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한다.
게다가 1박2일에서도 이곳이 나와 이제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배를 탈 수가 있다.
오늘은 그런 기다림이 싫어서, 아니, 오늘 여정이 길기 때문에 아쉽지만 그냥 통과한다.
갯배 주위로 생선구이집이 많아서 그런가, 연탄불에 생선굽는 냄새가 거리에 진동하고 있다.
나중에 여기에 오면, 우선 갯배를 탈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식당에 들어가 생선구이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길목을 빠져나와 시내로 나오고... 가까운 찻집 "다랑"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면서 지친 몸을 쉰다.
찻집은 전통찻집처럼 실내가 옛스럽고, 음악도 전통음악 위주로 나오고 있다.
앉아서 냉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고... 짧은 시간 사진도 꽤 많이 찍었다.
하긴 오늘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 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으니,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쉬다가 나올려는데, 스피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George Winston의 "December" 중의 피아노곡이 흘러 나온다.
이 음악을 들으니, 겨울이 코 앞으로 닥쳐온 느낌이 든다.
겨울이, 12월이, 성탄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찻집을 나와 큰길을 걷다가 다시 바다가 보고싶은 마음에 골목길을 통해 다시 바닷가길로 들어선다.
명색이 속초 도보여행인데 바다를 옆에 끼고 걸어가야 제대로 된 도보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닷길을 따라가니 금방 청초호가 보인다. 멀리 엑스포 타워도 보이고...
청초호에 도착
청초호 가장자리에 겨울 철새가 가득하다.
여기 올 때 청초호에서 겨울 철새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난 것 같다.
나는 바다나 산, 또는 그런 것들이 엮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새나 강아지, 동물들을 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예전에, 아니 작년에 정읍의 내장산에 갔다가 저녁 늦게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석양에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수 없이 많은 청동 오리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수 위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돌아다니는 새들을 보니 정말 기쁘다.
한참을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얼마간의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새들은 나를 개의치 않고 지들끼리 잘도 논다.
이번 속초여행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철새들을 실컷 구경하다가 발길을 돌려 엑스포 타워(73.4m)로 간다.
1999년 속초에서 열렸던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니, 방금 지나온 청초호와 청호동, 그 너머로 동명항, 영금정, 속초전망대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오늘 여기까지 걸어온 길들이 이 곳 전망대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여지는 것 같다.
그 반대편으로는 설악산의 능선이 보이는데, 그 쪽은 시야가 맑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희뿌옇게 보인다고 할까... 아쉬울 뿐이다.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청초호를 옆에 끼고 또 다시 한없이 걷는다.
그래도 호수 위에서 놀고 있는 철새들과 갈매기들을 보면서 이렇게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가다보면 요트도 보이고, 고성 봉포섬까지 운항하는 여객선과 여객터미널도 지나간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청초호를 벗어나고 차도를 건너 속초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다.
이곳은 서울보다 추운 곳이어서 그런지 집집마다 김장하는 집들이 많았다.
집과 식당, 상점들이 있고, 그런 골목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개들이 반갑다.
혼자 돌아다니다 보니, 좀 외롭다.
그래서인가 지나가다가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개와 강아지들이 객지에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래서 만나는 개마다 사진을 찍는다.
어떤 개는 곰도리 HOTEL이라고 씌여진 개집에 묶어 있었다.
그 개보다는 그 개 주인의 여유있고, 유머러스한 삶의 모습이 상상되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어느새 속초 해수욕장의 방파제가 보이고 여러 민박집들이 줄지어선 길을 지나자 앞이 트이면서 속초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오늘은 바다를 참 실컷 본다.
저번 부산여행에서도 바다를 한없이 보았는데...
그래도 바다에 싫증이 나지 않고 그저 좋다.
이런 것이 바다의 매력인지...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그저 좋은 것...
백사장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들이 앉거나 일어서서 바다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그 틈에 끼여 바다를 본다...
앞에 등대가 있는 섬이 보인다.
새들이 많이 몰려와 조도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백사장 뒤 벤치에 앉아 담배를 두대 피우면서 바다를 본다.
예전에 누군가에서 들은 맛있는 담배이야기가 생각난다.
첫째 밥 맛있게 배불리 먹은 후에 피는 담배
둘째 바다에 도착해서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바다를 보면서 피는 담배
셋째 ... 이것은 좀 야해서 쓰지 않기로 한다... 상상에 맞기기로...
나는 두번째 맛있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백사장 뒤로는 솔밭이 있다.
바닷가에는 이렇게 방풍림으로 심어진 송림이나 숲들이 많다.
다만, 도로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숲들이 훼손되고, 망가지는 일들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경포해수욕장과 그 뒤의 솔밭, 경남 남해의 상주해수욕장과 솔밭, 전남 보성의 율포해수욕장의 송림...
바다 못지 않게 훌룡한 숲...
송림을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선다.
짧은 가을해는 설악산 뒤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오늘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심 양양 낙산사까지 갈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욕심내지 않고 여기서 마칠 생각이다.
골목길 중간에 식당이 나타나고 그 앞에 큰 개 두마리가 묶여 있다.
그 개들과 놀다가 식당에 들어가 막국수를 먹는다.
막국수... 참 특이한 음식이다.
웬만한 음식은 식당마다 특별히 더 맛있는 음식점들이 있겠지만, 대개 거기가 거기이다.
그런데 막국수는 맛있는 식당 그것이 아니면 맛이 하나도 없는 식당, 그래서 못 먹을 것 같은 식당... 이렇게 양극단을 이룬다.
이번 식당은 아쉽게도 후자에 속한다.
나중에 춘천에 가서 맛있는 막국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식당을 나와 골목길을 지나 큰 길에 이르고, 고속버스터미널 옆 모텔로 들어간다.
인생은... 낯설고 허름한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문득 든다.
이렇게 속초여행의 첫날... 도보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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