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지나가는 가을이 못내 아쉬워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보통 집에서 편하게 쉬는 날인데, 오늘 산에 가지 못하면 올 가을에는 산에 못 갈 것 같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서울역 버스정류장에서 704번 송추행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가을이라 그런지 정류장에는 산에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하긴 봄에는 꽃 구경 다니고, 가을에는 산으로 단풍 보려 다니고... 그렇게 살아야 산다고 할 수 있겠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704번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앉을 자리가 별로 없다.
간신히 한자리 비어 맨 앞자리에 앉고...
버스는 한국은행 앞과 명동을 지나고 조계사 앞과 경복궁 앞을 지난다.
창 밖으로 도심의 늦은 가을 풍경이. 단풍이 전해져 온다.
버스는 독립문 공원을 지나가는데, 독립문 공원은 단풍이 한창이다.
내년 가을에는 꼭 독립문 공원에 단풍 보러 와야지...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 참 좋은 코스일 것 같다.
의주로로 접어든 버스는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정거장에 정차할 때마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든다.
평일에도 사람들에 치어 살면서, 모처럼의 일요일에 또 다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버스에 올라타서 산에 가는지 모르겠다.
일상의 번잡스러움에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산에 갈텐데... 산에도 사람들이 많다...
인구 천명이 넘는 도시... 서울에 살기 때문일까...
이젠 사람들이 정원을 초과해서 불광동에서부터는 정거장을 들르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버스 안 뿐만 아니라 길가에도 산에 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산에 안 다니는 사람들은 산이 산이 아니라, 남대문 시장보다 더 복잡한데 왜 산에 가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그래도 기어코 산에 갈려는 사람들의 마음...
나도 산을 좋아하고, 산에 가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아니 내 마음을 모르겠다.
버스는 드디어 북한산성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만원버스의 승객들이, 등산객들이 우르르 몰려 내린다.
그 틈에 끼여 나도 내리고...
산성 입구 방향으로 올라간다.
사람들의 등산복 차림은 완연한 단풍색들이다. 울긋불긋... 화려함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만남의 장소 슈퍼에 들러 자판기 커피에 담배 두 대를 피운다... 이제 산으로 들어가면 담배를 못 피우니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길을 따라 올라간다.
앞으로는 의상봉이 우뚝하고 옆으로 원효봉이 둥그렇게 솟아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
그 두 분의 모습은 모르겠지만, 북한산의 의상봉과 원효봉을 볼 때마다 그 봉우리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의상 스님은 빼빼 마르시고 약간은 성깔이 있어 보이시고, 반대로 원효 스님은 둥글둥글하시고 뚱뚱하시고 성격이 너그러울 것 같은...
항상 북한산에 오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산성입구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길을 올라간다.
예전에는 탐방지원센터에서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 길이 폐쇄되었는지, 길을 잘 못 찻겠다.
어차피 오늘 산행은 산성을 따라 가기로 했으므로, 이 길도 괜찮다. 대서문, 중성문을 지나 대남문으로 올라가야 하니까...
북한산은 산이 넓고, 봉우리도 많고, 길도 다양하여 각각의 주제를 정해 오를 수가 있다.
때로는 봉우리를 주제로 하여 의상능선으로 오를 수도 있고, 오늘처럼 산성이 주제이면 대남문에 올라 산성주능선을 따라 갈 수 있고,
절이나 암자를 주제로 하여 다양한 길을 갈 수가 있다.
이런 점들이 북한산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느새 북한산성 초입의 대서문을 지난다.
대서문을 지나고 조금 올라가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돌장승이 반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장승은 아니지만 표정이 재미있다.
익살스럽다고나 할까, 큰 눈에 웃고 있는 모습들이 재미있는 민화 속의 마음씨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 같다.
좀 더 걸으니, 북한동 마을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이 곳은 많은 식당으로 매우 번잡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정리가 되어 한적하다.
이 곳에서 장사했던 사람들은 시의 지원 하에 산성 입구 탐방지원센터 주위로 가게를 옮겼다고 한다.
이제는 길에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산성 입구에서 의상봉 방향으로 올라간 사람들도 많았고,
여기서는 백운대 방향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로 사람들이 급격히 줄었다.
북한산의 넉넉한 품을 여기서도 느낄 수가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여도 산 속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
길을 따라 올라가고 이번에는 산성의 두번째 문인 중성문에 도착한다.
북한산성에서 다른 길보다도 이 대서문 - 중성문 구간의 길이 평탄하여 일부러 이중문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북한산 자체가 도봉산과 함께 서울의 북쪽을 지켜주는 산성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밑에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쳐다보면 바위들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어쩌면 올라가는 길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도 든다.
봉우리들이 민짜의 바위봉들이라 그런 봉우리 주위에는 나무들도 많지가 않다.
그런, 산 자체가 일종의 성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위에 힘들게 또 성벽을 쌓아야 했던 우리 선조님들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외세의 잦은 침략...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외세에 대한 불안감이 이런 성을 쌓게 만들었는지...
중성문을 지나자 비로소 산길, 흙길이 나타나고... 노적사 입구에서 노적봉을 한번 쳐다보고...
이제는 계곡을 따라 길을 오른다.
작년 이맘 때 북한산에 온 적이 있었다. 작년에도 북한산 입구부터 단풍은 지고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이곳 계곡 주위에서 마지막 단풍의 향연을 볼 수가 있었다. 원래 단풍은 능선에 있는 나무보다는 이렇게 계곡 주위의 단풍이 더 고와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가을은 극심한 가을 가뭄으로 인해 계곡 자체에 물이 한방울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보았던 그런 고운 단풍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또 다시 산길을 걷는다. 이 코스는 그리 큰 오르막이 없어 편하게 오를 수가 있다.
잠깐의 급경사를 오르면 이곳이 북한승도절목선정비군, 산영루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위 위에는 여러 비석들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예전에 산영루라는 누각이 있었던 터에 돌축대만 세워져 있다.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이런 멋진 곳에 멋진 누각이 있다면 더 멋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폐허를 폐허로 놔두는 것도 역사보존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아름다운 누각이, 정자가 있다면 더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름다운 곳에 멋진 정자가 있다고 그것을 자연훼손이라고 그러지 않듯이...
계속해서 길 따라 올라간다. 중흥사터를 지나고, 계곡을 건너 길은 계속 이어지고, 약간의 억새밭과 예전에 산성과 관련이 있던 건물터들이 나온다.
쉼없이 올라간다. 대성암 입구다. 잠시 나무 밑에 앉아서 사과를 먹으면서 푹 쉰다. 산에서는 사과가 쉬면서 먹기에는 딱인 것 같다.
위의 대성암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들려오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갑자기 내가 가을산 속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진다.
얼마간의 휴식을 마치고 이제 대남문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급경사를 오른다.
스피커에서는 프랑스의 샹송가수 Edith Piaf의 "La Vie En Rose"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고개를 힘들게 오르자 드디어 1차 목적지인 대남문에 도착한다.
대남문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로 또 다시 시장바닥을 이루고... 여기저기서 점심을 먹고 있다.
어수선한 대남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또 다시 올라간다.
이제는 북한산성 성벽을 따라 길게 오르고 내리면 된다... 그 끝에 용암문이 나타날 것이고...
대남문 성벽을 오르자 종로구 경계점 693m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 곳을 경계로 종로구, 성북구, 경기도 고양시로 나뉘어진다.
또 다시 성벽을 오르고 내리자 대성문이 나타난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어 밥 먹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다시 성벽을 따라 올라간다.
어느 정도 가다가 대충 밥 먹을만한 빈터가 보여 퍼질러 앉아 보온통에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산에서는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다. 심지어는 그냥 물도 얼마나 달콤하고 시원한지... 맨밥에 김치, 장조림해서 먹는다.
식사 후, 또 다시 산길을 걷는다.
예전에 한여름에 이 성벽길을 홀로 걸은 적이 있었다.
그 날은 날씨가 여름하늘답지 않게 맑아 서울시내를 훤히 내려다보면서 신나게 걸었던 기억이 떠올라졌다.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북한산의 많은 길들 중에서 이 산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비록 돌계단길에 오르고 내리느라 힘은 들지만, 서울시내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문 위에 누각이 없어 암문 같은 보국문을 지나고, 대동문에 이른다.
대동문 넓은 터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산에 가기로 약속을 한 날인지 다른 날보다도 더 많은 것 같다.
아마 단풍이 절정이었을 지난 주, 지지난 주 토,일요일에는 오늘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산에서의 적적함, 조용함을 바랄 수는 없어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가을을 즐긴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대동문을 지나고 성벽을 따라 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자 백운대 전망대가 나타난다.
길 왼쪽으로 백운대를 위시하여 만경봉, 인수봉, 노적봉, 원효봉의 바위봉우리군이 멋지게 나타난다.
나도 여러번 이 길을 지나다녔는데, 오늘처럼 선명하게 백운대를 본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오늘 날씨가 성벽길을 기준으로 오른쪽의 도심방향은 좀 흐릿하고, 왼쪽은 아주 맑게 잘 보인다.
멋진 백운대의 모습에 보고 또 보고, 사진 찍고 또 찍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신이 났다.
또 다시 돌계단길을 내려가고 다시 오르고.... 어느새 동장대에 도착한다.
전망이 좋아 전망대로서 동장대를 세웠을텐데, 지금은 햇빛과 연무 때문인지 그리 전망이 안 좋다.
다만, 동장대의 특이한 이중구조을 보고 뒤돌아 다시 길을 걷는다.
성벽길이 끝나고 푹신한 산길이, 오솔길이 나타난다. 간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길을 걷는다.
길 주위로 여기저기 쌓인 낙엽들도 보이고,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만추의 서정을 일으킨다.
편한 길 끝에 산성대피소가 나온다.
대피소 입구에 몇그루의 나무에서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는 단풍을 본다.
산에 오면서 단풍은 시기를 놓쳐 단풍구경은 애초에 포기했는데, 여기에서 그 나마 보게되어 다행이다.
따뜻한 햇볕 속에서 느긋이 단풍을 보니 너무 기쁘다.
한참을 대피소 한모퉁이에 앉아서 지친 몸을 쉬면서 단풍에 빠져든다.
대피소를 벗어나 조금 오르니, 이번 산행의 두번째 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용암문에 도착한다.
용암문 주위는 아직도 성벽공사를 하느라고 복잡하다.
한번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계단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행이 마쳐가면서 더 조심해서, 주의해서 내려가야 한다.
계단길은 계속 이어지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간간이 이 시간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짧지 않았던 산행을 끝까지 무사히 마치기를 바라면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자 밑으로 도선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도선사 탐방지원센터를 지난다.
길 옆에 쓰레기 하치장이 나타나고 그 뒤에 쭈그리고 앉아 한동안 피지 못했던 담배를 문다... 이런 꼴초같으니라구...
간만에 담배를 피우니 담배가 더 맛있다.
저번 백암산에서는 산에서부터 담배가 피우고 싶어 정신없이 내려온 일이 떠올려진다.
도선사를 구경하러 다시 길을 올라간다. 절에도 사람들로 만원이다.
우선 커피 자판기로 가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천천히 경내를 돌아다닌다. 마애불 입상도 구경하고, 대웅전도 둘러보고,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서울시내를 내려다본다.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도선사 사진을 보았는데, 사진이 참 예뻐 나도 일부러 올라온 것인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절이 이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길 옆의 국화와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연등이 길게 달려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일주문을 지나 미소광장에 도착한다. 이곳은 진짜 시장바닥이다. 광장 전체가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꽉차 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 도로를 따라 우이동 버스종점에 이르고,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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