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1박2일의 부산여행... 태종대에서...

자작나무1 2011. 10. 12. 21:07

 어젯밤 일이다. 여관에 들어와서 씻고, 막 잠을 들려는데, 갑자기 여관 바로 앞의 모래사장에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 들어왔다. 아마 그 시간이 얼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갑자기 소리를 마구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 하고... 내가 자던 여관이 바다 바로 옆에 있어서

창문을 닫았어도 그 소리는 작지 않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울부짓는 그런 소리였다. 오늘의 젊은이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고,

그런 고민들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까 자정이 넘어가는 야심한 시간에 바닷가 백사장에 우르르 몰려와 마구 소리를 지르나 보다. 피곤한 하루... 내일의 여정을 위해

어서 잠이 들어야겠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한무리의 젊은이들의 외침에 아련한 애처로움을 느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고민과 슬픔에 공감을 느끼면서 이런 현실이

답답해졌다...

 

 비몽사몽간에 잠이 깨고, 벌써 아침이 밝아왔다. 좀 더 일찍 일어나 해뜨는 것을 볼 생각이었는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여관방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모닝커피

를 마신다. 씻고 나와서 송도해수욕장을 산책 삼아 거닌다. 일요일 아침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해수욕장을 거닐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은... 우선 내가 돌아다닌 곳 중에서 가장 많이 온 곳이다. 부산에 자주 오고, 꼭 부산에 오면 밤에는 이 곳 송도에서 잔다. 그러다 보니, 자주 오게 되었다.

양편으로 산과 건물이 에워싸고 있고 그 사이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호수 같은 바다라고나 할까. 바다 저 멀리에는 정박을 기다리는 커다란 배들이 있고...

자주 와서 그런지, 이런 풍경들이 낯설지 않고 편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자주 오게 되고... 하여튼 마음 편해지는 곳이다.

산책을 마치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대패삼겹살을 시킨다. 아침부터 웬 삼겹살...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젯밤 남포동에서 돌아다니면서 특히 고깃집

에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유난히 부러워서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는다.

먹고나서 앞의 정류장에서 태종대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기다림이 시작되었으니, 여행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금방 태종대로 가는 30번 시내버스가 들어오

고, 버스에 올라탄다. 실은 부산에 자주 오면서도 태종대는 자주 가보지 못 했다. 너무 한쪽에, 아니 섬 안쪽이라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무엇

보다도 예전에 한번 왔었는데, 기억도 희미하고 별로 좋았다는 인상이 없어서... 그런데, 재작년에 아는 형이랑 통영에 갔다가 부산으로 오면서 짧게나마 시간이 남아 태

종대와 용두산공원에 들렀었다. 그 때 태종대가 정말 좋다는... 나무도 좋고, 바다도 좋고, 등대와 등대 밑의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창"이라는 카페가 모두 맘에 들어

다음에 부산에 오면 태종대에 꼭 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었다. 아마 처음에 태종대에 왔을 때는 내가 20대 초반으로, 아직 어려서 태종대를 둘러싼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지에서는 여행지에서의 볼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나무며, 숲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버스는 자갈치 시장을 통과하고 영도대교를 건너 한진중공업을 지나친다.

한진중공업...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선소이다. 하청근로자를 자르고, 비정규직을 자르고, 더 나아가 정규직마저 자르는 회사,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막대한 주식차익을

배당하는 회사... 그러면서도 회사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회사와 회장... 거기에 격분하여 김진숙 지도위원님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200여일이

넘게 고공투쟁을 벌이고 있고... 전국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모여 집회를 벌였으나, 경찰의 강력한 저지에 막혀 영도에 접근조차 못한 채

흩어지고... 참으로 마음 아픈 현장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아니면 어떤 단체나 사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좌파, 우파 논쟁만 벌이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해

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열 받는다고 해야할지 나도 모르겠다... 차창에 비치는 한진중공업의 수많은 크레인들과 도로 한편으로 빙 둘러싼 전경버스들이 이런 나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이런 우울한 생각 속에 버스는 어느새 종점인 차고지에 도착한다. 우선 내려서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냉커피를 사 마신다. 어제 제대로 못 잔 잠도 깨우고, 잠시 우울했

던 나의 생각도 날려버릴려고...

커피를 마시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태종대 표지석이 보인다. 정자체의 글씨가 아니라 누군가가 편하게 쓴 것 같은 표지석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고... 그 위로

소나무가 처마처럼 위를 받쳐주고 있다. 입구를 지나 언덕을 계속 오른다. 오른편으로 아왜나무가 일렬로 반듯하게 줄지어 서 있다. 잎이 기름을 바른 듯 매끈매끈하다.

서울이나 중부지방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나무이다.

길이 두갈래를 갈라지는 지점에서 윗길로 오른다. 계속 오르막의 연속이니, 산에 오르는 것처럼 힘들어진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서서히 땀도 나는 것

같다. 올라가는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그나마 보기 좋다. 숲속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이 연이어 들려오고... 어제와 오늘 좋은 구경을 많이 하여서 몸은

조금 고달파도 마음만은 기쁘다...

숲 사이로 벤치와 운동기구가 보여 그곳에 들어가 좀 쉰다.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도 닦고... 앉아 있으니, 조금씩 사람들이 언덕을 올라오기 시작하고, 내가 쉬

고있는 의자에도 하나둘 사람들이 앉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오르자 언덕 꼭대기이다. 건너편으로는 나무숲과 그 뒤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부산의 가장 큰 장점, 미덕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는 것...  언덕을 내려가고 저 아래쪽에 하얀 등대도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등대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길이 나타난다. 나무로 우거진 계단길을 내

려가고 영도등대가 앞에 우뚝 솟아있다. 우선 영도등대 안으로 들어가 빙빙 돌아가는 달팽이길 같은 계단을 오른다. 등대전망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다시 계단길

을 내려온다. 벽에는 세상의 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거북선과 판옥선도 보이고, 영화로 유명해진 타이타닉호 사진도 걸려있다. 등대를 빠져 나오자

카페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창"이라는 카페가 보인다.

카페에 들어서자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Celine Dion의 "My Heart Will Go on"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면서 카페 주인 아주머니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다 건너편으로 대마도가 보였다는 이야기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섬은 주전자 모양이어서 주전자섬이고,

그 섬 주위에는 따뜻한 난류가 흘러 돔 같은 고기들이 많아 낚시꾼들의 포인트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카페를 나와 카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신선바위에 간다. 바다 암반을 따라 난간이 이어지고 그 길 끝에 넓적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앞으로는 주전자섬과 바다가 펼쳐

지고... 깍아지른 바위 절벽과 넓적한 암반들이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일주도로로 올라오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자 이번에는 남항조망지이다. 어젯밤 내가 묵었던 송도 앞바다가 보인다. 그런데 날씨가 맑지 않아

잘 보이지는 않는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길들을 걸으면서 참 좋았는데, 날씨가 가을날씨답지 않게 맑지가 않아 멀리까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이

참 아쉽다.

태종대를 나와 버스를 타고 부산시내로 나온다. 버스를 타고 영도를 빠져 나오면서 갑자기 영도대교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영도대교 앞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그리고 뒤돌아서 영도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영도대교 가운데 서니, 양편으로 바다가 강처럼 길게 뻗어있고, 그 사이로 배들이 지나가고 있다. 영도방향으로는 봉래산이

우뚝하고, 다리 옆으로는 자갈치시장이, 남포동 뒤로는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가 보인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부산시내 곳곳이 잘도 보인다.

다리를 다시 돌아나와 자갈치시장 방향으로 걷는다. 이젠 마지막 기착지로서 자갈치시장에 간다. 자갈치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곰장어를 파는 식당에 들어가 곰장어를

먹는다. 이번 이틀 동안의 도보여행 중에 먹는 것은 참 잘 먹고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곰탕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삼겹살, 점심에 곰장어까지... 보통 내가 여행할 때는

먹는 것은 최대한 비용을 아끼고, 그 대신 잠을 자는 여관은 좀 비싸더라도 깨끗한 여관을 이용하는데... 이번에는 그 원칙 아닌 원칙에서 좀 벗어났다.

시장 안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간다. 부산역 버스정류장에 내려 아직 한시간 정도 기차시간이 남아 건너편의 카페 "Cherbourg"에 들어가 기차시간

을 기다린다. 카페에서 또 냉커피를 마시면서 어제와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사진기에서 다시 찾아본다. 참 많이도 걸었고,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다만,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더 멋진 사진들이 나왔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든다.

카페를 나와 부산역에 들어가 역 구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되어 승강장을 내려가 기차에 오른다.

1박2일의 부산여행...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걸었던 도보여행이었고, 그 도보여행길을 따라 바다와 숲이 함께했던 짧지만 즐거웠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