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여행(5)... 순천 드라마 셋트장에서...

자작나무1 2011. 8. 24. 10:37

 2011년  8월  16일(화)... 여행 마지막날... 순천 드라마 셋트장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에는 항상 긴 여운이 남는다. 아쉬움과 함께... 이 여행기도 이번이 또한 마지막이고...

아침에 일어나 예의 뮤직비디오를 본다. 2NE1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맘에 든다. 서울에 올라가면 꼭 사야지... 나는 여행 중에 아침에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맘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서울에 올라가서 꼭 산다. 노래를, 아니 CD를 들으면서 여행했을 때의 추억도 되새김하고, 노래도 듣고... 하여튼 다 좋다.

 

 여관을 나와 역 방향으로 걷는다. 오늘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식당에서 맛있는 백반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길을 걷는다. 횡단보도를 몇차례 건너니, 동천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서 동천을 바라본다. 그저 그런 강이지만, 그래도 지방도시의 한적함이 묻어있다. 아침 조깅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몇몇 보이고. 순천이라는 도시의 약간 나른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조금 걸으니, 순천역이 보이고,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식당을 찾는데,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역 앞의 민속식당이라는 곳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서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민속주차장은 있는데, 민속식당은 없다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에서 알아 두었던 식당을 찾아서 가 보았더니, 한 곳은 혼자는 안 받는다고 문전박대하고, 한 곳은 아직 준비가 덜되어 식사가 안 된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먹을 복이 없나 보다. 아침부터 날씨는 무덥고,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역 앞의 카페가 보여 무작정 들어간다. "지와 사랑" 갑자기 헤르만 헤세가 떠올라진다.

 

 카페에 앉아 우선 몸 안의 열기를 식히고, 냉커피를 마시면서 이번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본다. 여행도 그리 짧지 않았지만, 사진은 생각보다 무척 많다. 하긴 많이 찍어놔야 나중에 정리하면서 남는 사진이 많을 것이다. 양이 많아야 질도 높아진다고... 워낙 좋은 곳들을 많이 다녀서 괜찮은 사진도 많이 얻었을 것 같은 생각이다. 순천 관광지도를 꺼내서 가까운 곳에 구경거리가 있나 찾아본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드라마 셋트장이 있다. 아직 기차시간이 많이 남아서 훌딱 갔다오기로 마음 먹는다.

 

 카페를 나와 택시를 타고 드라마 셋트장에 간다. 기본요금 정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택시비가 많이 나왔다. 따질 수도 없고... 원래 버스를 타고 올 생각이었지만, 사람들이 버스 타는 곳을 잘못 가르쳐주는 바람에 택시를 타게 된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행에서는 버스나 기차 타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버스 타고 다녀야만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택시는 그럼 여행이 아닌가... 그건 여행이 아니라 유람이다???

 

 드라마셋트장에 도착...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간다. 70, 80년대의 도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약간은 녹슬고, 허름하고, 썰렁한 그런 분위기... 그 나마 젊은 사람들이, 특히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괜찮았지, 아마 사람들이 없었다면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름대로 순천 여행기를 찾아보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곳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나는 원래 영화나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드라마는 내가 너무 일찍 자는 바람에 잘 못 보고, 영화는 한곳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것이 싫어서 잘 안 본다. 그렇게 안 보다 보니, 안 보게 되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한가지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것과 똑같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고...

 

 도시의 거리를 지나자 산비탈에 달동네가 나온다. 밑에서 보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사람만 살지 않을 뿐이지, 달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초라한 함석집... 비뚤어진 대문... 문 옆의 개집... 깨진 유리창... 담벼락에 씌여진 반공이라는 붉은 색 글씨... 어디선가 이 곳 달동네의 주민들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처음 입구에서 느꼈던 실망감이 달동네를 오르면서 여기도 괜찮군 그런 생각으로 바꾸어진다. 셋트장을 나오면서 포스터를 보니, 이곳에서 드라마 "자이언트"와 "사랑과 야망"을 여기에서 찍었다고 나와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이 자이언트 초반에 두 남매가 밤에 어느 집의 헛간에 들어가 하룻밤 자는 장면과 아침에 주인인 이 덕화님에게 걸린 장면, 사랑과 야망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집이 순천집으로 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긴 언덕을 넘어 대로로 나오고, 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77번 버스가 들어오고, 다시 역 앞으로 왔다. 잠시 잊었던 배고픔이 되살아나고, 가까운 식당에서 선짓국으로 밥을 먹고 다시 카페 "지와 사랑"으로 들어가 이제는 기차시간을 기다린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앉아서 서울에서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한다. 미국의 펄벅 여사가 쓴 "북경에서 온 편지"이라는 소설책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틈틈이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돌아다니는 것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여행 중간중간 책을 읽는 것도 참 좋다. 나중에 소설을 생각하면서 함께 여행했던 시간들을 기억할 수 있고, 또 일상 속에서 읽는 내용과 멀리 나와서 읽는 내용은, 내용은 같아도 받아들이는 것은 많이 차이가 난다. 소설은 내용이 참 간단하다. 등장인물도 그리 많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지만, 읽어나갈수록 책 속에 빨려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대가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소설읽기를 마치고 간단하게나마 이번 여행을 총정리하는 글을 수첩에 적고 카페를 나온다.

 

 " 그리 짧지 않았던 여행이 끝을 보이고 있다. 여행 시작하기 전의 흥분과 설레임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여행은 나를 들뜨게 한다. 어쩌면 여행이 있어 나의 삶은 어둡지 않은 것은 아닌지... 여수 금오산에서의 바다풍경, 오동도의 동백나무숲, 순천만의 드넓은 갈대밭, 선암사라는 고운 옛절과 편백나무숲, 송광사의 대나무숲, 낙안 읍성의 과거풍경, 보성 녹차밭의 장관 등등... 아름다운 풍경들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고,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을 가슴에 품고 서울로, 집으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순천역으로 향한다. 아직도 기차시간이 남아 있어 의자에 앉아서 어제했던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본다. 보는 중에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기차를 타기 위해 승차장으로 간다...

 

 행복했던 이번 여행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조그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 또는 예기치 않았던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번 여행이... 어려움을, 괴로움을 참고 견디어 나가면 나중에 또 즐거운 여행이 기다릴거라고 나에게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움에 낙담하지 않고 참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그래서 내 삶의 작은 버팀목이 돼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