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여행(3)... 순천 조계산에서

자작나무1 2011. 8. 22. 10:36
 2011년  8월 14일 (일)... 여행 넷째날... 조계산에서...


 어제는 날씨도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몸도 안 좋아서 여관에서 푹 쉬었다...
오늘 아침은 푹 쉬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났고 몸도 한결 나아졌다... 이런 외지에서 몸이 아프면 참 난감해진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관에서 8시 정각에 나왔다. 오늘은 산에 가는 날이라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예의 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선암사를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선암사 가는 버스는 거의 두시간에 하나씩 있다. 일부러 일찍 나왔는데, 올려면 한시간 가까이 기다려야할 것 같다. 그 나마 정류장 옆에 버스 오는 시간이 전자 게시판에 떠서 다행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도 없는 시골의 조그만 간이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이다. 오늘처럼 날은 무덥고 햇빛을 막아줄 그 무엇도 없다면 참 환장할 일이다. 그런 기다림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 것인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과 기다림 끝에 선암사로 가는 1번 버스가 들어온다. 오랜 기다림 끝이라 무척이나 반갑다. 버스는 도시의 끝에 있는 순천 제일고를 지나고 산중턱을 넘어서 버스종점에 도착한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삼거리에 있던 기사 식당에서 밥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가 자주 있었더라면 그 기사 식당에 들러 아침을 해결하고 갈텐데... 남도에서 먹는 것을 고민하는 현실... 남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한테 문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가까운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먹는다. 나도 절을 좋아하여, 물론 불교신자는 아니고... 옛 절을 많이 찾아다니는데, 꼭 절에 가면 절에서나 또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많이 먹게 된다.  나에게 비빔밥은 그래서 사찰 음식이다... 작년 가을에 내장산에서 내려와 먹었던 비빔밥이 생각난다. 음식도 깔끔하고 맛도 괜찮았다. 이번 비빔밥은 그냥 비빔밥이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고 매표소 입구에서 물을 챙긴다. 절로 올라가는 길의 나무들이 참 좋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들이 참 보기 좋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이렇듯 나무가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에서 멋진 나무들을 실컷 보고 있다. 난 특별한 종교가 없다. 굳이 특별한 종교를 찾으면 이런 오래되고 멋진 나무들이 나의 종교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길을 따라가고, 앞에 승선교와 강선루가 나타난다. 강선루는 보수공사 중이다. 절로 들어갈수록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절에 와서 절을 보고 감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에 푹 빠진다. 절 주위에 나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주위에 절이 있는 듯하다. 아침부터 웬 횡재... 그런 기분이 들 정도다. 절로 들어가 이곳저곳 구경을 한다. 그런데 절보다는 나무와 꽃들만 눈에 보인다. 오래된 매화나무... 선암매도 보이고, 큰 나무 밑에는 상사화가 피어있다. 어느 책에선가 선암사는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그런 절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나무에 정신이 팔려 그 유명한 깐뒤(해우소)를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깐뒤보다도 그 앞에 활짝 피어있는 배롱나무꽃에 더 마음이 간다. 붉은 색 배롱나무꽃... 남도의 여름을 색채로 표현한다면 이 배롱나무꽃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한여름이면 남도 곳곳에 피어있는 꽃... 그 붉은 꽃으로 남도의 여름은 더욱 화려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젠 절을 벗어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절 뒤에는 야생화단지가 만들어져 있고, 그 뒤로 편백나무숲이 울울창창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많아서 어린애 마냥 신났다. 그 숲에 들어가 한숨 푹자면 참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갈길이 멀어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늘은 산 정상에는 오르지 않지만, 큰 고개 두개를 넘어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아니지만, 산길이므로 주의해서 오르고 내려와야 한다. 긴오르막... 올라갈수록 숨이 차고 몸이 무거워진다. 잠깐씩 쉬면서 오르고, 또 쉬었다가 오르고... 그런 반복 속에서 고개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나마 옆에 계곡이 흘러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가서 좋다.


 큰굴목재에 도착... 고개 이름이 큰굴목재이다. 의자에 앉아서 땀을 닦고, 물도 마시면서 호흡을 고른다. 요즘 한동안 산에 오르지 않아 더 힘든 것 같다. 한마디로 운동부족이다. 다시 고개를 내려가고... 길이 울퉁불퉁한 돌길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인터넷에서는 조계산은 부드러운 산이라고 나오는데, 뭘 보고 부드럽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저 습기 먹은 돌계단에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산길을 탓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산을 오르고 내릴 일이다. 산에 들어오면 산을 탓하기보다는 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마 옳은 일일 것이다.


 얼마쯤 내려오자 보리밥집이 나타난다. 산 속에서 보리밥집을 보는 것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우선 반갑다. 들어가서 보리밥을 시킨다. 입구 자리에 앉았는데, 식당 사람들과 등산객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산 속의 인심... 그들의 대화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지난 태풍에 고생하시지 않았느냐는 등산객의 걱정에, 식당 종업원들은 봄에 다친 무릎은 괜찮으시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는 모습... 처음 온 산객들도 다정하게 받아주고, 굳이 음식을 사먹지 않아도, 평상에 앉아 집에서 싸 온 음식을 평상에 앉아 먹어도 뭐라고 그러지 않는다. 옆의 큰 가마솥에서 끓고있는 숭늉은 아무나 먹어도 괜찮고... 오래간만에 보는 산골의 풋풋한 모습이다.


 밥을 먹고나서, 길을 나선다. 배도사 대피소라는 곳을 지나치고, 개울을 건너자 긴 오르막이 나타난다. 밥을 먹고나서 오르막을 오를 때는 더더욱 힘이 드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몸이 더 가벼워졌다. 밥 먹으면서 푹 쉬어서 그런가 보다. 힘이 새로 솟는 것 같다. 앞의 사람들을 따라잡으면서 열심히 오른다. 이 오르막만, 이 고개만 넘으면 더 이상의 오르막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쉽게 고개 정상에 다다른다.


 송광굴목재 도착... 이름이 참 특이하다. 큰굴목재, 송광굴목재... 산에 다니면서 듣기 어려운 이름이다. 송광굴목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푹 쉰다. 산은, 쉰 만큼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젠 내리막이다. 이 내리막 끝에 송광사라는 절이 나올 것이다. 내려가면서 또 다시 계곡이 나타나고, 피아골로 접어든다.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있다. 난 아직 못 읽어 봤지만... 그 소설에는 피아골이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지리산 빨치산들이 경찰들을 피해 이 곳 피아골로 많이 숨어 들어왔다고... 아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조계산에 들어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다 내려왔다. 갑자기 양쪽으로 나타난 대나무숲이 참 장관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리고, 지친 몸에 기운을 불어 주는 것 같다. 어디선가 시원한 댓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대나무숲 뒤로 송광사가 보인다. 산길은 끝난 것이고... 송광사 안으로 들어간다. 3보 사찰답게 절이 매우 크다. 예전에 송광사에 왔을 때는 이렇게 모든 전각을 공개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은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파란 눈의 외국스님들이 참 많이도 모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절을 한바퀴 돌아본다. 절이 커서 돌아보는데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걸어다니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넓은 공간을 메꾸려고 심은 나무들이 눈에 띈다. 아마 그런 나무들이 없었다면 절의 공간이 얼마나 텅 비어 보일까 그런 생각도 든다. 중간중간 나무들이 많아서 넓은 공간들이 허전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절을 벗어나 주차장쪽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도 나무들이 일품이다.
여기도 절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무들을 구경하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도를 피해 오솔길로 접어드니, 편백나무숲이다. 그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산에서 흘렸던 많은 땀들이 다 어디론가 날아간 기분이다. 주차장 도착...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사와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신다. 난 산을 무척 많이 좋아하는데, 한가지 흠 아닌 흠이라면, 산에서는 담배를 못 피운다는 것이다. 한동안 피지 못 했던 담배를 맛있게 빨아댄다. 이렇게 참았던 담배를 피우게 되면 담배맛이 두배로 맛있는 것 같다... 아 좋다.



 쉬는 사이, 111번 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는 상사호인가 큰 저수지를 옆에 끼고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본 것이지만, 남도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여기에서 다시 보게 된다. 앞에는 넓은 논들이 펼쳐져 있고, 마을 입구에는 그 마을의 역사를 짐작하게 해주는 우람한 나무가 있고, 그 옆에 정자가 있고, 정자 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계시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나도 그런 풍경에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의 삶의 원형이랄까... 그런 것을 예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