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여행(4)... 순천 낙안읍성과 보성 녹차밭, 율포

자작나무1 2011. 8. 23. 10:37

 

 2011년  8월 15일(월)... 여행 다섯째날... 순천 낙안 읍성과 보성 녹차밭, 율포해변...


 터미널 버스정류장... 낙안 읍성에 가기 위해서 와 있다. 이 버스정류장 참 재미있는 곳이다. 여기저기에서 온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곳이다. 주로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옆의 사람들에게 어디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오늘은 외지, 특히 나처럼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다. 동네 사람들이 서울에도 볼 것이 많은데, 날도 싸나운 이런 날에 여기 오느냐고 묻고... 젊어서 돌아다녀야지 나이 들면 돈이 있어도 못 돌아다닌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아이들 이야기들 하신다. 당신의 아이들이 장성해서 서울로, 광주로 일하러 갔다면서... 아이들 자랑과 걱정을 함께 늘어놓으신다. 버스정류장은 어느새 시골 복덩방으로 그 역할을 바꾸어간다... 어르신들의 하염없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다리던 버스가 들어온다. 63번 시내버스... 낙안 읍성을 들렀다가 송광사로 들어가는 버스이다.

 

 낙안 읍성으로 가는 버스도 만원이다.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버스는 달린다. 한동안 농촌마을들을 지나다가 어느새 고개를 넘고, 또 고개를 넘고 한참을 달린다. 지도를 보니, 이곳 낙안 읍성은 순천에서도 맨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히려 보성 벌교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버스는 낙안 읍성 앞 주차장에 정차하고... 버스에 내려 사람들을 쫓아 입구로 간다. 읍성으로 들어가면서 단단한 돌담과 초가지붕들이 보인다. 기분이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예전에도 한 번 와 봤는데, 초가 마을이 참 정겨웠던 기억들이 새로와진다. 입구의 석구상을 지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잘 있었냐는 듯이... 두번째 보는 것이라 조금은 반가운 느낌도 든다. 입구에 들어서자 예의 향토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커다란 골목길과 주위의 초가집들... 그 사이로 키 큰 나무들이 나를 반겨준다. 우선 가까운 식당에서 콩국수를 먹는다. 여기서는 백반을 먹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안된다고 한다. 2인 이상이어야 한단다. 그렇다고 돈을 더 주고 먹기는 싫고...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콩국수를 먹는다. 먹고나서 건너편의 초가쉼터에서 시원한 냉커피를 후식으로 마신다. 날이 오늘도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길을 지나 성벽으로 올라선다. 밑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성벽을 따라 걷는다. 오늘도 이곳에는 꽤 사람들이 많다. 성벽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르니, 마을이 전체적으로 보인다. 그 마을 뒤로 높고 낮은 산들이 빙 둘러져 있고... 꼭 풍수를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길지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시인인가, 소설가가 자신의 장래희망이 이 곳 낙안읍성의 촌장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썼다면 그리 오랫 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나의 꿈을 얘기한다면, 촌장은 가당치도 않고 마을주민 그것도 좀 그렇다. 다만 낙안 읍성을 좋아하고, 그래서 이곳에 몇번씩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성벽을 내려와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이 곳 낙안 읍성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건물들이 아니라, 예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던 건물들에 지금도 사람들이 살면서 가꾸어진 공간이라 더더욱 자연스럽고, 분위기도 정답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나 할까... 마을 중앙에 넓은 풀밭이 있고, 그 가운데 두 그루의 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그 두 그루의 나무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한 곳을 지키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멋지거나 훌룡한 사람은 못 되더라도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 곳을 지키는 사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낙안 읍성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정류장에 앉아 있어도 그늘이 없어 무척이나 덥다. 이런 무더운 날에 돌아다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미쳐야 가능한 일들... 행복한 여행도, 즐거운 여행도 약간은 미쳐야 가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버스가 들어오고... 벌교 버스터미널로 간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꼬막 정식을 먹어야 하는데, 좀전에 국수를 먹어서 그냥 넘어간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많은 날들이 지났는데, 벌교에서 꼬막 정식과 홍교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게 생각이 든다. 터미널에서 다시 보성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탄다. 오늘은 버스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큰 일이 되겠다. 직행버스는 보성 터미널에 닿고, 다시 거기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대한다원(보성녹차밭)으로 간다. 이 군내버스에도 사람이 한가득이다. 특히 젊은 연인들이 많다. 날씨가 더워도 여행은 계속 되나 보다...

 

 버스에 내려 녹차밭으로 간다. 입구부터가 너무너무 멋지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양쪽에 키 큰 삼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다시 한번 이번 여행은 나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나무길이 끝나고 입구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오른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도 사람들이 많아 시장통 입구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입구를 지나자 이번에는 편백나무 숲 속이다. 이렇게 입구부터 멋지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리나 보다. 나무 숲 속 사이사이로 원색의 파라솔들이 더 멋져 보인다. 이국적이기도 하고... 우선 파라솔에 앉아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더워서 그런가 자꾸 냉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녹차밭을 보러 올라간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녹차밭이 앞에 펼쳐진다. 또 하나의 장관이다. 누군가가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녹차잎 색이 예년보다 못 하다고 말을 했다. 나는 그런 정도는 모르겠고... 계단을 밟아가며 위로 위로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더 멋있는 장면들이 펼쳐지고... 그럴수록 더더욱 멋있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너무나 멋있는 장면들을 많이 보았다. 또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꼭대기에 올라서고... 녹차밭과 그 뒤의 나무숲... 또 그 뒤의 산들...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땀도 식히면서 한참을 앉아 있는다.

 

 녹차밭 뒷길로 내려간다. 계단길이 조금은 가팔라 조심조심 내려온다. 게다가 습기까지 묻어 있어 더더욱 미끄럽다. 뒷길은 편백나무숲이다. 그 나마 햇빛을 막아주어 조금은 서늘하고... 다 내려오니 개울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거기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편한 시간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나도 거기에 한자리 끼어 앉고 싶었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냥 지나친다. 중간에 조그만 상점이 나와 거기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이다. 먹고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또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버스를 내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버스를 내리고... 버스 여행이다. 예의 버스를 타고 율포 해변으로 간다.

 

 버스에서 내려 일단 가까운 식당... 다향보성녹돈삼겹살식당에 들어간다. 삼겹살을 시켜 먹는다. 나는 원래 삼겹살을 매우 좋아한다. 일이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면 세상 남부러울 것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곤 했다. 시간도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맛있게 실컷 먹었다. 아주 오래 전에 강진인가... 터미널 옆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밑반찬으로 젓갈이 나와 젓갈과 함께 먹었던 삼겹살이 참 맛있었던 기억이 새록 떠오른다. 배 터지게 먹고나서 바닷가로 나간다.

 

 율포 해변... 저 끝에 방파제가 보인다. 우선 방파제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속이 든든해서 그런가 걷는데, 힘이 솟는 것 같다. 갯벌과 그 뒤의 바다... 여느 바다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보다는 웬일인지 바다를 보아도 무덤덤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몇일 동안 너무 멋있는 풍경을 보아서 그런 것 같다. 이젠 웬만한 풍경에는 그리 감동을 먹지 않는 것 같다. 방파제를 지나 그 끝에 도착하고... 퍼질러 앉아 바다를 쳐다본다. 몇일 동안의 일들이 주마간산식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여행도 그 끝을 보이고 있다. 즐거웠던 시간들이었고, 무사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그 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일어나 정류장쪽으로 가면서 갯벌과 갯벌에서 무엇인가를 잡는 사람들과 썰물에 몸통을 드러낸 배와 몇 마리의 갈매기를 보면서 걷는다. 서서히 나의 몸이 지쳐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버스정류장에서 보성으로 나아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어느새 어둠이 조금씩 쌓여가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 세상과는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든다... 그런 아늑함 속에 푹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