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여행(1)... 여수 금오산에서

자작나무1 2011. 8. 20. 10:35
2011년 8월 11일 (목) 여행 시작...


 기어코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 전날은 왜 이리 잠을 설치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소풍가기 전날 밤에는 꼭 잠을 설치듯이... 집에서 씼고, 밥 먹고, 집을 나선다. 발걸음이 오늘따라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이 되고...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아직 기차 출발시간까지는 한시간 정도 남았다. 밖에 나와서 담배 두 대 피우고 대합실에 앉아서 아침에 지하철 역 앞에서 가져온 AM7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신문을 읽으려니, 마음이 들떠서 그런가... 가만히 앉아 있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얼마간 왔다갔다 하다보니, 출발시간이 다가온다. 승강장에 내려가고, 얼마 있다가 기차가 들어온다. 09시 13분 여수행 무궁화호. 지정된 좌석에 앉으니,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새삼 절감한다.


 이제 출발이다. 기차는 내가 사는 신도림역을 지나 수원 방향으로 달리고, 나는 앉아서 그저 창 밖에 스치는 풍경들을 바라다본다. 나에게 있어 삶의 교과서는 어떤 책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이다. 이런 것들이 삶의 교과서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하는 셈치고 남쪽으로 내려가자... 서대전을 지나가고 있다. 그 나마 대전까지는 많이 공부를 하여서(많이 보아서) 익숙하지만, 그 이후는 잘 보지 못해서 좀 더 잘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점점 지겨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익산과 전주를 지난다. 전주가 점점 커지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음에는 익산의 미륵산과 전주의 덕진공원과 한옥마을에 가야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나를 들뜨게 만드는 것이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워진다. 여행... 나를 들뜨게 만드는 것... 구례구역을 지난다. 여기도 언제가는 꼭 와야지. 버스를 타고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까지 올라가봐야지... 아직도 갈 곳이, 여행할 곳이 많다는 것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대한민국이 좁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인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말도 안되는 생각 속에 기차는 여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번 여행에 들를 순천을 지나고 여천을 지나 여수역에 도착한다.(14:30) 


 내년에 있을 여수 엑스포행사 때문인지 역이 번듯하게 새로 지어져 있다. 역 밖으로 나오니, 무더운 열기가 훅하고 나를 덮친다. 기차 안에서는 이렇게 더운지 몰랐는데... 그래서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해서 파악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시원하면 남들도 시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편하면 다른 남들도 편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만과 편견... 제일 먼저 관광안내소에 들어간다. 나도 많은 지역의 관광 안내소를 들어가 보았는데, 여기처럼 붐비는 곳은 처음이다. 관광안내도 하나 구할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러면서 이번에 여기 여수에 잘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바로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일단 시내로 나간다. 내년에 있을 행사 때문인지 역 주변은 한창 공사판이다. 시내에서 간단히 점심(김밥)을 먹고 외환은행 앞 버스정류장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더워서 그런가 쉽게 버스는 오지 않고... 한참 기다린 후에 113번 향일암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그 나마 버스에 오르니, 에어컨이 잘 되어 있어 추울 정도로 시원하다. 버스나 지하철이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한여름에 그 나마 다행이다는 생각을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하게 된다. 나를 태운 버스는 시장통을 지나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도로 넘어간다. 섬 안으로 들어가니, 섬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섬이 크다. 주위에 산이 있고 논과 밭이 나타나고, 마을이 그 사이에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라고나 할까...조금 지나자 섬이라는 것을 가르쳐주 듯이, 넓은 바다가 나타나고, 바다를 끼고 이름 모를 어촌들이 나타난다. 내 개인적으로는 해수욕장을 낀 바다보다는 이런 조그만 포구가 있는 바다가 더 보기 좋다. 그 곳 사람들의 평화스러우면서도 고단한 삶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돌산대교에서 향일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길에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아도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서 그런가 쉽게 도착하지 않는다. 결국 버스종점에 도착...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디가서 밥을 먹기로 한다. 아까 시내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는데, 그것으로는 속이 차지 않았나 보다. 원래 밥을 많이 먹는 체질이라...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일출 횟집이 보여 무작정 들어간다. 창 밖으로 넓은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우럭 매운탕을 시킨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여행 첫날이고, 예전부터 매운탕을 먹고 싶어서 눈 딱감고 시킨다. 맛이 있으면 됐지, 가격은 그 다음이라는 생각으로... 바다를 내다보는 사이에 매운탕이 들어온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아져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 우럭 매운탕 오래간만에 맛있게 잘 먹었다. 이런 먹는 맛에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나오면서 학교에 보낼 갓김치도 택배로 부탁한다. 밥도 배불리 먹었겠다. 천천히 향일암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바다가 넓게 퍼져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인데도, 한낮의 열기가 식지를 않아 땀이 줄줄 샌다. 계단을 오르고 일주문을 지나고, 향일암의 특징이랄 수 있는 좁은 바위를 지나 암자에 도착한다. 암자는 어수선하다. 대웅전이 불타는 바람에 다시 짓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가 암자 앞에서 보는 바다도 별로이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 바다를 볼려고 서울에서 기차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암자를 뒤돌아내려와 금오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옆에 계시던 스님 한 분이 금방 어두워진다고 올라가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암자며, 암자 앞의 바다에 실망한 나는 기어코 산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게다가 산꾼이 지척에 산을 놔두고 그냥 갈수야 없지 않은가... 다시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돌길과 계단을 번갈아하며 오르기 시작한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조금만 힘을 쓰자... 가끔 사람들이 내려온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사람들이 위에가 훨씬 멋있다고 얘기 해준다. 없던 기운이 다시금 솟구쳐 오른다. 힘든 만큼 고생한 보람이 있을거야... 가끔씩 바위 위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날씨도 맑고 바다도 잔잔하고... 지친 몸과 마음에 기운을 복돋아준다... 아... 바다...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벼워 하늘로 날아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정상이 아니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고, 얼마쯤 올라가자 정상이 보인다... 올라가다보면 정상은 만나게 되어있다. 정상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푹 쉬면서 멀리 바다를 내려다본다. 오늘 따라 바다며, 섬이며, 건너편의 육지가 모두 다정해 보인다... 그 바다가, 그 섬이, 그 건너편의 육지가 잘 왔다고, 오느라고 고생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 주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에 지친 나를 시원하게 해준다. 이런 맛에 여행을 떠나고,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아쉽지만, 산을 내려가야겠다. 어차피 산에 올랐으면, 당연히 내려가는 것이 순서이다. 내려가는 길도 돌길이라 편하지 않다. 여행에서는 무조건 안전이 우선이다. 정상에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곳곳에서, 바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오를 때는 오르는 일에만 신경을 써 그 멋진 바다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오르기만 했는데... 하여튼 여행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앞만 보고 무조건 달릴 일이 아니라 가끔은 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돌아보면 이렇게 멋진 풍경이,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부지런히 내려간다... 올라갈 때는 한참이더니, 내려올 때는 금방이다. 종종 인생을 산행이라고 말하는 산꾼들이 많던데, 그렇다면 인생도 올라갈 때는 그렇게 힘들어도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 탄 것처럼 금방일까... 난 아직 젊어서, 아니 어려서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인생을 사는 거겠지... 산을 벗어나 큰길로 내려선다. 아직 어둡기 전에 내려와서 다행이다. 예전에 밤이 깊어 산 속에서 내려오면서 고생한 적이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비록 조그만 산이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한 길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버스종점 방향으로 내려오다보니, 건물 안쪽으로 새로 생긴 듯한 카페가 보인다. 카페 "뜰에모아"... 통나무로 지은 멋진 카페이다. 야외 테라스에 앉으니, 바다가 앞을 막고있다. 밑으로 임포마을이 보이고, 그 사이를 제비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냉커피를 시킨다. 여행 자체가 큰 즐거움이지만, 여행 도중, 땀 뻘뻘 흘리면서 돌아다니다가 예쁜, 멋진 카페를 발견하면 무작정 들어가서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땀도 식히고, 피곤한 몸도 쉬이고, 다음 여정을 가다듬으면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으니, 손님도 없는 카페에서 주인 어르신과 사모님이 곁에 앉으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에서 왔다니까 혼자 멀리도 왔다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주인 내외분들도 서울에서 살았는데, 너무 복잡하고 공기도 너무 나쁘다면서, 여수에 아파트가 있는데, 한여름에는 열대야 때문에 주로 이 곳 카페에서 지내신다고 하셨다. 또한 지난번 태풍 때문에 무척 고생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냉커피를 마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밤은 깊어만 가고... 어느새 둥그런 달이 떠올랐다. 보름이 얼마남지 않았나 보다. 두분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버스종점으로 내려온다. 웬지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뭔가 뿌듯해진 느낌이 든다. 종점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지나서 버스가 들어오고, 버스를 타고 여수시내 방향으로 나아간다...


금오산 위에 걸려있던 달도 버스를 쫓아 함께 돌산대교를 건너 여수시내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