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남도여행(2)... 여수 오동도와 순천 순천만

자작나무1 2011. 8. 21. 10:36

 2011년 8월 12일 (금) 여행 둘째날...

 

 어제 무척 피곤하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졌다. 보통 직장에 가는 날보다 쉬는 날에 더 일찍 일어나는 습성이 있다. 일찍 일어나 라디오 듣다가 한 번 더 자긴 하지만...

 

 일어나서 뮤직비디오를 본다. 나는 뮤직비디오를 참 좋아한다. 노래도 듣고, 영상도 참 보기가 좋다. 이렇게 여관에서 혼자 일어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9시까지 뮤직비디오를 보고, 준비하고 나와서 돌아다니고, 오후 6시쯤에 돌아다니는 것을 그치고 여관에 들어와서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더운 여름, 그래도 휴가를 겸한 여행인데 너무 힘들게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게 맘처럼 될는지 모르겠다. 9시 반에 여관을 나와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남도에서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백반을 먹어도 다 맛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 남도의 맛도 예전의 일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준비가 덜 되었다지만, 맛은 그리 없었다. 이런 작은 일들이 나를 슬프게하는 한가지 이유가 된다. 가까운 정류장에서 오동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오동도가 종점인 2번버스가 들어온다. 오늘은 아침부터 찐다. 남쪽이라서 더 그런가... 오늘도 더위 때문에 무척 많이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어제 왔던 외환은행 앞 버스정류소를 지나고, 진남관을 지나쳐 오동도 버스종점에 도착한다. 이곳이 내년에 있을 엑스포행사의 주무대이어서 그런지 여기저기가 공사중이다. 어수선하고...

 

 버스를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오동도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도 그들을 쫓아간다. 아직 이른시간이라서 그런지 동백열차는 없다. 한여름의 남도의 뙤약볕을 받아가며 오동도까지 이어진 방파제길을 걷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투덜거리고, 양산을 받쳐쓰고 걷는다. 그 뙤약볕이 싫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방파제를 지나 섬 앞에 도착한다. 그나마 바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평선 쪽의 바다와 건너편의 여수 시내가 잘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수가 점점 더 매력있는 도시로 느껴진다. 다음에는, 정말 다음에는 여수만 다시 찾아오고 싶어질 정도로... 섬 안으로, 그늘 속으로 숨는다. 약간의 계단길이 이어지고, 숲 속의 산책길이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주위의 나무들이 장관이다. 남쪽이라 그런지 나무줄기도 굵고, 잎도 넓은 활엽수림들이 정말 보기 좋다. 숲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숲 속길은 그늘지고, 서늘하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옆의 바닷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와 주는 것 같다. 숲은 참 장관이다. 봄에 동백꽃이 필 무렵에 온다면 잊지 못할 여행을 만들어 줄 것 같다. 그러나 직장에, 일상에 얽매인 사람이 그렇게 시기를 딱 맟추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천천히 용굴을 찾아 내려가보고, 등대로 이루어진 전망대에도 올라가본다. 전망 유리가 지저분해서 그런가 멋지지 않고... 등대는 예쁘게 잘 만들었다.

 

 등대 옆에 "동박새꿈정원"이라는 카페가 나타난다. 아침부터 뜨거워진 열기 좀 식힐 겸 앉아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의외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이 없으면 말이 안되지... 나도 개인적으로 나무나 숲 이런 것들을 좋아해서 자주 찾아다니곤 하는데, 이곳은 몇손 안에 꼽을 정도로 울창하고 멋지다. 이런 멋진 곳에 와 있는 난... 멋있는 사람일까... 내가, 멋있는 사람이 못 되어도 이런 멋진 숲을 알고 찾아왔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행복하다... 냉커피를 다 마시고 천천히 입구를 찾아 내려간다. 나중에 이곳에 오면 오랜시간 동안 이 숲에 머물러 있고 싶다. 천천히 산책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실컷 바다도 쳐다보고... 그러면 나를 한동안은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숲을 내려오니, 앞에 동백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동백열차를 타고 섬을 빠져 나온다.

 

 다시 버스종점으로 돌아가서 2번 버스를 타고 진남관으로 간다. 보통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수까지의 바닷길을 한려수도라고 한다. 남도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펼쳐진 길이자, 조선시대에 왜적과 맞서 싸우셨던 이순신 장군님의 얼과 자취가 곳곳에 배여있는 역사적인 길이기도 하다. 그 중에 한 곳인 진남관은 이순신 장군님께서 집무를 보시고, 많은 장수들과 어울려 작전을 상의하던 곳이다. 그런 필요 때문인지, 진남관은 천정도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도 넓어 그 당시의 절박했을 상황은 생각나지 않고, 건물이 호탕해 보인다. 무인다운 건물이라고나 할까.... 진남관이 산 위로 좀 높은 곳에 있었다면, 그래서 앞의 여수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넓게 보였다면 얼마나 멋진 건물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나만의 속 좁은 생각이겠지만... 널찍한 마루에 앉아도 보고, 옆의 사람들 사진도 찍어주고, 앞의 풍경도 내다보면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길 건너편에는 이순신 광장이 만들어져 있다. 한바퀴 둘러보고, 바다도 한 번 더 쳐다보고, 다시 진남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6번 시내버스를 타고 여수 공용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버스는 지나가면서 여수 시내 곳곳을 보여준다. 바다를 낀 도시는 좀 지저분하고 약간은 무질서하게 보이는데, 이곳 여수는 시장 주위만 빼고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다. 막상 여수를 떠날 생각을 하니,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루 더 머물면서 돌산 대교와 돌산 공원에도 가보고, 유명한 영취산 흥국사도 가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9년전 여수에 왔을 때 여객선터미널 안에 있었던 다방에서 보았던 예쁜 종업원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고 그래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쳐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차피 다음을 기약하면서 남도 미항 여수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약간의 아쉬움을 묻어둔 채 떠나는 것도 여행에서의 한 방법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그래야지 다음에 그런 미련 때문에 다시 한번 찾아올 수 있으니까... 잘 있거라... 여수여...

 

 터미널에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는 여천을 거쳐 순천터미널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터미널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순천 관광지도를 하나 얻고, 순천만에 어떻게 가는지 물어본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관광안내소를 보면 꼭 들어가서 관광지도를 꼭 하나씩 얻는다. 그래서 집에 고이 모아둔다. 심심할 때 볼 때도 있고, 어딘가 여행을 갈 때에는 제일 먼저 관광지도를 보면서 여행계획을 세운다. 아마 50여개 정도 모은 것 같다. 그런 것도 쌓이고 보면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67번 버스를 기다린다. 여수에서도 그랬지만, 이곳 순천에서도 버스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 여수와 순천으로 여행을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명불허전이라고 하나... 이름이 헛되지 않은 곳에는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여기는 서울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에 부딪끼면서 간다. 그래도 싫지는 않다. 이런 것도 여행의 잔재미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순천만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세시가 넘어가고 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가까운 식당... 갈대밭 식당에서 짱뚱어탕을 시킨다. 나도 짱뚱어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와서 확실히 알았다...
짱뚱어는 갯벌에 사는 물고기로, 생긴 것이 두발 나온 올챙이 같이 생겼다. 순천만 갈대밭 밑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래서 여행은 공부라고 하는가 보다... 내가 원래 추어탕을 안 먹는데, 짱뚱어탕이 추어탕식이었다. 맛도 내가 좋아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그 나마 밑반찬이 괜찮아서 그것으로 해서 먹었다. 먹고 나서 식당 앞의 야외 쉼터에서 따뜻한 커피에 담배 두대를 피운다. 여행을 다녀온 지 보름 가까이 지났는데... 나는 많은 장면 중에서도 이상하게 이 장면... 식당에서 밥 먹고 널찍한 야외 쉼터에서 커피 마시면서 피웠던 담배가 유난히 많이 떠올려진다... 너무 힘들게 돌아다니다보니, 돌아다녔던 장면들보다는 이렇게 마음 푹 놓고 쉬었던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에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 이런 일화를 읽은 적이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곳을 보기 위하여 아침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서울에 와서 기억나는 일은 어느 미술관에서 보았던 밀레의 낮잠 자는 농부라는 그림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았던, 트럭 뒤에서 짚풀을 깔고 정신없이 자던 외국인 노동자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나도 어제와 오늘 너무 많이 걷고, 돌아다닌 것 같다. 밥 먹는 시간도 거르면서....

 

 순천만 입구...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남다르다. 웬지 잘 왔다는 생각도 들고...예전에 순천에 왔을 때 이곳 순천만을 빠뜨리고 간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때만해도 순천만이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알지 못 하면 정말 좋은 곳을, 중요한 곳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고...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천천히 용산전망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어느 사이 광활한 갈대밭이 나타난다... 정말 장관이다... 갈대밭 사이사이로 목재테크가 설치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갈대밭 위로 시원한 바람이 몰려오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 비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아 비를 맞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곳곳에 순천만과 갈대숲, 갯벌에 대한 안내표지가 있어 읽으면서 나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는 밑에 게와 장뚱어들이 굴을 따라 들락날락하고 있다.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이다. 무엇보다도 광대한 갈대밭과 멀리 보이는 바다, 뒷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순천시... 마음이 점점 들떠진다. 멋진 곳에, 아름다운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어쩔 수 없이 우산을 받쳐쓰고 간다. 조그만 개울을 건너자 이젠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좀 더 빨리 갈려고 힘든 길을 택해 오르기 시작한다. 어제도 산이더니, 오늘도 또 산이다... 비록 조그만 산이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산을 좋아하는 내가 어찌 산을 마다하겠는가... 숲 속을 한참 오르더니, 이젠 약간의 내리막이 이어진다. 그러나 용산전망대까지는 아직 더 가야하는 것 같다. 붐비는 사람을 사이로 부지런히 용산전망대를 찾아가고... 중간중간 드넓은 갈대숲과 그 유명한 S자 수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전망이 넓게 트여서 바라보는 마음마저 시원해진다. 그래서 사진 작가들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인가 보다. 드디어 용산전망대에 도착... 순천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갈대밭과 S자 수로, 멀리 바다와 섬들이 한폭의 그림이다. 이런 풍경들을 사진에, 그림에 다 담을 수 있다면, 멋진 사진이, 그림이 나올 것 같다. 하긴 바라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또 한번 행복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 같다. 좀 더 느긋이 앉아서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해 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나중에 또 한 번 찾아온다면 그 때는 해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지... 그런 행복한 상상 속에서 산을 내려오고... 그 사이 소낙비는 그쳤다. 비 온 뒤의 시원한 바람...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곳에 와 있는 느낌이다... 순천만을 빠져 나오기 전에 쉼터에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지친 몸을 쉰다... 야외 테라스 밑에서 먹는 팥빙수... 속까지 시원하다.

 

 순천만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순천으로 들어가는 67번 버스를 탄다.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