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자는 여관 앞 작은 공원에 새벽 2시쯤인가
한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제대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산에 가는 날인데...
새벽 여섯시에 겨우 일어났다가
피곤해서 아홉시까지 깜박하고 잠이 든다.
9시에 겨우 일어나 씻고 모텔을 빠져나온다.
가까운 식당에서 제첩국으로 아침을 먹고
신평 버스터미널에서 12번 부산 롯데백화점 동래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원사 입구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버스정류장에서 내원사까지는 거리가 엄청 멀어
택시를 타고 올라가야하는데,
아침부터 일이 꼬일려고 그랬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편의점에 들어가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편의점에서도 택시전화번호를 몰라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온다.
택시는 안 오고...
어쩔 수 없이 내원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 먹는다.
부지런히 걸어감에도 아침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오른편으로 긴긴 내원사 계곡을 바라보면서 길을 걷는다.
아침이라 공기도 신선하고 맑고 상쾌하다.
이 길은 예전에 내가 많이 걸어다녔던 길이다.
부산에서 예의 12번 버스를 타고 내원사 입구에서 내려
내원사까지 걸어다녔던 길이다.
그 때에는 도로 옆에 산책로가 없었는데,
지금은 도로 옆에 산책로가 잘 마련되어 있다.
한여름에는 계곡에 피서 나온 사람들이 엄청 많아
부산, 경남사람들은 이 계곡으로 피서를 오나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계곡은 길고도 길다.
그 만큼 내원사 들어가는 길도 길고...
부지런히 걸어감에도 내원사까지는 멀다.
일주문을 지나고 700년된 소나무를 지나고
내원사를 향해 길을 걷는다.
계곡의 폭은 좁아지고...
어느 사이에 내원사 계곡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바위와 그런 바위를 피해 흐르는 물소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듣기 좋다.
한참을 걷고 걸어 내원사 아래 정호식당에 들어가
사이다를 마신다.
지금 시간 11시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천성산 화엄벌을 지나 천성사 1봉, 2봉을 갈려면
최소한 7시간은 걸린다고 하는데...
아쉽지만 천성산 밑에서 산에 오르는 일을 포기한다.
식당을 나와 내원사에 들어선다.
계곡 앞의 무성한 대나무숲을 바라보면서
다리를 건너 내원사로 들어간다.
작은 절임에도 건물들이 크고 단정하다.
높은 산봉우리에 푹 쌓여 있어서 그런지
포근하다는 느낌도 든다.
예전의 내원사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도 들고...
내원사를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내원사를 나온다.
내원사 앞 숲에서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스님 두분이 도토리를 줍고 계신다.
땅에서 도토리를 주우시면서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깔깔 웃으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런 모습들이 참 보기 좋다.
평화스러운 산 속 사찰의 평화스러운 풍경들
내가 옆에서 계속 쳐다보니,
여스님들이 땅에서 주운 도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 앞에 보여준다.
작은 도토리보다 작은 손과 환한 웃음의 스님의 얼굴이 더 보기 좋다.
다시 부지런히 걸어 내원사 계곡길을 내려선다.
길을 내려오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임창정님의 "소주 한잔"이라는 노래를 혼자서 읊조리기 시작한다.
부르고 또 부르고... 또 부르고...
왜 임창정님의 "소주 한잔"이야 하는 생각과 함께...
"술이 한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좋았던 시절들
이제 모두 한숨만 되네요
떠나는 그대 얼굴이
혹시 울지나 않을까
나 먼저 돌아셨죠
그 때부터 그리워요
사람이 변하는 걸요
다시 전보다 그댈 원해요
이렇게 취할 때면 꺼져버린
전화를 붙잡고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
......"
아마도 산에 오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내원사를 내려오면서 문득 술을 마시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주 한잔"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내려오다가
일주문 옆의 식당에 들어가 메기 매운탕을 점심으로 먹는다.
오래간만에 먹는 메기 매운탕
맛있게 먹는다.
먹고 나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식당 앞에서 마시고...
다시 내원사 입구 버스정류장을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하고...
내원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원사까지 참 먼 거리이다.
내원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예의 12번 부산롯데백화점 동래점행 시내버스를 타고 양산시내로 간다.
흥룡사 표지판을 지나고
커다란 산 밑에는 경주의 고분을 생각나게하는 고분들도 멀리 보인다.
남부시장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양산 버스터미널로 간다.
터미널 뒷편에 둥그런 산이 보여 택시기사님께 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까
오봉산이라고 말씀을 해 주신다.
나는 원동의 오봉산은 바위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양산에서 바라보는 오봉산은 둥그런 육산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영산대학으로 가는 시내버스의 출발 시간을 알아보니,
4시이다.
지금 두시
두시간 동안 시간이 남아
터미널 앞의 상가지대를 돌아다니고
돌아다니다가 Twosome Place 카페가 보여
안으로 들어가 2층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신다.
어제와 오늘 찍은 사진들도 다시 찾아보고
집에서 가지고 온 "내일은 끊을게"라는 아이들의 시를 담은 책도 읽는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규학교가 아닌 학교에서
시테라피의 일환으로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주고,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시들
그 시들에는 아이들의 꿈이, 고민들이,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들도 나처럼 같은 꿈과 걱정으로 뒤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아이의 시가 특히 내 마음에 아프게 남는다.
나 가 죽 어 라
소 흥업 푸른학교
오늘도 학교 성적표를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엄마한테 보여주자
엄마는 "나가 죽어라"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왜 나가 죽어. 싫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 말 못하고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 신고
집 밖으로 나섰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성적표는... 무시무시한 악마이다.
집에 들어가 엄마한테 성적표를 보여주면
싫은 소리를 듣고, 혼나고...
그러면서 학교에 가기 싫어지고,
공부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지고...
그런 일들의 악순환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지만,
피할 수도 없고...
이 시를 쓴 아이의 마음에 내 마음이 포개어진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던가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차마 집에는 못 들어가고
밤 늦게까지 춘천의 명동거리를 돌아다녔던 나의 과거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오고
버스터미널에서 영산대학으로 가는 57번 시내버스를 탄다.
버스는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남부시장 버스정류장을 지나
부산 방향으로 내려가고...
오늘은 양산시의 북쪽(신평버스터미널)에서
남쪽(법기수원지)으로의 여정이다.
창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법기수원지 방향으로 길을 걷는다.
긴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고...
날은 금방 어두울텐데...
어둡기 전에 법기수원지에 도착해야하는데...
그런 걱정을 안은 채 부지런히 길을 걷는다.
긴 오르막길을 헐떡이며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저 밑에서 법기수원지로 가는 마을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싸, 이렇게 기쁠수가...
건너편 마을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냉큼 동면11번 마을버스에 오른다.
마을버스는 언덕을 넘어 한참을 달린 후에
법기수원지 앞 마을버스 종점에 선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부지런히 법기수원지 안으로 들어간다.
이번에 2박3일 양산, 부산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일 기대가 되었던 곳이 법기수원지의 숲이다.
80년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여 가꾼 숲
커다란 히말리야시다가, 편백나무숲이 있는 숲
어느 블로그에서는 사람의 키가 난장이로 보이는 숲이라고 씌여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나도 모르게 탄성부터 터져나온다.
와...
한국에 이런 숲이 있었다니...
쭉쭉 자라난 나무들
키가 하도 높아 한참을 고개를 젖혀야만 나무 끝을 볼 수 있다.
보자마자 이곳에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눈에 내 마음의 숲으로 정한다.
나도 나무를, 숲을 좋아하여 좋다는 곳을 많이 찾아다녔는데,
이런 숲은 처음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숲이 있다는 사실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면서 길을 걷고...
계단길을 따라 저수지에도 올라간다.
산으로 둘러쌓인 저수지
나무숲 못지 않게 저수지 풍경도 일품이다.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저수지
뒤로 돌아보면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주고...
이 곳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아니, 앞으로 부산에 오면 이 곳은 꼭 들러봐야지 맘을 먹는다.
저수지를 내려오고 다시 천천히 숲을 한바퀴 돌아다닌다.
숲을 돌아다니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어느 정도 했으니까
앞으로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이런 멋진 숲을 가꾸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대의 사람들은 그 숲에 들어갈 수도, 볼 수도 없겠지만,
후세의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멋진 숲을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선물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세대가 잘 사는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숲을 물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다면...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을 이루었다는 자부심 못지 않게
금수강산 대한민국도 얼마나 멋진 일일지...
멋진 숲 아래에서 여러 생각들이 겹쳐온다.
탄성을 뒤로한 채 법기수원지를 나오고...
마을버스 종점에서 동면1번 부산 침례병원행 마을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떠난다.
법기수원지는 주소상으로는 양산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으로는, 교통상으로는 부산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부산에 오면 법기수원지에 찾아가봐야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 속이 즐거워진다.
나를 태운 버스는 양산을 지나 노포동 버스터미널을 지나고...
남산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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