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박3일 강진여행... 둘쨋날(3.2)

자작나무1 2019. 3. 9. 21:53

   뿌리의 길   - 정호승-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 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 할
  길이 되어 늙는다

 

 어젯밤에는 jtbc 뉴스룸을 보고 일찍 잠을 잤다.

중간에 한번 깨어나기는 했지만, 어제 피곤하였나 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다.

일어나서 OCn에서 영화 "암살"을 본다.

전지현님, 하정우님, 이정재님, 오달수님, 조진웅님, 이경영님 출연

영화 "도둑들"처럼 초호화 캐스팅

조직을 꾸며 경성에 있는 친일파를 암살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직 중에 이중간첩, 밀정이 생겨 일이 꼬인다.

그 당시, 일제 치하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내부에 적이 생겨 더더욱 운동이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어제 3.1운동 100주년이라고 해서

전국적으로 큰 행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행사들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하였던 많은 사람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후세의 사람들은

역사자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계열의 사람들이라고...

분단 이후에 북에 살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희생을 가볍게 보지 않았나 하는 반성

또 목숨 걸고 지켜온 오늘날의 한국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동서로, 좌우로, 여야로 쪼개진 한국

또 있다.

젊은 사람들의 헬조선

3.1 운동 100주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애국지사분들에게

현재의 우리는 죄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고 했던 나라는...

이런 쪼개지고 찢어진 조국이 아니었을텐데...

 

 영화를 보고 씻고 모텔을 일찍 빠져나온다.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 일찍 나와 하나라도 더 볼 욕심으로...

터미널 주변의 식당에서 예의 백반을 먹고

강진버스여객터미널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강진의 농어촌버스는 요금이 무조건 천원이다.

버스공영제의 전단계

망호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다산초당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다산초당은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많은지

아침부터 입구에 사람들이 많으시다.

대형버스 주차장에도 차들이 많고...

하긴 남도답사 일번지는 강진과 해남이고,

강진 답사 일번지는 다산초당이다.

다산의 고장, 강진

입구의 오래전 집을 내 사진기에 담고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길 초입의 카페, 다산명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산길, 역사의 길, 뿌리의 길을 오른다.

대나무와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싼 나무의 길

나무의 뿌리들이 길 위에 어지럽게 널린 역사의 길

길 위의 뿌리들을 보면서

문득 나를 낯추어 세상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그러고 보면,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그런 분이셨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되신 분

중간에는 다산의 18제자 중의 한사람인 김종진님의 묘가 있다.

묘 앞의 귀여운 동자석

저변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모르고 지나쳤다,

이번에는 동자석 앞에 가까이 가서 자세를 낮추고 동자석을 내 사진기에 담는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산초당을 오른다.

사람들로 복잡한 다산초당

 

 

 

 

 

 

 

 

 

 초당 위의 정석이라는 글씨를 내 사진기에 담고,

초당에 걸린 현판도 내 사진기에 담는다.

추사와 다산의 글씨

다산 선생님은 이곳에서 10년의 유배생활을 하시고,

이곳에서 제자들과 많은 책들을 쓰셨다.

제자들의 조직적인 도움으로 

많은 책들을 쓰실 수 있었다고 하신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

세상은 선생님을 버리셨다.

그런데 다산 선생님은 세상을 버리시지 않으셨다.

세상에 대한 사랑

민초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

다산 선생님은 유배생활 동안 책을 읽고,

책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셨다.

求道者

 

 다산초당을 지나 백련사로 가는 길을 오른다.

오래전에 갔을 때에는 경사가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는데,

이번에 걸어보니, 그렇지 않다.

오르고 내리는 길

주변의 동백, 대나무,

지난번 광주공원에서 보았던 가시나무와 서어나무도 보인다.

중간에는 천일각 대신 해월루라는 누각이 나온다.

누각에 올라가 아래를 쳐다보니, 바다가 뿌옇게 보인다.

가우도도, 가우도를 건너는 다리도 보이지 않고...

어제 지나갔던 마량으로 가는 도로도 희미하게 보인다.

해월루를 내려와 내림길을 거쳐 백련사로 간다.

 

 

 

 

 

 

 

 입구의 동백나무숲과 녹차밭

견고한 석축 위의 백련사

절 마당의 홍매

붉은 매화꽃이 피어있다.

옆 사람에게 부탁해 독사진을 찍는다.

독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내 동생에게 보내고...

넓은 마당에 대웅전과 건물들...

마당에 흔한 석탑마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키 큰 나무들

오래된 배롱나무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주변에 오래된 나무들

절 뒤로는 울울창창한 동백나무숲

남도의 절

절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도 동백나무숲이다.

 

 

 

 

 

 

 

 주차장에서는 말을 타고 돌아다니시는 분이 두분 계신다.

멋진 모습에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니까

좋다고 하셔서 내 사진기에 그 분들을 담는다.

말을 타신 분이 지금이 동백 절정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난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하는 줄 알았다.

조그만 동백꽃

그런 동백꽃을 보면서 지난번에 보았던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들이 떠올랐다.

내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동백꽃

주차장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내려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택시를 콜한다.

콜한 택시를 타고 김영랑 생가 앞으로 온다.

택시 요금이 만원이 넘게 나왔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군지역은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교통편이 안 좋아서...

택시 기사님이 알려주신 한식뷔페집에서 점심을 먹고...

김영랑 생가 앞의 카페, Coffee Brake O2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벽면에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곰인형들이 앉아있는 카페

카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신다.

카페를 나와 그 옆의 영랑생가로 간다.

 

 

 

 

 

 

 

 초가집

마당에는 모란이 심어져 있다.

초가집을 내 사진기에 담고...

생가 위의 세계모란공원으로 간다.

 

 

 

 

 

 모란공원 앞의 온실, 사계절 모란원

온실 안이라 온실에는 모란꽃들이 피어있다.

강진군에서 사계절 모란꽃을 피우는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모란을 좋아한다.

꽃의 여왕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모란을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모란인 줄 알았는데, 작약인 경우도 많고...

모란공원을 나와 그 아래의 시문학파 기념관으로 간다.

 

 

 

 시문학파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 이하윤, 정인보

세상이 아무리 사나와도 서정시를 써야하는 이유

기념관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생각들이 제일 먼저 들었다.

삭막한 일제치하에서도 서정시를 써야했던 시인들

맑고 고운 시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우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기념관을 나와 강진버스여객터미널로 간다.

터미널에서 병영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황곡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병영으로 간다.

 

 

 

 

 

 

 

 멀리 월출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둥그렇게 쌓여있다.

그 안의 넓은 들판

나는 병영이라고 해서 바닷가에 있는 줄 알았다.

전라 병영

그런데 바닷가가 아니라 산중에 있다.

넓은 논에서 나온 쌀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병영을 만들어 놓았나 보다.

생각해 보니, 해미 읍성도, 동래 읍성도 바닷가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 외벽 주변은 발굴 중이고...

천막이 쳐진 성 외벽을 돌아 성 안으로 들어가고...

성에 올라가 성을 한바퀴 빙돈다.

내부는 텅비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썰렁한 이미지

중간중간 키 큰 나무들이 있고...

그래도 병영이어서 그런지 성벽은 무척이나 튼튼해 보인다.

성을 한바퀴 돌고 건너편의 하멜 기념관으로 간다.

 

 

 

 

 

입구의 하멜 동상과 풍차

기념관 내부를 둘러본다.

제주에 표착. 한양으로 이송, 다시 강진 병영으로...

하멜의 일대기가 그림과 글로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삐딱한 나는 하멜보다는 박연(벨테브레)이라는 사람에 더 관심이 갔다.

재작년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하멜 표류기

그 표류기에서 처음 박연을 알게 되었다.

하멜보다 먼저 조선에 표착한 박연

조선 조정의 충실한 신하였던 박연

하멜이 처음 한양에 왔을 때 통역을 맡았던 네덜란드인

효종의 요청에 훈련도감에서 서양포, 홍이포를 만들었던

파란 눈의 조선 신하

그럼에도 그를 그리는 곳은 없다.

하멜은 제주, 여수, 강진 여러 곳에 있는데...

하멜이 유럽에 조선을 알리는 책을 썼다고 하는데,

제국주의 유럽에 조선을 알리는 것이 그렇게 훌룡한 일이었을까 그런 의문도 든다.

단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던 박연은 신하로서 잊혀져가고 있는데...

기념관을 나와 그 옆의 하멜공예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다시 병영 버스정류장에서 강진으로 가는 농어촌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다산 정약용 선생님, 김영랑 시인, 하멜과 박연을 기리는

그런 여행길이었다.

다산과 영랑의 강진, 강진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