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찾아서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자작나무1 2012. 8. 4. 09:54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내가 이집에서 태어날때 할머니가 꿈을 꾸었다네.

누런 털이 빛나는 암소가 막 무릎을 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네.

소가 힘을 쓰며 막 일어서려는 참에 태어난 아이니 얼마나 기운이 넘치겠느냐며 이 아이 때문에

웃을 일이 많을 것이니 잘 거두라 했다네.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세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