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 피 천득
비 오는 오월 어느날 비원에 갔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주말도 아니어서 사람이 없었다. 비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며 산속 같은 데가 있다.
빗방울이 얌전히 떨어지는 반도지 위에 작고 둥근 무늬가 술새없이 퍼지고 있었다. 그 푸른 물위에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보는 거와 같은 꽃과 연잎이 평화롭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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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월이면 꾀꼬리소리를 들으러 비원에 가겠다.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거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 뿐이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분수가 있는 광장, 비둘기들, 무슨 아베뉴라고 고운 이름이 붙은 길 꽃에 파묻힌 집들, 그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 다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나의 소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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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우산을 받고 비원에 가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도 가겠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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