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찾아서

오월에 드리는 수필 한편...

자작나무1 2011. 5. 13. 10:12

 

오월                피 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