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듣고...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동안 아파트 공사현장에 쫓아다녔습니다.
특별한 힘도, 기술도 없었던 저는
주로 잔심부름이나
백관 파이프를 미싱기에 돌려 나사산을 내고,
실리콘 테이프를 감아,
간단한 조립을 하여서
필요한 곳에 올려다놓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때 같이 일하는 어린 나이의 동생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춘천으로 와서 현장을 떠돌아다니는 나 어린 일꾼.
저와는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현장일이 끝나면
입구의 함바집에 들어가
계란 후라이 몇개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 동생은 술도 엄청 잘 마셨고...
뼈가 녹아내릴 정도로 술을 마신다고
스스로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라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오늘 아침 문득 이 노래와 함께
담배연기 자욱한 함바집에서
그 동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 부르던 장면이 떠올라졌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동생이 왜 그렇게 절규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는지,
왜 술에 취하면 꼭 이노래를 불렀는지...
시간이 지나고,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힘든 현실에서
앞으로의 일들은 더더욱 막막해지는 현실.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나 그런 걱정.
무엇보다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막노동에
술을 퍼마시는 그의 하루하루가
어린 나이에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음에 그 동생을 만나게 되면,
술 한잔 같이 마시면서
따뜻한 말이라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당시 제가 철이 없어서 몰랐던 그 동생의 힘든 삶과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힘들고 괴로워도 넌 무슨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놈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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