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카루소"를 듣고...

자작나무1 2013. 1. 26. 15:29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카루소"를 듣고...

 

 저에게는 멀쩡한 이름이 따로 있는데,

카바레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제 얼굴 생김새가 생기다 말았다고

곤계란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아침 11시에 업소에 나와

홀을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빈 술병들을 빈 상자에 담아 창고로 옮겨다놓고,

테이블 위에 손님들이 먹다남은 안주들을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닥을 쓸고 물걸레질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반듯이 정리하고,

입구의 유리창을 신문지로 닦고...

 

 청소가 다 끝나면

손님들이 남기고 간

술과 안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술기운이 오르면

빈 무대에 올라가

텅빈 객석을 바라보면서

파바로티가 부른 카루소를 불렀습니다.

 

 저의 꿈은

성악가가 되는 것도

유명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꿈은

아니 저의 바람은

집에 계시는

나이드신 부모님들이

갑자기 아프셔서 큰 목돈이 드는 것을 피하는 것이었고,

 

 아무도 없는 카바레에서 홀로 청소하는 게 아니라,

웨이터 보조가 되어 영업시간에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웨이터 보조에서

웨이터로 승진하고,

웨이터장이 되고,

실장이 되는 꿈.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맥주 한컵

한번에 다 마시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파바로티처럼

배에 힘을 주고,

배를 내밀고,

다시금

카루소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단순한 성악곡이 아니라,

저의 현실적인 바람을 담은

그런 노래이었습니다.

아니, 노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주문이었습니다.

 

 엔리코 카루소도 아닌,

루치오 달라도 아닌,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아닌,

곤계란 웨이터가 되기 위한

마법의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