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산적두목(다섯)
귀양살이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8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천주쟁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던 마을사람들도
자주 얼굴을 대하면서 이웃사촌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가끔씩 고구마나 감자도 갖다주고,
어린 아이들의 공부를 부탁하기도 했다.
적적한 귀양살이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로 가득찼다.
해질녘에는 가까운 마량포구에 나가
서녘으로 넘어가는 해넘이를 바라보았다.
적막강산.
세상은 하루에 한번 멋진 장관을 펼쳐 보여주는데,
조선의 앞날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있다.
대원군의 개혁정책은
양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고...
농민들을 괴롭혔던 삼정이 바뀌었슴에도
농민들의 괴로움은 나아지지 않았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붙잡히고, 바로 죽임을 당하자,
많은 농민들은 대원군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다.
산적두목으로부터의 연락은 오래전에 끊기었다.
나름대로 수소문을 해 본 결과
산을 내려와 전주천변에 싸전을 차렸다는 소식과
일부의 농민들을 운장산 깊은 계곡 안쪽에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선비와 산적두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비와 산적두목(일곱) (0) | 2013.10.27 |
---|---|
선비와 산적두목(여섯) (0) | 2013.10.23 |
선비와 산적두목(넷) (0) | 2013.10.20 |
선비와 산적두목(셋) (0) | 2013.10.17 |
선비와 산적두목(둘) (0) | 2013.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