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산적두목(여섯)
동네 사람들은 바쁜 봄농사일을 마치고
단오제 행사로
마을 전체가 분주하다.
고목에 매달은 그네줄을 바꾸고,
씨름장의 모래를 새로 깔고,
그날 제에 올릴 돼지를 잡는다고
집집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하러 다닌다.
마을의 노인들은
귀양중인 선비에게
단오제에 올릴 축문을 써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편,
선비는 지나가는 보부상을 통해
편지 한통을 전해받는다.
편지를 받는 순간,
산적두목으로부터 온 편지라는 직감이 든다.
편지에는
산에서 내려와 전주천변에 싸전을 차렸다는 것과
쌀의 일부를 굶주린 농민들에게 나눠준다는 것과
군에서 제대한 군인들을 통해
일부의 농민들이
운장산 깊은 계곡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날밤
선비는 밤늦게 잠자리에 든다.
잠은 쉬이 찾아오지않고...
산적두목이 보낸 편지 말미의 글이
다시금 떠올려진다.
사방이 농토인 이 고을에서
가난한 농민들이 먹을 곡식이 없어서 죽거나 앓거나,
정든 고향을 버리고 야밤에 만주나 간도로 도주하는 현실을
자신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글귀가 떠올려진다.
선비 자신도 믿고싶지않은 현실이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 부인할 수만은 없다.
산적두목이 자신을 찾아와
그것에 대해 물어본다면
자신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그저 답답한 생각만 든다.
평생을 책만 읽은 자의 한계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런 사실에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않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끝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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