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반나절 고양시 여행기... 호수와 꽃과 산과 옛초가로 떠나는 여행

자작나무1 2014. 5. 20. 19:09

 아침 일찍 일어난다.

어제 저녁 때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일 아침에는 일찍 고양시 호수공원으로 꽃구경을 가야지 맘을 먹었었다.

비록 꽃박람회는 끝났어도 꽃과 꽃전시물은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러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 컴퓨터를 하고...

씻고, 밥 먹고 집을 나온다.

포스빌 앞을 지나가는데 앞울타리에 붉은 줄장미가 한창이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가고,

3호선으로 갈아타고 정발산역으로 간다.

이른 아침시간이라 전철에는 승객들이 적다.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 읽는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저번에 읽었던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의 2편이다.

책을 읽는 사이에 나를 태운 지하철은 정발산역에 도착하고...

지하철을 내려 정발산역을 빠져 나온다.

아침공기가 신선하다.

한산한 거리를 걸어간다.

중간에 파라솔이 이쁜 카페가 보여

안으로 들어가 냉커피를 사서

카페 밖으로 나와 파라솔에 앉아 마신다.

다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절친인 김제동님과 윤도현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글을 재미있게 읽는데 어느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멈춘다.

 

 "그러고 보니 박노해 시인이 그랬잖아.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밥 먹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 안에서 잠들고, 그게 혁명이라고"

 

 내가 혁명가도 아니면서 혁명을 꿈꾸는 어리석은 사람도 아닌데...

왜 이 구절에서 마음이 덜컥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일상의 혁명을 이루지 못한 죄책감에

이 구절에서 딱 멈추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에게 독서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고, 비난이다.

일상의 혁명도 이루지 못한 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나 자신에 대한 힐난.

 

 머리 아픈 생각들은 집어치우고 카페를 빠져 나온다.

멀리 푸르디 푸른 메타쉐콰이어가 나를 반겨 주는 것 같다.

 

 

 

 

 커다란 육교를 넘어 호수공원에 이르고...

나무 밑 화단에 꽃들이 예쁘게 심어져 있다.

호숫가로 나가니 박람회 때 전시되었던 전시물들이 그대로 있고,

둥근 공 위에서 조심스럽게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코끼리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호수 앞에 선다.

 

 

 

 

 

 넓은 호수

분수가 솟구쳐 오르고...

그런 호수를 바라보면서

예전에 춘천에 살 때,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답답할 때면

무작정 걸어서 공지천이나 어린이회관 앞에서 바라보았던 소양강이 떠올려진다.

어리석고 철없었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나의 모습도 그려지고...

모든 것들이 그리움 속에 파묻히는 시간들...

나의 젊은 시절과 공지천, 소양강...

감상에서 벗어나 공원 안의 꽃과 꽃전시물을 사진기에 담기 위하여 부지런히 움직이고...

꽃 중에는 목마가렛과 디기탈리스에 자꾸 시선이 가고...

고양시라고 고양이 조형물들에도 자꾸 마음이 간다.

예전에는 강아지는 좋아하고, 고양이는 별로였는데,

이 카페, 저 카페를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고양이 인형 사진들을 많이 찍다보니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부산에 계시는 사진공감님의 고양이 사진들을 보면서

고양이에게 관심과 애정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한쪽에는 찔레꽃이 활짝 피어있다.

찔레꽃을 보면서

이맘 때 형과 함께 산에 갔다면

산의 초입에서 찔레순을 잘라 씹으면서 산으로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찔레꽃 건너에는 울타리 위에 분홍색 줄장미가 한창이다.

유월은 줄장미의 계절이다.

호수공원을 나와 건너편의 정발산을 가기 위해

넓다란 광장 옆을 지난다.

길 양옆으로 쭉 심어진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아직도 오월이어서 그런가,

푸른 잎이 보기 좋다.

엷디 엷은 푸른 빛

지금쯤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에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장 중앙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분양소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웬지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피하는 내가 느껴진다.

옳은 태도는 아닐텐데...

그럼에도 자꾸 그쪽을 피하게 된다.

참혹한 죽음 앞에 저절로 회피하는 나의 용기없음, 겁쟁이...

큰 육교를 건너 정발산으로 숨는다.

그래,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이다.

산 입구에는 아카시아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아카시아향이 바람을 타고 나에게 은은하게 전해진다.

나무 위에서는 작은 새들의 지점귐이 쉼 없이 이어지고...

가끔 종달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넓은 길, 그늘이 적당히 우거진 길

천천히 오른다.

오르막이 멈춘 곳에는 체육 시설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 계신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정상이다.

정상에는 평심루라는 정자가 있다.

 

 

 

 

 전에 아는 형과 함께 정발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 날은 저녁 무렵이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건너편의 북한산이 코 앞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정발산은 북한산의 숨은 전망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지 않아 멋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누각에서 내려다보는 소나무숲

신록에서 녹음으로 넘어가는 소나무숲의 색이 곱다.

누각에 앉아 계시는 사람들에게 밤가시 초가를 물어보고...

누각을 내려와 반대편으로 산길을 걸어간다.

산길 옆으로는 넓직한 시멘트길이 보이고,

시멘트길로 내려와 천천히 산을 내려간다.

작은 산인데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다만 엉망으로 변한 퍼블릭 골프장은 눈에 거슬린다.

내려오면서 보니, 밤나무도 많고, 떡갈나무와 잣나무도 간간이 보인다.

건너편으로는 높은 시설물을 이고 있는 고봉산이 보이고...

언젠가는 저 고봉산에도 올라가야 하는데...

내려오다 보니, 안쪽으로 생태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조그만 연못에는 갖가지 수생식물들이 심어져 있고,

간혹 노란 창포가 눈에 띄인다.

연못보다는 연못을 둘러싼 푸른 나무들에게 마음이 간다.

 

 

 

 

 생태연못을 나와 아래로 내려오니, 도로가 보이고

도로를 건너 주택가로 들어선다.

나는 일산은 아파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쁜 주택들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여느 카페보다 이쁜 집들

마당도 예쁘게 잘 꾸며 놓았다.

생각 같아서는 집을 하나씩 사진기에 담고 싶었는데,

그것은 사생활 침해일 수도 있고...

아닌 것 같아 그만둔다.

예쁜 집들로 둘러싼 골목을 지나가다보니

다른 골목 안쪽으로 기와를 얹은 안내문이 보이고...

안내문 앞에 서니, 일산 밤가시초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 동네는 원래 밤나무가 많았던 동네이고,

밤가시초가도 밤나무로 만든 집이라는 설명

계단을 오르고,

다시 무성한 나뭇잎 아래의 계단을 올라

초가 앞에 선다.

이 초가는 아주 예전에 김훈님의 "자전거여행2"에서 알게 되었다.

신도시에 이런 초가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해서

더더욱 놀랍고 신기해했던 기억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에 오게 되어 기쁘다.

나무 울타리, 초가 지붕

처음 초가를 보면서

이 초가를 내 마음 속의 초가 한채로 정한다.

 

 

 

 

 무엇보다도 이리 휘고 저리 휜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이용해 지은 집이라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초가 안으로 들어서고...

부엌에서 어머니가 이제 왔냐 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고향 같은, 어머니같은 초가

그런 느낌에 웬지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안에서 쳐다본 하늘도 예쁘다.

이엉으로 둘러싼 하늘

조그만 하늘로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지나가고, 비가 내리겠지...

그런 생각들에 마음 한쪽이 아득해지기도 하고...

한참을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면서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그런 생각에도 빠진다.

내 마음 속의 초가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 앞에 선다.

오늘은 처음부터 반나절만 돌아다니고 집으로 가야지 맘을 먹었었다.

집에 들어가 목욕도 하고, 낮잠도 자야지 하는 욕심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더 돌아다니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어서 영등포로 나가는 870번 영등포행 좌석버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