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박4일 대구, 합천, 함양여행기... 가야산 산행기

자작나무1 2014. 5. 11. 10:24

 아침에 일어나 모텔을 빠져 나온다.

골목길을 나와 큰 도로를 건너 서부버스정류장에 이른다.

버스정류장 뒤로 앞산의 모습이 싱그럽다.

5월 연휴의 둘쨋날

이미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꽉차있다.

매표소에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표를 끊는다.

해인사...

내가 참 많이도 돌아다녔지만,

해인사와 가야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밖에 나가 담배 두대를 피고

버스승강장 앞 의자에 앉아 있는다.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제비 두마리가 시끄럽게 재잘거리면서 날아다닌다.

아니, 대구가 시골도 아닌데, 제비가 있다니...

주위에 제비집도 있을 것 같아 찾아보았지만, 제비집은 찾을 수가 없다.

시끄러운 제비들을 보면서 지난번 아산 외암민속마을에서 보았던 제비들이 생각난다.

고마운 제비

오늘도 두 마리의 제비 덕분에 둘쨋날 여행이 잘 풀릴 것 같다.

 

 

 버스에 올라가 한참을 기다린 후에 버스는 달리기 시작한다.

대구 도심을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차창 밖으로 아팝나무꽃과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다.

하얀 꽃들이 싱그러운 오월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아카시아 꽃

내가 중학교 때 어느날 수업을 빼먹고 학교 뒷산으로 놀러간 적이 있다.

점심 시간이 지나가고...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수업 중에는 다시 교실로 들어갈 수 없다.

배는 점점 고파지고...

어쩔 수 없이 산에 무더기로 피어난 아카시아꽃을 무한정 따먹으면서

배고품을 참아야했던 기억들.

달콤했던 아카시아꽃

문제가 많았던 중학 시절의 나의 모습

 

 버스는 고령을 지나고 합천으로 들어간다.

넓은 밭에는 오월의 푸른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마을 입구에는 연륜이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들과 정자들이 보인다.

이런 길은 배낭 하나 걸쳐메고 천천히 걸어가도 좋을 것 같다.

이름도 예쁜 야로와 가야를 지나 해인사 버스종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아침으로 김치찌개를 먹는다.

그저 그랬던 김치찌개

먹고나서 값을 치르려고 하니 9천원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가격을 물어보고...

역시 9천원이라고...

이 동네는 김치찌개가 8천원이고, 밥을 추가해서 9천원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아니...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김치찌개가 8천원이라니...

황당했지만, 아침부터 외지에서 싸울 일도 아닌 것 같아

값을 치르고 나온다.

원래 오늘은 해인사와 소리길을 다니고,

내일은 아침 일찍 가야산에 오를 계획이었는데...

김치찌개 하나에 8천원이나 하는 곳에서 하루 더 묵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급계획을 변경한다.

도로를 내려가고 해인사로 가는 길에 오른다.

연휴라 그런지 해인사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사찰이다보니, 오시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산 위로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석화성이 보인다.

성보박물관을 지나고 상가지대를 거쳐 해인사 가는 길에 서고...

한쪽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여름에 와도 좋을 것 같다.

인도를 따라 오르다가 산그늘이라는 조그만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냉커피를 마신다.

작은 카페 안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조그만 창문으로 절에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신다.

전에 통영의 동피랑 마을에 갔을 때

구판장이라는 카페에서 작은 창문을 통해 지나다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셨던 냉커피도 생각난다.

 

 

 작은 카페를 나와 부지런히 해인사를 향해 걷는다.

주위로 키가 큰 나무들이 주위를 감싸고...

오래된 절인 만큼 나무들도 오래되고 아름답다.

나무숲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안내문 옆에 단정하고 야무진 석탑, 길상탑에 눈길이 가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사람 모형을 지나치고...

많은 사람들로 복잡한 일주문 앞에 이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진찍기도 힘들고...

양편으로 쭉쭉 자란, 하늘 높이 올라간 나무들이 참 보기 좋다.

계단을 통해 여러문을 통과하고

절 마당에는 부처님 오신날을 위해 마련한 연등으로 가득차다.

연등마저도 이쁘게 보인다.

연등 위로 고개를 내민 석탑도 보기 좋고...

ㅁ자 모양으로 세워진 전각들과 오래된 나무들

역시 해인사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계단을 통해 대적광전 앞에 이르고...

대웅전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많은 전각들의 지붕들과 그 너머로 신록에 쌓인 산들이 보인다.

불국사나 송광사는 많은 건물들 때문에 좀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이곳 해인사는 그 곳보다 건물들도 적고

구획 안에 같은 식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정연해 보인다.

대웅전 뒤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에 이른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보기만 한다.

건물 여기저기에 사각으로 만들어진 창문

그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곳

우리 선조님들의 뛰어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자연을 이용해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슬기, 지혜

장경판전을 돌아 학사대 앞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님이 말년을 이곳 해인사에서 머무르셨다고 한다.

가야금을 치고, 그 소리에 반해 학들이 몰려와 춤을 쳤다는 전설이 서린 곳.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에 꽂으면서,

이 지팡이에 새잎이 돋아나면 자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이 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곳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계로서 뛰어넘으셨던 최치원 선생님이 그려진다.

해인사를 나와 부지런히 가야산 정상을 향해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정오가 다 되고 있어서 조금은 조급한 마음으로 길을 오른다.

천천히 오르되 앉아서 쉬지않고 꾸준히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산길 옆으로 시원한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계곡물이 흐르고...

산의 초입에는 벌깨덩굴꽃과 병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오르니,

산에 오신 어르신들이 깔딱고개라고 말씀을 해주신 곳에 다다르고...

깔딱고개 이전에는 길이 편한 편이었는데,

이 고개부터는 길은 거칠어지고 오름길도 급해진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조릿대길이 함께 하는 길

급함이 수그러진 곳에는 나무 아래로 푸른 풀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보는 눈을 편하게 해준다.

안부를 지나 능선에 이르고...

능선길은 돌이 더 많아지고, 경사도 갈수록 급해진다.

가끔 철계단을 만나고,

저편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보인다.

저기가 정상이겠지...

바위 위에 오르니 산 아래가 넓게 펼쳐져 보인다.

 

 

 오늘 오후에 비가 온다고 그래서 그런지 맑은 전망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쉬지않고 올랐는데,

점점 힘이 들어가고 지쳐간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거친 숨을 고른다.

이제까지 마시지 않았던 물을 배낭에서 찾고...

5월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가족끼리 산에 오르는 가족들도 많다.

가끔 외국인들도 보이고...

서서히 바윗길이 나타나고...

힘이 빠진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윗길을 탄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코 앞인데,

그 길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정표도 0.5Km 남았다고 하는데,

그 거리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올해는 산에 거의 다니지 않아서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지치고 낡은 몸을 이끌고 바윗길을 걷는 것 같다.

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바윗길도 까다로와진다.

조금 올라가서 쉬고, 조금 올라가다가 쉬고...

그러면서 0.5Km를 한시간 걸려 정상에 이른다.

가야산 우두봉 1430m

그러나 이곳도 정상이 아니다.

 

 

 건너편에 있는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가 진정한 정상이다.

하여튼 힘들게 올라 마음 뿌듯하다.

비록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360도 산의 능선들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삼각뿔 모양의 비슬산 정상과 천문대가 흐릿하게 보이는 조화봉도 보이고,

그 뒤로 야무지게 보이는 산은 창녕의 화왕산이 아닐까 싶다.

정상석을 찍고...

나와 함께 산길을 오르셨던 가족들의 가족사진도 찍어주고...

정상석 뒷편에는 조그만 우물 우비쟁이 있다.

물이 너무 지저분해서 그런지 신기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우두봉을 내려와 건너편의 칠불봉을 가기 위해 건너편으로 길을 걷는다.

중간에 아주 강한 바람이 나를 몰아치고

금방 가야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칠불봉 1433m에 선다.

우두봉과 칠불봉은 3m 차이가 난다.

 

 

 정상에는 식당에서 함께 일하신다는 사람들이 앉아서 사진을 찍고 계신다. 

정상에 앉아 배낭에 있던 사과 세 개를 먹고...

한참을 푹 쉰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없이 좋았을텐데...

그나마 천미터가 넘는 산을 무리없이 올라와서 다행이다.

예전부터 가야산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높이에 기가 죽어 감히 오르지 못했다.

오늘 오르고나서 생각해 보니, 높이에 비해 수월하게 오른 것 같다.

반대편 백운동에서 시작했으면 많이 고생했을 것 같다.

가야산...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의 역사를 일구었던 가야

연합체의 국가여서 그랬나

나중에는 신라에 병합되고

나라 이름은 가야금과 가야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가야산 정상에서 잊혀진 국가 가야를 떠올린다.

철과 가야금의 나라, 가야

더불어 예전에 읽었던 김훈님의 "현의 노래"라는 소설도 떠올려진다.

 

 또한 세월호 참사도 다시금 떠올려진다.

어른들의 탐욕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이없게 물 속에서 죽은 안타까운 사건

안전한 사회도, 안전한 놀이터도 만들어 주지 못한 채

공부만을 강요했던 못난 어른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준 사건이다.

어느날 나이가사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던 마지막 문구가 또 다시 떠올려진다.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죄인은 죄인이란다...

 그건 이 글을 쓰고있는 이 못난이도 포함하고 있단다...

 

 어느날 저녁 이 문구를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는 두고두고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잊는다면 그건 그 아이들에 대한 배반이다.

 

 산 위에서 산 아래의 일들을 생각하는 어리석움을 뒤로한 채

정상을 내려온다.

바윗길이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아래로 내려온다.

산은 오를 때는 오르느라고 몸이 무거워지고,

산을 내려올 때는 조심하느라고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오고 철계단을 내려오면서

산길을 올랐던 역순서대로 내려온다.

솔직히 어서 산에 내려가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다.

내려갈 길은 아직도 멀었는데....

이런 답답한 인생 같으니라구...

깔딱고개를 내려오고 계곡길에 이르고...

계곡을 건너면서 손과 얼굴을 씻고,

바지에 묻은 흙도 턴다.

계곡물이 얼음짱처럼 차다.

손이 시릴 정도로...

점점 길은 순해지고...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간다.

내려오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사과 하나 더 먹고...

이제 산을 다 내려온다.

다 내려오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쉰다.

용탑선원을 지나고...

해인사 뒷편의 해인카페 다래헌에 들어가 허니 브레드와 냉커피를 시킨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한옥카페 내외부를 사진기에 담고...

이 곳에서 한옥찻집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새로 지은 한옥집, 넓은 마당과 처마 밑의 장독대

찻집 안에는 많은 우리의 옛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다.

 

 

 

 찻집을 나와 부지런히 걸어 버스정류장에 이른다.

매표소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이미 함양으로 가는 버스는 끊겼다고

갈려면 대구로 가야한다고 말씀을 하신다.

어쩔 수 없이 대구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매표소 옆의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좁은 도로 사이로 많은 차들이 오고가고...

저녁에도 해인사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 뒷편으로 우렁차게 쏟아지는 물소리

이 계곡이 홍류동 계곡이라고 했던가

다음에 해인사에 오면 홍류동 계곡길도 걸어보고 싶어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서서히 산그림자가 아래로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