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여행

수덕사 초입의 수덕여관

자작나무1 2012. 6. 10. 10:15

 수덕사 초입에는 수덕여관이 있어요.

고암 이응로 화백의 본부인이 운영시하던 여관이에요.

남편 고암 이응로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그에따라 옥바라지를 하고,

감옥을 나온 후에는 남편은 제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고...

본부인은 이 곳에 계속 남으셔서 여관을 운영하고...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눈물과 한과 아픔들을 이곳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이야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고암 본부인님의 마음처럼 낡고 황폐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 아프고,

한편으로는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예술이, 그 예술이 아무리 훌룡한 것일지라도 옆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예술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그런 아픔이나 예술의 덧없음에 대한 생각보다는

두분 다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이생에 대한 미련이나 아픔을 접어두고 행복하게 함께 하시기를 바랬어요.

 

 

 

 

 

 

 

 고암 이응로님의 암각화

 

 수덕여관은 많은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곳이에요.

그것을 제가 다 이야기를 못해서 다시 유홍준교수님의 글로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수덕사와 인연있는 또 한 여인은 그런 축복이나 영광, 명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쓸쓸하고 조용한 분이다.

수덕사 입구의 수덕여관 주인 아주머니, 지금은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 분이다.

이 분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걸출한 화가라 할 고암 이응로의 본부인이시다.

고암은 작가적 열정이 대단한 화가였다.

이제까지 우리 현대미술사에 고암만큼 다양한 작품세계를 섭렵한 화가도 없고, 고암만큼 방대한 작업량을 보여준 화가도 없으며, 고암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화가도

없다.

그리고 고암만큼 정치적 파란을 겪은 화가도 없다.

 

 1957년, 고암이 자신의 예술을 국제무대에서 펼쳐 볼 의욕으로 독일을 거쳐 빠리로 건너갈 때 그는 이화여대 제자였던 박인경여사와 함게 갔다.

들리기엔 오래전부터 본부인을 버리고 그렇게 살았단다.

그렇게 버림받은 고암의 본부인은 초가집 수덕여관을 지어 운영하면서 오늘 이때까지 조용히 수절하고 계시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이 조금도 얼굴에 비치지 않는다.

1968년 이른바 '동백림공작단사건'으로 고암이 중앙정보부원에게 납치되어 1년여를 옥살이를 할 때, 대전교도소, 전주교도소로 옥바라지 한 분은 이 버림받은 본부인

이었다.

그리고 이내 빠리로 돌아갔다.

 

 이것을 아름다운 얘기라고 해야 할 것인가, 슬픈 얘기라고 할 것인가.

어쩌면 조선여인의 체념어린 순종을 그분이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쓸쓸한 얘기를 만들어낸 고암의 행태는 예술가적 기질이라는 명목으로 면책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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