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정지용님의 시 "향수"

자작나무1 2011. 9. 30. 19:31

향 수                       정 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잎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