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송경동님의 "사소한 물음에 답함" 중에서

자작나무1 2012. 2. 26. 16:40

촛불 연대기

 

 

미선이 효순때

처음 촛불을 들었다 화염병도 죽창도 아닌

연약한 촛불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착하기만한 사람들이 싫었다

 

촛불의 열기를 모아 권력이 된 노무현은

부안 핵폐기장 건설을 위해 2만이 사는 부안에

2만5천의 공권력을 투입했다

 

미제국의 더러운 석유전쟁에

군대파병을 결정했다 부안에서 여의도에서

다시 흔들리는 촛불들을 보아야 했다

 

이듬해엔 WTO각료회담 저지를 위한

한국토쟁단의 일원으로, 한 손엔 핵과

한 손엔 자유무역협정을 들고

제세계 인민의 목을 조르는 무장한 세계화를 막겠다고

태평양 건너 멕시코 깐꾼까지 원정투쟁을 갔다

그곳에서 '다운 다운 WTO'를 외치며 이경해 열사가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전세계 인민의 가슴들이 부르르 떨렸다

어떤 이는 회담이 열리는 컨벤션센터로 돌격했고

나는 커터기로 철책을 끊다 곤봉에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그곳에서도 저녁이면 촛불을 켰다

시시때때로 쏟아붓는 열대성 폭우속에서

촛불 하나를 지키기 위해 두꺼비처럼 몸을 말았다

총구를 들이댄다 해도 꺼트릴 수 없는 증오의 촛불

 

가장 긴 촛불은 평택 대추리 촛불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800일동안 촛불을 켰다

한반도는 동북아 전쟁기지가 아니라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다국적 전쟁기계들에게 내어줄 순 없다고

포클레인에 철거당하는 대추초교를 부여안고 울었다

700명이 지키는 대추초교를 감싸고

1만 5천의 군경이 몰려오던 5월 4일 새벽

처음으로 손에 든 촛불을 놓고 죽봉을 들었다

이것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허공을 향해 휘저었다

그럴때마다 내 영혼도 따라

바람앞의 촛불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대추리에서 쫓겨나오자

한미FTA 떼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FTA는 일터 하나를 뺏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쌀과 영화와 의약품과 방송만 빼앗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삶의 가치를 빼앗는 것이었다

경쟁력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는 말

경쟁력이 없는 대지는 대지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를 뛰었다

싸움이 가물가물해질때 허세욱열사는

자신의 몸을 심지로 내놓았다

그는 우리 모두의 양심을 끝까지 소진케했다

 

그렇게 몇년 나는 지난 시절

화염병과 돌과 쇠파이프를 들던 손에

촛불을 들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서성였다

촛불은 진화하면 화살촉이 되는걸까

들불이 되는 걸까 때로는

백만 촛불로 광화문을 뒤덮어보기도 했지만

광장은 다시 차벽과 공권력의 폭력에 밀리고

나는 다시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그들이 오른 구로역 CC카메라탑 아래서

콜트,콜택 기타 만들던 노동자들이 오른

양화대교 천변 고압 송전탑 아래서

순한 촛불 하나를 들고 있다

 

단 한번도

민중 무력없이 세상이 바뀐 적은 없다고

청원으로 민주주의는 성장하지 않았다고

불붙는 심장의 열기는 차마 꺼내지 못하고

가끔 촛농처럼 뜨거운 눈물 몇방울 떨구며

순한 촛불 하나를

어두운 밤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