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찾아서

김훈님의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자작나무1 2012. 3. 18. 18:33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 다치거나 망가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망가진 사람들의 내면에 끝끝내 망가질 수 없는 부분들은 여전히 온전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뿌리 뽑히고 거절난 삶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고난에 찬 삶을 통해서 말없는 실천에 도달한 그들의 삶은 성자의 삶처럼 보였다.

 

 저무는 가을 논길에 경운기 한 대 지나간다.

늙은 남편이 운전을 하고, 수건을 머리에 쓴 아내는 적재함에 타고 간다.

늙은 부부는 하루종일 같은 밭에서 일해도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 돌아갈때도 누가 먼저 가자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동작을 보면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다.

저문 논길에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부부는 거룩해 보였다.

늙은 부부가 돌아가는 논길에 개발자국 몇개가 찍혀있다.

시멘트가 마르기전에 극성맞은 개들의 발자국이다.

고단하고, 버려지는 삶속에 인간다운 고귀함이 여전히 살아있다.

여름의 여행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