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우리가족 유럽여행... 여덟쨋날 ( 2월 16일)

자작나무1 2024. 4. 21. 08:24

 피렌체 Firenze

 

 피렌체는 BC 1세기 시저가 퇴역 군인들의 거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격자형 계획 도시이다.

13세기에 토스카나 맹주가 된 피렌체는 14~16세기에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탈리아 최강의 도시국가로 번성했다. 아름다운 구릉과

아르노 강을 끼고 있는 예술의 도시, 꽃의 도시 Florence라고 불리는

화려한 피렌체가 번성한 시기는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통치를 받을 

때였다. 이 때 문화, 예술, 정치의 발전이 최고조에 이르러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매혹적인 도시 중 하나

이며, 르네상스의 요람이자,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이고, 역사, 예술,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중세의 모습과 르네상스의 유산인 화려한 건축물과 유명한 명작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피렌체 여행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럽 5개국 -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중에서... 최 철호님, p.534

 

 

 어젯밤에도 여행기를 쓰다가 늦게 잤는데,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난다.

주방에서 믹스 커피를 타서 거실의 탁자에 앉아 어젯밤에 이어 여행기를

이어쓴다. 숙소가 넓어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부잣집, 대갓집

여행기를 이어 쓰다가 커피 한잔 더 타 마시고, 7시가 넘자 가족들이 하나둘

일어나신다.

어제처럼 거실 테이블에서 집밥으로 아침을 먹고,  서로의 짐을 챙겨 이틀 동

안 머물렀던 숙소를 나온다.

BARBATO ROOMS

집 앞 CONPOMINIO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산타 루치아역으로 간다.

오늘은 이동일

기차 출발 시간이 남아 맥도널드에 들어가 테이블에서 열심히 공책에 여행기를

써 나간다. 여행과 여행기

피렌체행 기차(08:17)에 올라타고,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내린다.

역 앞에 전기선에 연결된 버스들이 어지러이 지나다녀서 중국 상해 분위기가

났다.

역 지하로 내려가 짐을 맡길 보관소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니고... 한참을 헤맨 

후에 겨우 보관소를 찾아 짐을 맡기고...

지하 상가에 STARBUCKS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한국에서는 STARBUCKS가 흔한 카페이지만, 유럽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또한 유럽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가 힘든 곳이다. 이들은 대신

작은 작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주로 에스프레소 한잔에 물 한컵. 대신 맥도널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지하 상가를 나와 역 건너편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를 찾아간다.

Chiesa di Santa Maria Novella

교회 앞면이 특이하다. 앞면을 그림으로 색칠한 것 같은 특이함

뒷편의 높다란 종탑도 인상적이고... 성당 앞 광장에서는 조그만 간이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가게 안에는 수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난 이탈리아 장인들의 

솜씨가 느껴졌지만, 예리하신 작은 아버지와 내 동생은 대부분 동남 아시아 물건들

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런 작은 수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을 보면서 유럽에서

광장의 의미, 일상 생활 속에 내려앉은 광장이 그려졌다.

광장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

DALL OSTE, 스테이크 전문점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알베르토 몬디가 선전을 하는 식당. 그래서인지

식당 안에 한국에서 오신 한국 여행객들이 많았고, 한국인 종업원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들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이다. 일본 북해도와 교토, 

후쿠오카에서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분들이다. 우리의 여행은

어느새 맛집투어가  되었다.

푸짐한 스테이크 만찬을 즐기고, 내가 보고 싶어했던 오벨리스크를 보고, 피렌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두오모 성당 Duomo을 찾아간다.

 

 두오모 Duomo

 

 꽃으로 뒤덮인 것 같은 모습의 두말할 나위 없는 피렌체의 상징으로,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lore이다.

원래 산타 레파라타 Santa Reparata 성당이 있던 자리에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설계해

1436년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했다. 그 후 19세기 말 원래의 파사드를 허물고 에밀리오 데 파브라스가

고딕 양식으로 재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당 전면 파사드는 카라라 Carrara산 흰색 대리석 바탕에 마렘마 Maremma산 분홍색 대리석과

프라토 Prato산 녹색 대리석이 조화롭게 박혀있고, 섬세한 기둥 장식과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우는

성상들이 어우러져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두오모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배경으로 등장해

유명해진 쿠폴라 Cupola를 보기 위해서다. 이 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으로 거대한 붉은 타일로

덮여 있으며, 지름이 45.5m로 당시 사다리 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었다. 완공 이후 쿠폴라는 피렌체를

넘어 토스카나 사람들의 안식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쿠폴라 공사를

맡은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쿠폴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는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보다는 크게 지을 수는 있어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그 만큼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건축물인 것이다.

 쿠폴라 내부에는 바사리 Vasari와 주카리 Zuccari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5단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성당 내부에서 올려다보면, 천국의 모습이 보이고,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에서

보면 지옥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지옥의 모습은 쿠폴라를 오를 때 더 실감나게 볼 수 있다.

 높이 106m의 쿠폴라를 463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정상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토의 종탑과 한눈에 들어오는세례당의 모습 또한 근사하다. 화려한 외부에 비해 내부는 약간  썰렁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곳곳에 귀한 예술품이 숨어 있으니 하나하나 살피며 천천히 걸어보자. 섬세하고

화려한 로렌초 기베르티의 스테인드글라스, 루카 델라 로비아의 천사 모양 촛대, 디비치디 로렌초의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목판화 등이 유명하다. 지하로 내려가면 원래 이 성당 자리에 있던 산타 레파라타

성당의 유적과 이 성당을 건축한 브루넬레스키의 묘지가 있다. 성당 외부로 나와 종탑을 지나 오른쪽 옆으로

가면 쿠폴라를 흐뭇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브루넬레스키를 만날 수 있다.

 

 "프렌즈 이탈리아"  중에서... 황 현희님, p.206~207 

 

 골목 사이의 두오모 성당의 지붕, 감동이다.

그 지붕 하나에 역시 두오모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당 자체가 긔림이고, 예술이고, 작품이다.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골목을 따라 단테의 생가를 찾아간다.

가는 도중에 SAPORI KOREA라는 한국 식당과 가게가 있어

가게에서 내가 아침, 저녁으로 타 마시는 믹스 커피와 라면을 사고,

단테의 생가 앞에 이른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보기만 한다.

옆의 작은 어머니는 단테의 신곡, 베아트리체, 서양의 지옥 모습은

신곡에서 모두 나왔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골목길을 지나 내 동생의 안내로 시료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으로 간다. 광장은 야외 조각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조각상들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자주 보았던 나체의 조각상들

동방예의지국에 살았던 나에게는 보기에 민망한, 남사스러운 조각

이었지만, 어찌 보면, 로마의 정수는 헝겊 한조각 걸치지 않았던 이

조각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신들조차도 인간과 똑같은 모습의 로마에서는 당연

로마의 중심은 신도, 황제도 아닌 "인간"이 그 중심이었다.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다비드상

싸우고 있는 듯한 헤라클레스상

고대 로마인들에게 사람이 서 있을 때, 싸울 때, 어느 부위가 튀어나오고

안으로 오므려지는지, 싸울 때 어떤 근육이 긴장되고, 이완되는지...

그게 그들의 관심사였고, 그런 결과 수 많은 나체의 조각품들이 만들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관심대상은 "인간"이었기에

많은 크고 거대한 인물상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

되돌아 보면, 고대 그리스, 로마를 빼면, 사회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중국에서는 황제, 불교, 중세에는 신, 르네상스

시기에 잠깐 인간이 중심이기는 했지만, 그 시기는 너무 짧았고, 그 후

산업혁명 이후, 이념이 온 세계를 지배하더니, 오늘날에는 돈이, 너무

쌍스러워 보이나 - 자본이 그 중심에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위대함은 그 중심에 신이나 제왕이 아닌, 인간이 

있었다는 것에 그 위대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광장의 조각품들은 비록 고대 로마의 작품들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었지만, 장대한 인간 조각상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메디치 가문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작은 엄마는 중앙의 여인 조각상은 안나 마리아라고 가르쳐 주셨다.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Anna Maria Louisa de Medici

피렌체에서 빠질 수 없는 가문, 메디치 가문

메디치 가문은 번 돈으로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피렌체는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고, 그 문화는 유럽의 중세를 르네상스

시대로 이끌었다.

르네상스의 주역, 레오나르도 다비치, 보티첼리, 그들의 스승 베로키오

미켈란젤로

신 중심은 날로 부패하기 시작했고, 그 수렁에서 메디치 가문과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피렌체는 유럽 문화의 중심이자, 그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과 우피치 미술관 Uffizi Gaiiery

베키오 궁전 로비를 한바퀴 돌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쉰다,.

궁전을 나와 내 동생을 따라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로 간다.

피렌체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하며,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다리 중앙에 유명한 금세공사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

있다. 다리 중간의 가게들은 주로 귀금속 가게, 보석상이었다.

 이탈리아는 지역 마다 나름의 특산품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베네치아의 축제가면, 무라노섬의 유리공예, 부라노섬의 레이스

대부분 수공예품이다.

다리를 건너 빵집 Ginos Bakery에서 빵 Cannolo을 사서 아르노강변

옆에서 먹는다. 아르노강, 강 위로 배들이 지나가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산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산의 능선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빵을 먹자 프랑스 몽생 미셸 수도원처럼 주위의 갈매기들이 

우리 가족에게 달려들고... 바닷가도 아닌데, 갈매기들이 많다.

저리 가... 갈매기 때문에 빵도 제대로 먹지 못 하고, 산 로렌초 세례당

Basillica di San Lorenzo을 찾아간다. 메디치 가문의 전용 성당

이렇게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왕국이었다.

다시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 이야기

그녀는 메디치 가문이 그 동안 모았던 예술품을 피렌체시에 기증하면서

그 예술품들이 피렌체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그녀가 피렌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동생이 이곳에서는 중앙시장도 빼 놓을 수 없다고 하면서 시장으로

이끈다. 남대문 시장처럼 길 양쪽과 중앙에 점포들이 빼곡하다. 시장

가운데 중고 책들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다.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가

POMPI 가게에서 티라미슈와 젤라또를 사 먹는다. 작은 가게,

가게 앞 탁자에 앉아 먹는다. 우리 뒤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게이치 않고 한참을 쉰다.

오늘은 역 주변만 돌아다녔는데, 그 주변에 명소들이 많아 걷느라고

힘들었다.

지친 몸을 쉬고, 시장을 나와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으로 간다.

하늘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하늘 아래 수 많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옆의 작은 엄마와 내 동생은 박쥐 아니냐고 물어보시고...

그게 새이던, 박쥐이던 상관없다. 아름다운 품경이었고, 그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하고픈 장면이었다. 어쩜 피렌체가 하룻동안 들러보고

떠나는 우리 가족들에게 보내는 작지 않은 선물로 느껴졌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서 살레르노역행 고속기차(18:43)을 타고

로마 테르미니역으로 간다. 

거대한 역, 로마 입성 

지하철로 만조니역으로 가서 우리가 묵을 집을 찾아간다.

각자 여행가방을 끌고 밤거리를 지나 가운데 높다란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어렵게 숙소, intemo 7를 찾았다.

1층 입구의 오래된 엘리베이터, 오래 전 흑백 영화에서 보았을 듯한

구식 엘리베이터, 앞의 문을 열고, 또 안의 문을 열고 타야만 한다.

엘리베이터가 작아 여행가방을 넣으면 겨우 한두사람만이 탈 수 있다.

다섯 식구가 세번 나누어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가 낡아 타고 싶지 않았지만,  여행가방 때문에 어짤 수

없다.

숙소는 엘리베이터처럼 낡아 보이지 않았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하여 새집처럼 깔끔하다. 다만, 어제는 넓고도 넓은

부잣집이었다면, 이 숙소는 그에 비해 작고 좁은 숙소였다.